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하민 Sep 29. 2021

첫 수업부터 요가 천재

근데 회원님은 3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다. 첫 수업부터 선생님께 요가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내가 다리를 뻗고 앉아 손으로 발을 잡는 전굴 자세를 제법 훌륭히 해냈기 때문이다. 건넛자리의 남자가 정강이 근처에서 팔을 버둥거릴 때, 난 여유롭게 몸을 숙이고 발바닥을 손으로 감쌌다. 선생님은 이런 남자분은 오랜만에 본다며, 우리 요가원에 요가 천재가 왔다고 나를 치켜세웠다.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으쓱했다. 사실 이 자세는 예전부터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다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팔이 긴 신체 구조의 덕도 있었지만, 무릎 뒤쪽이 원래 남들보다 유연한 편이었다. 그 밖에도 첫 수업의 동작들은 대체로 무난해서, 마지막에는 '뭐야, 요가 별거 아니었잖아'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그다음 수업에서는 거의 모든 동작을 따라 할 수 없었다. 소위 양반다리로 불리는, 다리를 교차해 앉은 자세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자세로 앉으면 대개의 사람들은 무릎이 바닥에서 살짝 들린다. 요가 수련을 오래 한 사람들이나,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열려 있는 사람들은 허벅지가 바닥에 붙기도 한다. 우리 요가원의 몇몇 사람들도 그렇게 허리를 곧게 세우고 편안하게 앉아있다. 입가에 연한 미소까지 띤 채로.


하지만 나에게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그렇게 앉으면 무릎이 바닥에서 붕 떠서, 명치 부근과 거의 수평을 이룬다. 등은 못된 마음을 먹은 새우처럼 굽는다. 몸의 하중을 감당하는 발목은 시큰거리고 복숭아뼈는 짓눌려 벌겋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식당을 갈 때에도 바닥에 앉는 곳은 가급적 피했다. 어쩌다 가게 되면 방석을 두 개씩 깔고, 수시로 다리를 바꿔주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선생님이 두 번째 수업을 시작하며 오늘은 고관절을 시원하게 풀어준다고 했다. 그 수업 내내 나는 몸에 심각한 문제라도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깊은 호흡을 하며 내면을 바라보긴커녕,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다. 가장 좌절감이 든 건 상체를 바닥으로 숙이는 동작을 할 때였다. 나비 자세를 하고 모두들 팔을 쭉 뻗어 매트 앞을 짚어나갈 때, 나는 상체를 조금도 앞으로 숙일 수 없었다. 그때의 풍경은 대학 시절에 종종 즐겼던 마피아 게임을 연상시켰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하세요.' 이 게임의 마피아는 나 혼자였고, 나머지는 전부 시민이었다. 나도 시민이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가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남자분들은 원래 그 자세가 잘 안되니 너무 기죽지 말라며, 꾸준히 수련하면 언젠가 고관절이 연꽃처럼 활짝 열릴 거라고 했다. '꾸준히가 얼마 정도인 가요?'하고 묻자, 그녀는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근데 회원님 같은 경우는 3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3년이라. 그런 먼 미래를 기다리며 나는 과연 요가를 계속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와의 첫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