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하민 Oct 31. 2021

과음과 달리기

건강하지 않지만 도움이 되는

2 백신을 맞느라 일주일 만에 밤의 호수를 달렸다. 바람은 더욱 차가워져서 팔을 좌우로 흔들 때마다 손등이 시렸다. 날씨가 쌀쌀하고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운동을 하는 사람보다는 대부분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토요일이고 할로윈 전야라, 몇몇은 분장을  채로 호수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팔짱을  연인, 모자를  눌러쓰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앳된 여자, 나란히 서서 대화 없이 파워 워킹을 하는 노부부를 찬찬히 구경하며 나는 아주 느리게 뛰었다.


호수 한 바퀴 - 집 근처에는 원천과 신대, 총 두 개의 호수가 있고 둘 다 한 바퀴를 돌면 대략 3km 정도다. - 를 돌기도 전에 숨이 가쁘고 다리가 돌처럼 무거웠다. 보통 며칠을 쉬면 컨디션이 좋아지는데, 반대로 몸이 천근만근인 것이다. 며칠 전 맞은 백신의 영향인지, 전날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셔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이겠지만) 어쨌든 무리하게 페이스를 높이지는 않았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다는 의사를 몸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목적은 달성이다. 그런 마음으로 10km를 뛰었다. 다 뛰고 나니 손등은 마치 정지 신호등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깨끗이 씻고 방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두 캔을 마시고 위스키로 갈아타 세 잔인가를 더 마셨다. 이 패턴, 전혀 건강하다고는 볼 수 없는 생활 패턴을 사실 일 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평일에는 자제하지만 주말은 항상 새벽까지 술을 마신다. 그리고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자다가 다시 일어난다. 그때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다. 한 줌의 후회와 그것보다 10배는 더 많은 어지럼증, 피로, 두통을 느끼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린다. 방금 일어났는데 주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런 기분으로 주말을 보낼 수는 없으니 다시 트레이닝복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간다. 몸을 질질 끌면서 호수를 뛴다. 전날의 피로와 후회가 땀과 함께 배출되는 상상을 하면서 묵묵히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러면 됐다. 나는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다시 술을 마실 명분을 쟁취하고 집으로 온다.


주말 과음 후 운동 루틴은 사실 성인이 된 이후로 변한 적이 없다. 달라진 건 작년까지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면, 지금은 달리기(와 요가)를 한다는 것뿐이다. 이 운동의 차이를 가지고는 책을 몇 권이고 쓰겠지만 - 물론 내가 아니라 이 운동들에 조예가 깊으신 누군가가 -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치유로서의 기능이 있느냐'다. 웨이트를 하면 근육이 생기고 몸이 더 탄탄해진다. 외모 개선의 효과가 눈으로 보인다. 반면 달리기와 요가로는 그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몸무게가 좀 줄기는 했지만, 어째서인지 뱃살은 그대로고 (역시 술 때문이겠지만) 가슴과 팔이 앙상해지면서 나는 점점 식물처럼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헬스장에 다니던 전보다 만족스러운데, 그건 달리기가 가진 특별한 종류의 치유 효과 덕분이다.


그게 어떤 건지 달려본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날씨가 좋은 주말에 아무 운동화나 신고 30분이라도 천천히 달려보기를 바란다. 걷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속도여도 좋으니, 30분 정도 쉬지 않고 뛰고 나면 무언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성취감은 하루를 그럭저럭 즐겁게 보내기에 충분한 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수업부터 요가 천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