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정세랑 <피프티 피플>

뻔하고 지겹겠지만, 우리도 너처럼 살아있어

by 전하민

<피프티 피플>은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사람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담아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맞추다 문득, 퍼즐처럼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페이지가 넘어가며 그 말이 앞에서 뒤로만 읽지 말고 퍼즐을 맞추듯 헤매면서 읽어보라는 장난기 어린 제안으로 다시 들렸다. 앞으로 자주 들추는 바람에 빌린 책을 험하게 읽어 곤란했다.

'문우남 같은 남자로 살다 진선미 같은 여자를 만나 김한나 같은 딸과 친구처럼 지내며 이호처럼 늙어가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했다. 문우남은 귀에 벌이 들어간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급박한 환자들과 응급실 의사들을 배려하기 위해 꾹 참고 기다리는 남자다. 진선미는 종종 부적절하게 웃음을 터뜨리지만 호탕한 동시에 세심한 여자고, 김한나는 임상실험 책임자 일을 빈틈없이 해내는 도서관 사서 출신의 독신주의자다. 이호는 멋지게 살아 멋지게 늙은 의사다.

하지만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캐릭터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임대열 같이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도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돌멩이를 다시 뒤로 던지는 사람’들이. 이별 통보에 화가 나 빵칼로 헤어진 연인의 목을 썰고, 분노조절장애로 누나의 눈 밑을 포크로 찌르고, 평생 동안 딸을 외모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섞인 덕분에, 가상의 클레이메이션 <도마뱀 조프와 친구들>을 보러 온 50여 명의 사람들이 사는 세계는 풍성하게 리얼해진다.

백미는 단연 마지막 장이 아닐까 싶다. 영화관을 채운 사람들이 C열부터 J열까지 한 명 한 명 호명될 때, 시간이 지나며 흩어지고 옅어진 조각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퍼즐이 완성된다. 다 아는 사람들이다. 그새 몇 명에게는 각별한 애정도 생겼다. 그들은 팔짱을 꼭 낀 채로, 또는 멀찍이 떨어져 걸으면서 같은 시간대의 어느 도시를 스르륵 통과하고 있다. 다르지만 비슷한, 살과 피가 있는 사람들. 작가는 400페이지 가깝게 공들여 소개한 사람들을 모아 불 꺼진 영화관에 앉혔다.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한 줄도 모른 채, 그들이 스크린의 빛이 반사된 얼굴로 나란히 앉아 독자를 보며 말한다. “뻔하고 지겹겠지만, 우리도 너처럼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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