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심한 책 추천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았는데, 막상 서른 살이 되고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새해에 잔뜩 세워놓은 결심을 차일피일 미루다 언젠가부터 아예 잊고 살았다. 그래도 일상에 별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퍼지는 바람에 다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주식도 떨어지고 주최하려고 했던 모임도 미루어진 데다가, 한동안 잠잠했던 위염과 위경련이 다시 찾아와 밤 중에 일어나 진통제를 먹고 잠들기도 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크로스핏 체육관까지 문을 닫아서 지난주부터는 회사생활의 낙이었던 점심 운동을 하지 못 했다. 기분이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게으름과 약간의 우울이 다시 몸 구석구석 퍼졌다.
이렇게 찌뿌둥한 몸과 마음을 방치하다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나의 잃어버린 서른이 될 거라는 불안감에 연초에 적어놨던 30살의 계획을 보니 거기에는 자격증 취득부터 머신러닝 독학하기, 운동하기, 한 달에 최소 4권 읽고 서평 쓰기, 매일 일기 쓰기, 단편소설 쓰기, 영어공부, 모임 시작하기 등 무지막지한 계획들이 쌓여있었다. 심지어 월 단위, 주 단위의 목표와 액션 플랜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그래도 하나씩 하다 보면 실마리가 보일까 싶어 우선 책부터 읽기로 했다.
퇴근하고 소파에 앉아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펼쳤다. 제목에 철학이 들어있지만 이 책은 단순히 철학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가 실용성을 기준으로 선별한 50개의 인문학 주제 중 쿠르트 레빈이라는 미국 심리학자가 개인 혹은 조직의 변화에 대해 제시한 모델에 눈길이 갔다. 그에 따르면 변화는 '해동 - 변환 - 재동결'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해동은 기존의 질서과 규칙이 녹듯이 사라지는 단계이고, 변환은 기존의 질서가 사라져서 혼란을 느끼는 단계다. 그리고 재동결 단계에 이르러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질서가 생긴다. 여기서 방점은 맨 처음 단계인 해동에 찍힌다. 즉 무언가가 변화하는 시점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질서가 아니라, 먼저 기존의 질서와 작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상황과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분명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기존의 목표를 성취하거나 포기함으로써 기존의 목표와 작별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고 기존의 목표를 미적지근하게 손에 쥔 채로 새로운 계획들을 계속 추가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그래서 그냥 의자에 앉아 빈 모니터를 응시했다.
좀 심심했지만 참고 보다 보니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