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수영복을 치켜 올려서 으쌰.하는 기합과 함께 입으려던 참이었다.
아니. 비누칠을 하는지 안하는지, 수영복을 그냥 입고 입수를 할 건지.
처음부터 나의 행동을 감시하던 눈이 있었는지 갑자기
내 옆 샤워호스 아래에서 투박한 경상도 억양이 짙은 목소리로
"샤/워\ 안/해/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 설마 나한테? 싶어서 묵묵히 내 본분을 하고 있는데 시선까지 따가워서 다시 바라보며. 저요? 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아/ 그/래/요\. 아니 다같이 쓰는 장소에서 왜..."
"네? 저는 지금 수영복을 허벅지까지만 걸친 상태고
제 바디워시에 손을 대서 짜고 걸친 수영복 위의 몸을
구석구석 닦으려고 했다구요. 아니.처음 보는 사람에게 지금 뭐라시는 거예요. 무례하시네요."
라고 요목조목 설명해줄만큼 정성을 쏟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마지막 한 문장에 덧붙인 말로 응수했다.
"아니.처음 보는 사람에게 지금 뭐라시는 거예요. 지금 제가 하려고 하잖아요. 정말 무례하시네요."
아니나 다를까. 싸울 기세로 달려드는 그 중년 사람은 바로 "뭐...무/례? 무-----례?"
라며 득달같이 "내가 어. 수영장을 10년 째 다니는데. 어." 말꼬리를 잡기 시작하면
끝없이 이어질 것이 뻔해보여 수영복을 허벅지에 걸친 체로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나는 사실 지금 제주에 정착하기 전에 경남 S시에서 살다가 와서 6년만에 다시 S시를 찾은 여행객일 뿐인데,
가끔 수영 전에 샤워를 할 때 거품을 다 묻히지 않고 수영복을 반쯤 걸친 체로 거품 샤워를 하기도 한다,
라고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가 없잖아.
자리를 옮겨서 짐짓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은 체 샤워기를 다시 틀고 나만의 의식을 치르려고 하자
저 건너 편에서 소싸움, 개싸움이 난 듯. 소리가 와장창창 난다.
"아니. 내보고 무/례/하\단다. 아이고. 무례?"
정확하게 들린 문장은 저거 하나였는데, 중년 여자 사람이 혼자 억울함에 질러대는 소리였는지 혹은 누군가의 말에 응수를 하던 변명이었는지. 소리의 대부분은 웅웅웅. 왕왕왕. 무언가 저들끼리 붙어서 싸움이 난냥 끓어오르다가 작렬하다 이내 그만큼의 들끓음처럼 빠르게 소멸되고 말았다.
고결한 수영장 입수를 위한 신성한 거품샤워를 기어이 나만의 방식으로 마친 후 전신 거울을 살펴보고 있는데 중년 여자 사람은 그 자리를 뜨지도 않고 알몸 바람으로 나를 위 아래로 스캔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 나는 무례한 사람을 대응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구나.
바득바득 억울함을 씻어내려는 말로 응수할 것이 아니라, 그저 저 사람이 어디서 돌을 맞고 와서
나한테 '썽'을 내고 있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기기로 했다.
5월 2일부터 7일까지, 꿈결같고 소중했던 나의 연휴를 굳이 이 사건을 남김으로써 먼저 기억하는 이유는.
나는 이제 보다 성숙해졌다고 스스로에게 깨우쳐주고 싶어서이다. 상식이 없음을, 무식, 이라고 정의한다면. 무식한 사람의 무례함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응수할 가치조차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요약된 한 마디만 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것도 현명한 대응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일깨워주고 싶어서이다. 저렇게 나이들지 말자. 절대. 그렇게 다짐하고 털어내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