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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ug 19. 2024

곰팡이 닦고 눈물 젖은 고시원 탐방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알게 된 고시원 시세

평일 오전에 오신다던 기사님은 집주인과 함께 내 자취방에 3분 정도 머무르다 가셨다.


벽지 상태를 확인하시고 벽을 몇 번 두드리시고는, 밖에서 빗물이 새는 게 아니라 위에서 타고 내려오는 거라 윗층 공사가 끝나고 한 달쯤 뒤에 우리집 벽지 공사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셨다.




네? 한 달 뒤요..?

닦아도 닦아도 다시 자라나더니 벽지에 지금 곰팡이가 꽃 축제를 열었는데요..?







황당한 표정을 얼른 숨기고 상태가 심각한데 빠르게 해결할 수 없냐고 물으니, 옆에 있던 집주인께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참으라는 식으로 거드셨다.


빨리 벽지 바른 다음에 또 곰팡이 피면 좋겠어요? 다 마르고 하면 좋지. 환기 잘 하고 있어봐요.


우리도 힘드니까 나가고 싶으면 이사 비용도 지원해 줄테니 나가라는 말과 이미 물이 새는 집과 그 아랫집도 누수와 곰팡이 때문에 이사갔다는 소식도 들려주셨다. 갑자기 이사라니.(나중에 알고 보니 한 세입자는 놓치기 싫으셨는지 이사 비용과 숙박비용까지 거의 월세 만큼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기분이 참.. 이것과 관련된 소식은 추후 풀 예정)




다른 방이 더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먹고 자는 상황이고 콤콤한 곰팡이 냄새가 빠지지도 않는데 어떻게 더 버티나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빠르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뒤 서둘러 집을 나왔다.






한 달을 기다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우선 곰팡이를 락스로 제거했다. 곰팡이는 폭신했고 수세미가 닿을 때마다 파스슥 거리며 공기중으로 일부 흩어졌다. 호흡기로 들어올까봐 숨도 조심스럽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박박 닦았다.


락스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피해 밖으로 나와 부동산과 근처 고시원을 알아보러 다녔다.




고시원을 알아보기 전에 이건 아닌 것 같아 검색해서 찾아본 대로 온전히 집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 당장 이사가 어려워 계약 기간처럼 계속 거주하면 월세 일정 비용을 깎아주실 수 있는지, 고시원이나 숙박 비용을 지원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다.


집주인과 실질적으로 집을 관리하시는 집주인의 어머니께서 말씀을 주고 받으셨는지 우선 알겠다고 답변을 주셔서 마음이 좀 편했는데 내가 간 부동산(집주인이 잘 아는 부동산)에서 매물 소개를 받을 때 부동산 사장님께 계속 전화해서 월세를 꼭 깎아줘야 하는지, 다른 숙박 비용을 제공해야 하는지 쉬지않고 물어보셔서 참..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고 괜히 억울해서 울컥 뭔가가 올라왔다.


또 한편으로는 여기부터 와서 이런 소식도 들어서 진짜 마음을 알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다행히 이 상황을 알고 있으신 부동산 사장님께서 모두 다 세입자가 떠안을 책임은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에둘러 좋게 마무리해주셨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매물을 보여주셨는데 내가 생각한 예산으로는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반지하거나 반지하거나 반지하여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질질 끌고 싶지는 않아서 바로 플랜2를 실행했다.


지도에 뜨는, 도보로 있는 모든 고시원에 전화해서 당장 방을 있는지 물어봤다.




사장님께서 외출 중이라 기다리기도 하고, 전화로 공간을 설명해 주시면 원격으로 나 혼자 보기도 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찾아갔더니 남성 전용 고시원이라고 해서 그대로 나오기도 하고, 중간에 기력이 딸려서 국밥 한 그릇 먹기도 하고, 리모델링 중이라 정신없는 와중에 모든 구조를 살펴보기도 하고, 원격으로 보는 도중 갑자기 누군가가 내가 있는 방 문을 열어서 놀라기도 하고.


이 에피소드도 신기하고 웃긴 게 많은데 나중에 기회되면 풀어봐야지..


생각지도 못했던 고시원 시세를 이런 기회에 알게되다니. 고시원도 거의 월세랑 비슷해서 놀랐다. 고시원이라고 다 저렴한 건 아니구나. 그래도 집주인이 한 달 정도는 지원해 주신다고 하니까, 벽지 바를 한 달 동안은 고시원에서 살아야겠다고 나름 계획을 짜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주인이 지금 시간되면 얼굴을 있냐고 전화를 주셨다.






갑자기 성립된 집주인-어머니-나 이렇게 삼자대면.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서, 이전에 지원을 해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 오늘 근방 고시원을 알아봤고 시세는 nn~nn만원이라고 입을 열었다. 가격을 듣자마자 어머니께서 집에서 환기 잘 시키고 더 살면 어떻겠냐는 천청벽력같은 소리를 하셨다. 이렇게 나오시면 제가 땡볕에 고시원 탐방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눌렀다.




오늘 락스로 곰팡이를 닦은 것부터 콤콤한 지하실 냄새 같은 게 나고 건강이 더 안 좋아질 것 같다고 덧붙이니, 어머니께서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하셔서는 네 금니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돈이 없어서 그렇다며 길고 긴 통화를 하셨다. 돈이 없다는 소리를 나 들으라고 하신 것 같아 황당하면서도 이게 뭘까 싶은 상황..


그냥 돌아갈까 싶다가도 대화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서 기다렸다.




통화를 끊으시더니 한 번 가서 우리 집을 확인해 보자고 하셨다. 락스로 벽지 곰팡이를 거의 다 닦은 상황이라 보기에는 깨끗하니까 괜찮으니 그냥 버티라고 하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견적 보신다고 확인하자는데.


그렇게 오늘 땡볕에 미친듯이 걷고 수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찾아봤던 고시원은 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 되었다. 허무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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