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하민 Jan 09. 2021

올해에는 영어를 공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021년 새해 다짐

연초가 되면 남들 하듯이 목표를 세우곤 합니다. 꾸준히 운동하기, 식단 관리하기, 저축하기와 같이 대부분은 그동안 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올해에도 목표를 세웠습니다. 2021년의 목표가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영어. 올해에는 영어를 공부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작년에는 꾸준히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이직을 염두하고 연초에 OPIC을 본 것을 시작으로, 회사의 지원을 받아 하루 10분씩 주 5일 전화영어를 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는 영어 자막을 켜놓고 이해해보려고 바둥거렸고, 크롬 확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유튜브를 감상할 때도 틈나는 대로 자막을 읽었습니다.(Language Learning with Youtube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아, 그리고 기가 막힌 유튜브 채널도 발견했습니다. 일명 빨간 모자 선생님이라 불리는, 초보자부터 고수까지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영어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분입니다. 영상의 댓글창엔 이 분을 찬양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아무튼 1년간의 노력으로 거의 벙어리와 다름없던 저는 더듬거릴지언정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화영어 선생님인 George도 제 실력이 정말 빠르게 늘고 있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올해엔 영어 공부를 하지 않기로 다짐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영어가 제 인생에 그리 큰 도움을 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건 못 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좋겠지요. 그런데 얼마나 좋을까요. 여행에서 길을 묻거나 햄버거를 주문하는 건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방대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요즘은 한글로 된 콘텐츠를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정 필요하다면, 검색한 다음 번역기를 돌려 읽으면 됩니다. 전 세계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요? 지금 곁에 있는 친구들도 이런저런 핑계로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커리어의 측면에서 본다면, 외국에 살며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유창한 영어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국에서 일을 하고 터전을 잡을 생각이 지금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은근 쓸모없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위해 저는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출퇴근을 하는 동안 음악을 포기하고 빨간 머리 유튜브를 들었고요, 소중한 저녁 시간에 이해되지 않는 자막을 읽었습니다. 그나마는 양반이에요. 원래 공부를 하기로 계획된 시간에 쉬기라도 하면, 귀찮음과 패배감에 젖어 더욱더 침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전화영어를 고의로 빼먹기라도 하면 거의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일 년 간 고생으로 분명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지만, 덕을 본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어떤 외국인도 제게 길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 목표에선 영어를 빼기로 한 겁니다. 구독하던 유튜브 채널들도 해지하고 확장 프로그램도 삭제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붐비는 2호선 안에서 한국 드라마도 두어 개 봤습니다. (인간 수업과 스위트홈, 둘 다 재밌더라고요.)


사실 영어를 그만두었다고 그 시간에 다른 무언가를 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홀가분합니다. 안 그래도 근무시간이 엄청 길어져서 곤란한 요즘, 해야 할 일이 하나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제야 가끔 만나는 영어가 재밌게 들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