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관리소장이 부임한 후 효율적인 운영관리 방침에 따라 경비 인력을 반으로 줄였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관리비 증가와 경비 인력 감축 사이에서 저울질한 결과였다. 한동안 누가 떠나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경력이나 나이에 따라야 한다는 쪽과 업무평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쪽이 부딪치는 사이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그사이 대결하듯 각자의 넉넉지 못한 처지를 늘어놓다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알아서 빠지라는 압박이 들어왔다.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가도 빗자루를 잃어버렸거나 형광등을 끄지 않은 소소한 실수까지 들춰 내자 더럽고 치사하다며 발을 빼는 쪽도 있었다. 관리소장은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 다시 불러 줄 거라고 다독였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이제 몇 명이 더 사라져야 하는지 헤아릴 뿐이었다.
결국 초소는 번갈아 가며 절반이 비었다. 도둑이 들어간 현관 입구 쪽 초소는 그날 마침 비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의 소행이라고 단정 지었다. 단지 내에 범인이 있을 거란 의심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불이 꺼져 있으니 누구라도 경비가 없는 초소를 쉽게 알 수 있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처음에는 보안을 위해 경비가 없을 때도 불을 켜뒀지만 곧 동대표 회의에서 지구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단지 내 전기세 절감이 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그때부터 빈 초소뿐만 아니라 일부 현관 등과 가로등까지 꺼뒀다.
피해 주민은 관리 업무 지침을 들먹이며 그나마 가장 가까운 초소에 있던 경비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쪽에선 문을 열고 고개를 쭉 내밀어야 겨우 반대편 입구가 보였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수상쩍은 사람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엉뚱하게 몇 해 전 설치한 에어컨이 문제의 중심이 되었다. 또다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내세우며 초소가 시원하니 나오기 싫어지고 결국 순찰에도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에어컨 관리 규정에 따르면 그날 작동한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게다가 도둑이 든 시각 반대편 경비는 초소에 있던 게 아니라 쓰레기장 청소와 화단 관리로 자리를 비웠던 참이라 겨우 넘어갈 수 있었다.
피해 주민은 없어진 품목을 다시 한번 나열하며 관리소장에게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그악스럽게 물었다. 현금과 금반지를 비롯해 엉뚱하게 우산까지 없어졌다고. 백화점에서 삼십만 원 이상을 구매해야만 받을 수 있는 사은품인 데다가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우산이라고 했다. 마치 우산 값어치가 적어도 삼십만 원은 된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가족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금 일부는 여행경비가 모자랐던 딸이 몰래 가져간 것이었고 금반지는 남편이 빼돌려 어머니 임플란트하는 데에 보탠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고 나니 피해 금액은 다소 줄었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도둑이 언제 또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이 불안! 어쩔 거냐고요! 범인은 현장에 또 나타난다던데요?”
관리소장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경비 한 사람당 120세대를 관리해야 하는 형편을 전했다. 종일 입구만 지키고 있을 순 없다고. 그래도 바짝 날 선 기세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서둘러 동대표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경비 인력을 충원하거나 보안 시설을 확충하는 방향에 기대를 거는 쪽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관리비 인상 문제에 가로막혀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간 외벽 페인트칠이나 놀이터 보수공사도 번번이 미뤄지거나 대폭 축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