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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민 Sep 09. 2020

수염에 관한 산발적 고찰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거울을 보다가 수염이 지저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염이 거의 자라지 않아 일주일에 한두 번 면도를 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요새는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바로 티가 난다. 그렇다고 타고난 수염 가이들처럼 몇 시간 만에 눈에 띌 정도로 거무스름해지지는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간신 수염이랄까. 면적이 넓지 않고 밀도도 듬성한 편이다. 그래도 털이 자라는 속도가 전보다 빨라졌다는 걸 깨닫으며, 별안간 수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내가 면도하지 않는 걸 여자 친구는 싫어한다.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면도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일요일이 되면 제법 티가 날 정도로 수염이 자라 있다. 그러면 한 소리를 듣는다. 왜 싫어하냐고 장난스레 물어보아도 그냥 보기 싫다는 답변뿐이다. 지저분해서 싫은 걸까? 그런데 왜 수염을 지저분하다고 느낄까? 문화적인 이유일까? 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백수처럼 보여서 그런 걸까?


동물에게 수염이란

개와 고양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수염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공간 판단, 평형감각 유지, 공기 흐름 감지 등 그들의 수염은 마치 안테나처럼 기능해서, 훼손되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고. 그들에게 면도가 얼마나 크리티컬 한 문제인지는 사실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수염은 정말로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한두 올의 털을 이용해 몸을 숨길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고, 점프하기 직전 균형을 잡고, 갑자기 날아드는 적의 발톱을 느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수염이라면, 사람으로 따지면 거의 팔다리만큼 소중한 게 아닐까.


면도란 무엇일까

수염을 넘어 온 몸의 털로 영역을 확장해보자. 털은 남녀 모두의 고민거리다. 모두 털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겨드랑이, 종아리, 팔뚝, 가슴, 심지어 젖꼭지까지 우리 몸에서 털이 나지 않는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부위가 많은 만큼 제모 상품도 다양하다. 네이버에 '제모'를 검색하면 온갖 게 다 나온다. 레이저로 제모를 해주는 피부과, 셀프 제모 용품, 제모를 한 후 손상된 피부를 진정시킬 액체들, 왁싱과 제모, 영구와 반영구 시술... 이 정도 되면 빽빽한 자연산 눈썹이 받는 편애가 불편할 지경이다.


유쾌한 수염 이야기

수염에 관해 구글링 하다가 재밌는 글과 영상을 많이 보았다. 그중에는 '세상에서 제일 긴 수염을 가진 사람'과 같은 올드한 영상도 있었지만, 수염을 고슴고치처럼 만든 유쾌한 사람도 있었다. 그중 몇몇을 소개한다.



고슴도치 아저씨  (수염에 이쑤시개 3,500개 기네스북)


수염이 가장 긴 10명의 사람들


해그리드처럼 수염이 자라는 여자




언젠간 기를 수 있을까

수염을 기른 사람을 보며 멋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남부의 여왕>에 등장하는 포케나, 사진 속 체 게바라, 조니 댑을 보면서 그랬다. 하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수염은 나중이다. 매력 있는 누군가의 트레이드 마크가 수염이었을 뿐이다. 수염을 기른다고 다 멋있는 건 결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한번 정도는 해보고 싶다. 죽기 전에 한 번은, 예쁜 수염을 길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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