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1/2)
오후 두 시,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8165 공항버스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두개골이 웅웅 거리는 걸 느낀다. 태양은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모를 희뿌연한 대기 탓에 축 쳐져 있다.
오늘은 11월 둘째 주 목요일로 매년 대학 수학능력 평가가 치러지는 날이다. 꽤 오랜 기간을 이 날 하루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한 수험생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으나, 나도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했다. 5박 6일 제주 여행의 첫날이다. 회사에서 진행하던 몇 가지 일들을 마무리 짓고 긴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어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지난 4월 혼자 여행한 제주의 기억이 나쁘지 않았는 데다가,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느낌을 받고 싶기도 했다.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고 있다. 커다란 아메리카 익스프레스 캐리어를 버스 트렁크에 싣고 창가 쪽에 앉는다. 택시와 버스가 앞다투어 빠져나가려는 탓에 공항을 벗어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해는 금방 진다. 평소라면 요가 수업에 가기 전에 사무실 캔틴 한쪽 구석에 앉아 콘푸로스트나 운 좋게 살아남은 무료 제공 샐러드로 간단하게 허기를 때우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주황빛 가로등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제주식 돌담을 바라보며 고속버스에 앉아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뜬다. 적당한 허기를 느끼면서 숙소 근처의 음식점을 검색하지만, 외진 곳이라 그런지 문을 연 가게도 몇 없고 메뉴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다. 거기엔 한쪽이 뭉개진 호텔 비누 같은 모양의 달이 떠 있다.
여행 중 첫 사흘은 성산일출봉 근처의 명상 리조트 취다선에 묵는다. 사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진정한 쉼'이다. 보다 정확히는 '진정한 쉼의 '체험'이자, '진정한 쉼을 체험시켜주겠다고 하는 공간에서 실제로 무엇을 제공하는지, 그 결과로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한 고객이 무엇을 얻는지'다. 제주에 좋은 호텔은 많아도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곳은 몇 없는 것 같았고, 그나마 찾은 곳이 이곳 취다선이다. 홈페이지나 방문 후기 같은 걸 찾아보면 알겠지만, 여긴 요가와 명상, 다도, 싱잉볼 사운드 힐링 등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리조트다. 외관이 세련되지 않고 내부도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최근에 요가가 주는 마음의 안정을 경험한 나로서는, 호텔이나 감각적인 독채 펜션보다 더 마음이 끌렸다. 진정한 쉼을 파는 공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