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대한 두려움 넘어서기
선생님께서 영어 단어를 읽어보라며 나를 지목하셨다. 적혀있는 단어는 꽃(flower)과 밀가루(flour)였다. 두 단어 모두 "플라워"라고 읽었다. 선생님께서는 핀잔을 주는 듯한 억양으로 "그게 뭐야."라고 말씀하셨고 다른 학생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만 웃지 못했다. 왜 웃었는지, 어디가 잘못됐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나 역시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영어를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다.
몇 년이 지났다. 대학 캠퍼스에 원어민 교수님과 영어 회화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1:1 개별지도' 문구를 보고 마음을 빠르게 접었다. 당장 한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해도 어려울 텐데 외국인 교수님과 1:1 대화라니. 나와는 아주 먼 이야기였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학교 구석구석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영어를 한다는 건 나에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함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친구는 30분 동안 영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표현했다. 교수님은 옆에 있는 나에게도 가끔 말을 건네셨는데 나는 단어 하나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음.. 어.. 를 반복하다가 친구에게 내가 하고 싶은 문장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물어보면서 허둥지둥 댔다. 정적이 찾아올 때마다 문밖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내 욕심이었구나, 괜히 신청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플래카드는 내 미련과 함께 눈앞에 자꾸 아른거렸다. 수많은 고민 끝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어색한 순간이 오더라도 친구에게 미안해하고 싶지 않아서 혼자 신청서를 냈다. 어떻게든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영어 회화를 신청하는 페이지에서는 교수님 성함만 알 수 있었다. 얼굴, 성별, 나이도 모른 채 빈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을 신청했기 때문에 강의실 문을 열 때마다 어떤 교수님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나를 더 떨리게 했다. 사람이 많이 몰릴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신청자가 별로 없어서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었다.
또다시 침묵의 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도서관에서 정말 쉬운 영어 회화책을 빌렸다. 말하고 싶은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고 가지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외웠다. 전달하고 싶은 뉘앙스와 비슷한 문장을 번역기를 이용해 찾으면 그것도 따로 옮겨 적었다. 유치원생들이 볼 법한 그림이 많고 글씨가 크고 쉬운 단어로 적힌 영어 동화책도 종종 읽었다.
이런 준비 덕분인지, 입 밖으로 영어를 쓰려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원어민 교수님들은 최선을 다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상황에 맞는 질문과 답변을 해주셨다. 외국인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내가 말하고 있는 영어를 알아듣고 최선을 다해 리액션을 해주고 있다니. 매 순간 놀라웠다. 내가 능숙한 영어 실력을 가졌다면 사회, 정치, 환경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해 소통했겠지만 나의 30분은 자기소개, 취미, 진로, 사는 곳 등 가벼운 주제로만 채워졌다. 그래도 영어로 이루어지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때쯤 갑자기 밀가루와 꽃이 떠올랐다. 인터넷으로도 발음을 찾아봤지만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아는 것이 틀렸다면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야 오답을 정답으로 고칠 수 있으니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교수님께 번역기에 돌린 문장을 가지고 여쭤봤다. "꽃(flower)과 밀가루(flour)는 발음이 서로 다르나요? 어떻게 읽어요?" 이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똑같다고 답변해주시면서 내가 아는 발음으로 영어 단어를 읽어주셨다. 대답을 듣는 순간, 허탈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경험을 기점으로 내 영어 실력이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좋았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성과는 아직 없다. 나는 여전히 영어를 못한다. 그런데 나는 영어를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어 졌다. 내 발음이 잘못됐더라도 비웃지 않고 친절하게 알려 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