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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May 19. 2024

초대하지 않은 선생님이 우리집에 왔다

어쩌다 이런 귀한 곳에

  인터넷을 떠돌다 이런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속에서 몸통이 반 잘린 바퀴벌레가 나왔어요. 별다른 사진 없이 글만 있었던 것 같은데 나머지 반쪽이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았다. 뭔가를 씹고 있지 않았는데 마치 내 입에 있는 듯한 느낌이 생생했다.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처리했을지 잠깐 상상하는 동안 팔에 오소소 닭살이 올라왔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미래 식량 자원으로 사용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실제로 단백질 함유량이 높아 식량난이 오면 미래 슈퍼 푸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봤지만 어떻게 해도 정이 가지 않는 생물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등껍질에 색상과 크기는 천차만별에다 작고 작은 날개로 날아다니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이름만 들어도 꺼림칙했다. 왜 하필 이름도 바퀴벌레일까.


  운 좋게도 여태 내가 그분을 만난 건 텍스트나 영상 매체가 최대였다. 지나가는 길이나 산책길에서 마주했어도 시력이 나쁜 나는 하늘소와 바퀴벌레를 구분하지 못하기에 그냥 이름 모를 곤충이겠거니 여겼을 수도 있다. 가끔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불을 켜면 어디론가 도도독 움직이는 그림자를 봤다는 착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지만 실제로 나타나지 않으니 괜찮았다. 기껏해야 내가 잡아야 하는 곤충은 모기, 파리, 거미, 벌, 귀뚜라미 등이었다. 크기가 작거나 익충이라는 꼬리표가 작게나마 붙어있어서 엄청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 곤충들. 나름 평화로웠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퇴근하고 집에 와 밥을 푸려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 흰자에 검정 점이 하나 걸렸다. 새하얀 벽지에 검은색 점이라니. 바닥도 아니고 파리채를 잡아야 닿는 높이에 검은색 점이라니. 도대체 무엇일까. 잠깐 사이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점이 인식 가능할 정도로 크고 진해서 습해서 생긴 얼룩은 아닐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손에 밥주걱 대신 파리채를 들어야 하는가 망설이는데 배가 너무 고파 힘이 나지 않았다. 정확하게 실체를 확인하는 것도 두려워서 짧은 시간 동안 밥주걱을 든 채 고민에 빠졌다.


  저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면 한 번에 잡을 수 있을까, 심기를 건드려서 더 날뛰면 어떻게 하지.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거지. 밥 먹고 잡으려면 그때까지 제자리에 있을까. 저 높이까지 간 거면 날아다닐 것 같은데 잡기 애매한 곳으로 휘리릭 도망가면 어떻게 하지. 밥 먹는 사이에 사라지는 게 더 끔찍한데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왜 이런 시련을 지금 제게.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모든 경우의 수를 돌려 봤다. 시야에서 사라져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보다 그냥 지금 바로 잡자는 결심이 섰다. 헝그리정신으로 돌파하자!


  밥주걱 대신 파리채를 찾아 잡고 벽을 응시했다. 다행히인지 아닌지 아직도 그 자리에 정지해 있었다. 그리고 얼룩이 아니라 바로 그분이 맞았다. 우리 집과 내 인생에는 없을 거라고 빌었던 그분이 소리 소문도 없이 오셨다. 바선생님. 나는 초대한 적도 없고 문을 열어드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오셨을까. 그분은 도망갈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 건지 죽은 척하는 건지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있었다. 마치 냉장고에 붙은 마그넷처럼.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에너지를 소진하고 와서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는데 실체를 확인하니 어리둥절함과 동시에 속에서 눈물이 났다. 입 열고 소리를 내면 놀래서 도망갈까 걱정되어 탄식만 작게 내뱉으며, 한 번에 끝내자는 마음으로 모든 힘을 모아 내리쳤다. 힘을 주는 순간 배고파서 현기증 난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스윙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그냥 자고 싶었다. 눈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게 꿈이기를. 채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비꼈거나 헛손질이라 다시 돌아봤는데 내가 치워야 할 흔적이 없다면 오늘 집을 버리고 어디서 자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이게 이 집에서 선생님과 첫만남이었다.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곤충이라 별별 신화가 인터넷에 많이 떠돈다. 그중에서 나를 괴롭게 하는 건 한 마리가 있으면 그 집은 이미 서식지다. 죽을 때 알이 터져 나오니 태워야 완전박멸하는 것이니 태워라. 검은색 작은 똥 같은 게 점처럼 떨어져 있으면 바선생님의 흔적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 등이 있다. 당장 세스코를 불러서 정기적인 소독을 하거나 쾌적하고 깔끔한 환경으로 이사를 가면 좋겠지만 주머니 사정에 맞춰 보증금과 월세를 고려해 보면 그럴 수 없는 환경이 더 슬플 뿐이다. 


  이후로 예방 차원에서 택배 박스는 최대한 신속하게 버린다. 집으로 들어오면 나 몰래 선생님이 집에 있다가 놀라실까 어서 빨리 들어가시라고 방에 불을 환히 켜고 잠시 눈을 감고 있는다. 서랍을 열거나 구석에 있는 물건을 들어 올릴 때는 공손하게 노크도 한다. 사람이 갑니다. 저리로 피해주세요. 괴로우니까 차라리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생긴 루틴이다.     


   몇 주 전에 또 벽에 붙은 바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게 그 날 출근 전에 살펴보고 싶더라니. 몰랐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봤으니 어쩌겠는가. 출근 전 촉박한 시간 속에서 한바탕 사투 끝에 승리했다. 잡아서 다행이다. 또 있을까 걱정되어 서둘러 땀에 전 채로 집을 나섰다. 와중에 나타나는 텀이 길어서 유입인가 싶은 마음으로 행복회로를 돌렸다.




  바선생님이 지나간 바로 그 구석에 옷과 잡다한 소지품이 뒤엉킨 작은 무덤이 생겼다.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소지품들이라 정리해야 하는데 들추면 바글바글할 것 같아 접근하기 어려워 그대로 쌓아둔 곳이다. 거기를 파헤칠 생각을 하니 벌써 아찔하다.


  작은 무덤을 헤쳐 깨끗하고 편편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그놈을 만나 기절해 나의 무덤이 될지 다른 무언가의 무덤이 될지 열기 전까지 예측할 수 없다.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존하는 삶이 가장 이상적이겠으나 나는 나대로 건강과 시각적 안정과 생존이 달린 문제고 상대 역시 자신의 의식주 중 식주가 달린 문제니 함부로 물러서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는 게 두려워 그대로 둘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보증금과 월세도 보태지 않는 선생님과 한집에서 산다니! 절대 그럴 수 없지.


  매일 작은 무덤을 보며 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으려니 고통스러운 마음이 점점 커진다. 뭐가 되든 어떻게 되든 내년까지 끌고 가지 않고 올해 끝내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작은 무덤이 다른 물건의 잔해들로 더 높고 견고해지기 전에 정리해야겠다. 마스크를 끼고 한 손에는 파리채, 다른 손으로 살충제를 잡고서. 당장 떠날 수 없는 나의 처지를 한탄하며 슬프고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지 말아야지.




긴장된 마음으로 완전 무장해서 돌진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실없는 웃음으로 끝나길..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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