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2/2)
제주도 명상 리조트 취다선의 방에 TV는 없다. 욕실 어메니티로 숲 향이 나는 캄모멘트리의 헤어, 바디워시가 있고, 세면대와 양변기는 아메리칸 스탠다드 제품을 사용했다. 책상 위에는 다기 세트(찻잔 2개, 숙우, 다관, 다관 뚜껑 받침, 퇴수기다. 리조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다도 클래스에서 기물들의 명칭을 알려주었다.)와 2개의 제주산 녹차 티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티백은 매일 2개씩 새로 제공한다. 전기포트는 발뮤다와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발뮤다는 아니고, 그보다 저렴한 라쿠진이라는 회사의 제품이다.
원룸 형태의 객실은 명상 리조트라는 취지에 걸맞게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벽에는 주황빛이 살짝 도는 크림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한쪽 면을 전부 차지한 창문 너머로 바다가 살짝 보인다. 창문 옆에는 침대 프레임 대신 걸터앉기 적당한 높이의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놓인 요 토퍼는 두께에 비해 제법 푹신해서, 오래 누워있어도 등이 배기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크기도 대충 눈으로 가늠해보니 킹사이즈보다 조금 더 크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베개도 4개나 있다. 네이버 예약 창에 쓰인 '1인 여행자를 위한 방'이라는 설명이 이 방을 두고 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혼자서 자기에 과분한 침대다.
이 리조트를 만든 사람은 방 안에 필요한 가구와 소품을 가능한 한 자체 공수한 것 같다. 책상은 주인이 직접 (혹은 취미로 목공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지인에게 부탁해서)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상판의 가로 세로의 비율과 크기는 기성품 같지 않게 생소하고, 책상다리는 상판과 같은 재질의 목재가 아닌 철재로 되어 있다. 공사 현장에서 쓰고 남은 것 같은 사각 파이프다. 심지어 파이프 위쪽 부분에는 벽에 칠해진 것과 엇비슷한 색의 페인트가 묻어 있다.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이 방에서 유일하게 이목을 끄는 건 책상 옆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그림 한 점이다. 50호 정도로 보이는 캔버스에 태양과 초승달, 4층 목탑이 투박하게 그려져 있다. 화면 오른쪽에 세로로 LOVE 가 쓰여있고, 노란색 원피스 복장을 한 여자가 왕관을 쓰고 LOVE의 맨 윗 글자인 L의 바닥 부분에 서서 두 손을 하늘 위로 활짝 펼치고 있다. 아래 왼쪽 귀퉁이엔 2019 ILSO라는 서명이 있다. 그 이름은 이곳 주인의 이름이다. 그림까지 자기가 그린 것이다.
그림의 주인과 리조트의 주인이 같다는 건 조금 전 웰컴센터에서 받은 안내책자를 보고 알게 됐다. 머리말에 一笑라고 쓰여 있었다. 사실 난 아주 기본적인 글자를 제외하곤 한문을 못 읽어서, 두 번째 글자는 네이버 한자사전으로 찾아보았다. 내친김에 그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짧은 여행 기사가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이 리조트는 일소와 그의 가족들이 '손으로 빚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러나 이 방 곳곳에서 느껴지는 어설픈 손때와 자급자족의 흔적이 얄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대표가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업주로서 비용 절감을 위해 그랬다기보다, 왠지 명상 수행자로서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성공적인 브랜딩이다. 어떤 브랜드가 본인의 입을 통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