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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민 Jan 09. 2022

여행은 언제나

혼자 떠난 여행에서 혼자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여행은 이렇게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과는 언제나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라는 문장으로 이전 글을 마무리했다. 생각해보니 기대와 다른 순간이 또 있었다. 그 일화를 소개한다. 두 개의 일화는 모처럼 혼자 떠난 여행에서 혼자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생겨났다. 애석하게도 말이다.


Ep.1 급체

가까운 회사 동료들은 나의 연애 혹은 비 연애를 가벼운 스낵처럼 즐기곤 한다. 나보고 연애를 린(lean)하게 한다며 놀리는 사람도 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내가 주로 협업하는,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팀과 커피를 마셨다. 혼자 제주에 간다고 하자 그들은 제주도는 혼자 갔다가 둘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핫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라던가,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어보라는 평이한 것도 있었고, 어차피 쓸 일도 없는 종이명함, 한라산 오르면서 눈 바닥에 한 장씩 뿌리라는 어이없는 조언도 있었다. (그들은 헨젤과 그레텔 같다며 키득댔다.) 그중에는 그래도 묘하게 설득되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한라산에 두 개의 컵라면을 가져가라는 조언이었다. 백록담에 도착한 다음 혼자 온 여성을 찾아 그녀와 나눠먹으라는 것이다. 추울 때 컵라면은 엄청나게 맛있고, 힘들 때 받은 도움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고. 그 자리에서는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한라산을 오르기 직전에 들른 편의점에서 그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서 정말로 컵라면을 두 개 샀다. 곁들일 모차렐라 치즈도 함께.




일단 백록담은 별로 춥지 않았다. 오히려 더웠다. 태양과 가까워서인지 그늘이 될만한 나무가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엄청나게 뜨거운 빛이 쉬지 않고 쏟아졌다. 적당한 바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혼자 온 여성이 간혹 보였다. 하지만 도저히 가서 컵라면을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4시간이나 산을 탔겠다, 배가 고팠던 나는 체념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김밥 한 줄과 컵라면 두 개, 과일까지 전부 먹었다. 배가 불렀지만 백록담 정상에 쓰레기를 버릴 수는 없어서 억지로 국물까지 다 비웠다. 그러다 하산하는 길에 결국 체하고 말았다. 그 길이 얼마나 괴로웠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Ep.2 독채

5박 6일 일정 중에서 앞의 2박은 취다선에, 뒤의 3박은 김녕장에 묵었다. 처음에는 김녕회관이라는 술집을 지인에게 추천받았다. 감각적이면서도 푸근한 빈티지 펍이라고 했다. 찾아보니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제목도 김녕회관인 단편영화가 있었다. 피아노 연주와 밴드 공연도 종종 진행된다. 관심이 갔다. 그런 김녕회관의 사장님이 부업처럼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근처에 있었다. 인스타그램 태그를 보니 이곳 역시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 같았고, 가격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렴했다.


짐 자무시를 틀어주는 김녕회관


김녕장은 제주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낡은 단층 주택으로, 6인 도미토리 방 3개가 하나의 마당을 공유하고 있다. 세련되게는 로컬 제주의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솔직한 인상은 그냥 허름한 시골집이었다. 그래도 공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여기는 제주고, 같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근처 술집에서는 영화도 찍고 공연도 한다. 그러니 여기도 얼마든지 근사한 분위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3 4 내내 게스트하우스에  혼자였다. 무인으로 운영되어 사장님도, 종업원도 없었다.   마리, 고양이  마리 없었고 겨울이니까 당연히 벌레도 없었다. 이건 나의 기대와 상당히 어긋나는데, 하면서 중간에 숙소를 바꿀까도 하였지만 그건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려려니 하고 혼자 놀고  쉬었다. 잠도 늦게까지 자고, 영화도 실컷 보고, 밤에는 김녕회관에서 레드락 생맥주와 핸드릭스 진토닉을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여기도 손님은 거의 없었다. , 그래도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 넷째  점심을 먹고 나서였던가, 나른한 상태로 숙소 마당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서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춤을 췄다. 아무도 보는  없고, 거울도 없고,  멀리는 야자수가 보이는 허름한 주택의 갈라진 시멘트 바닥 위에서, 땀이  때까지.


다시, 여행은 이렇게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과는 언제나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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