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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y 04. 2019

인어공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

자의 vs 타의

인어공주라는 동호회에 들어가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 그즈음 나는 아침 수영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친구 A가 다이빙을 제안했다.


l  다이빙 한번 해보지 않을래? 좋아할 것 같은데.


주류 회사에 다니고 있던 친구 A는 사내 스쿠버 동호회에 같이 다니자 말했다. 관심 있으면 연결해주겠다고 해서 '그래'라고 대답했던 게 수영장 교육으로 이어지고 해양실습으로까지 이어졌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것치고는 얼마 안 돼 오픈워터 자격증도 따게 됐다. 자격증 발급엔 한 달 정도가 소요됐는데 수영장 교육 3번에 해양실습 한 번이면 혼자서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 동안 친구 A와 단 한 번도 다이빙을 같이 하지 못했다. 소개만 해주고 그 친구가 동호회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회 차 강습을 받을 때쯤 친구 A가 주류회사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ㅣ A는 언제 올까요?


다이빙 강사님에게 물어보았다. 한때  A의 직장 상사였던 강사님은 아 걔라고 대강 답변했다. 당황스러웠다. 동호회 내에서 A의 존재감이 너무 작아 오히려 내가 아주 오래 다닌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때부터 뭔가 찜찜하다 느꼈어야 했다.


스킨 스쿠버



스쿠버다이빙은 수영장 교육이 끝나면 해양실습을 나가야 다이버 자격을 이수할 수 있었는데 서울에 사는 사람은 보통 동해나 제주도를 가곤 했다. 강사님은 첫 해양실습으로 제주도를 가자고 제안했다.


ㅣ 국내에서 따는 거면 동해는 볼 게 없어. 첫 바다는 제주 바다가 좋아


거리도 멀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아 주저하게 됐다. 다른 강습생들 모두 제주에 간다고 했다. 지금 안 가면 자격증을 못 딸 거라고 엄포를 놓는데 이왕 할거 더 해보자는 생각에 큰 마음먹고 항공권을 끊었다. 회사에서 한창 바쁠 시기였지만 주말을 껴서 연차를 냈다. 왕복 비행기, 숙소비, 강습료, 장비 대여료, 거기다 주류회사 동호회답게 저녁마다 마셨던 술값. 통장은 갈수록 가벼워졌지만 솔직히 재미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운 좋게 돌고래도 보았다. 출수한 후 다이버들을 실은 배가 항구로 복귀할 때쯤이었다. 돌고래 한 마리가 갑판으로 따라붙었다. 돌고래는 무리 동물이라 얼마 안 가 대여섯 마리가 배 밑으로 몰려들었다. 해양 돌핀 투어도 아닌데 우연히 돌고래를 마주할 수 있다니. 진귀한 경험을 한 덕분에 바다가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날 함께 있었던 제주도 현지 다이빙 샵 사장님이 20년 다이빙 인생에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고 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이런 생각을 했다. 바닷속에서 인어처럼 자유로워질 때까지 다이빙을 해보자. 아무렴 우리 동호회 이름도 인어공주가 아닌가. 부어라 마셔라 놀았던 2박 3일과 꿈에나 볼법한 돌고래 떼를 만난 것만으로도 다이빙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대개 현실과 이상의 갭은 크기 마련이다. 내 꿈도 오래가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다.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강사님이 다음 투어 제안을 했다.

 

ㅣ 다음 주에 교육생들 데리고 동해 가는데 너도 함께 갈래?  


어떻게 말해야 정중히 거절할 수 있지 싶었는데 얼마 안 가 거의 으름장 놓다시피 강사님 태도가 돌변했다. 다이빙 스킬 잊어버리기 전에 동해에 가야 한다. 매섭게 쏘아붙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해파리 독침 쏘는 것 같았다. 제주도 투어 갈 땐 동해 볼 거 없다 했으면서. 여독도 풀기 전에 또 가자니...


ㅣ 동해도 가다 보면 예뻐. 제주도랑 또 다르다니깐


시큰둥한 내 표정에서 눈치를 챈 건지 강사님이 잽싸게 동해를 찬양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제안이 아니라 거의 명령조였는데 어느 순간 난 또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렇게 강하게 말하는 거면 어디까지나 꼭 필요한 게 아닐까? 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얼마 후 나는 동해에 갔다. 겉으로 보기엔 참 예쁜 강원도 고성 앞바다는 그 속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춥고 아주 많이 어두웠다. 입수하고 내려가자마자 발밑은 온통 성게 밭. 방심하면 가시에 찔릴까 봐 한시도 편하게 다이빙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바닥에 압정만 깔린 너구리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성게 밭을 지나면 모래사장이 나왔다. 그날 강사님이 데리고 온  강습생 분들은 핀을 너무 많이 차서 발길질을 할 때마다 모래가 일었다. 그 뒤에 오던 나는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고 바닷속인데도 마치 건설현장에 한가운데 서있는 것 같았다. 보이는 모든 게 흙 투성이었다. 앞에 있는 강습생들은 계속해서 빠르게 핀 질을 했다. 그 핀질 덕분에 물속 시야는 더 뿌애질 수밖에 없었고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열심히 뒤따라가야했다. 그룹에서 이탈될까 두려워서였다.


모래 구간을 지나면 스치기만 해도 독이 오른다는 대형 해파리들이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저기에 닿으면 위험하다는 수신호가 앞뒤로 계속해서 오고 갔다. 커다란 해파리 머리릉 보니 빨갛고 파란 신경이 보였다. 울고 싶을 정도로 오금이 저렸다.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해파리를 겨우 지나온 후에는 설상가상.  앞에 가던 강습생 중 한 명이 부력을 못 맞춰 몸이 위로 떠버렸다. 강사님이 얼른 따라 올라가서 다리를 붙잡았다. 다리가 잡히면 가만있어야 하는데 강습생은 계속해서 발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면 몸이 더 위로 떠오르는 법인데... (바다 깊은 곳에 있다가 갑작스레 떠버리면 질소와 산소의 비율 차이로 인해 자칫하다가는 큰 병에 걸릴 수 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강습생을 보면서 강사님이 수면 위로 올라가자는 수신호를 보냈다.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입술은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온 몸이 바르르 떨렸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허탈했다. 자격증 따고 정식 다이버가 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첫 해양실습으로 나갔던 바다와는 너무도 다른 바다였다.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저녁에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재밌게 놀자며 술판이 벌어졌다. 물속에서보다 물 밖에서 고기 굽고 술 마셨던 기억이 더 오래 남은 1박 2일 동해 여행은 두번다시 오고싶지 않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집에 오니 주말이 송두리째 날아가 있었고 씻지도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누운 지 얼마 안돼 카톡이 울렸다.


 ㅣ 다다음주에 세부 갈 건데 투어 스케줄 잡게 빨리 말해줘. 이제 열대 바다 가야지


 강사님이었다. 한숨을 쉬며 답장을 보냈다.   

 

 ㅣ 저는 이번엔 안될 것 같아요. 다음에 갈게요.


얼마 안 가 다시 카톡이 왔다.

 

 ㅣ 그래? 이렇게 싸게는 안 나올 거야. 이번에 딱 두 자리 비어서 하는 건데. 생각 바뀌면 내일까지 알려줘. 열대 바다는 한번 가야지.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심으로 날 생각해서 말하는 건지 아님 단체로 가면 투어비가 절감돼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보고도 답장을 하지 않자 몇 번의 카톡이 더 왔다. 가야 된다는 이유와 강압적인 말투가 묻어나는 카톡이었다. 그제야 난 내 꿈이 물거품이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스쿠버 다이빙은 비싼 스포츠다. 국내에서 진행하면 동남아에서 다이빙할 때보다 2-3배가량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 했고, 만약 바다가 인접한 도시에 살고 있지 않다면 바다까지 가는 것조차 번거로웠다. 제주도, 동해, 남해로 다이빙을 하러 가야 하는데 도시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간도 거리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격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여러모로 동남아가 국내보다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기엔 훨씬 더 유리하다 할 수 있었다. 수온이 따뜻했고 관상용 어종이 많았으며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어선도 드물어 안전했다. 게다가 동남아에서는 다이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성돼있었다. 물가가 싸서 필리핀계 스태프들이 납으로 된 공기통을 배에 싣고 내리길 대신해주었다. 국내 다이빙과는 달리 너무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어서 그곳에서 하는 다이빙을 흔히들 황제 다이빙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ㅣ 황제 다이빙했겠네? 난 국내에서만했어 자격증도 여기서 땄어.


그래서 국내 다이버들 사이에서는 필리핀이나 태국 같은 곳에서 자격증 따는 걸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내에서 딴 자격증을 마치 벼슬처럼 여기며 으스대는 사람들을 보면 열악한 조건에서 힘들게 땄으니 존중해달라는 태도라기보다 너는 쉽고 편하게 땄잖아와 같이 상대방을 깔보는 태도가 많았다.


어떤 때에는 국내 다이빙 시장이 비싸게 조성된 것도 물가 탓이 아니라 이러한 편견과 우월 의식이 형성돼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투어 한번 갈 때마다 힘든 건 너무 힘든데 돈은 백씩 깨지는 게 당연한 건가 싶어 친구 A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ㅣ 원래 이렇게 비싼 거야?

 ㅣ 글쎄. 평균 금액이 조성돼있진 않아. 잘 모르겠다. 난 여기서 딴 게 아니라서.


 알고 보니 친구 A는 태국의 꼬창이란 섬에서 자격증을 따고 한국에 들어왔다. 소개해준 동호회가 좋다고 해서 믿고 들어갔는데 왠지 모르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 후로 나는 꼬박 일 년간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 말만 인어공주였지 그 안의 군대식 문화는 영 나와 맞지 않았으니까.




어김없이 여름이 왔고 올해 휴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할 때 즈음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창에 필리핀 세부 배너가 자주 떴다. 배너를 무심코 보다 보니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ㅣ다이버가 되면 여행도 다이빙으로 가게 돼. 바다가 인접해 있고 다이빙할 수 있는 데로.


일 년 동안 잠잠했는데 뭐에 홀린 듯 필리핀 다이빙 후기를 찾기 시작했다. #여자 혼자 다이빙을 주요 키워드로 몇 주간 검색했다. 신기했던 게 샵만 고르면 일정이 한 큐에 모두 해결됐다.


숙식과 다이빙 비용이 모두 패키지 형태로 하나로 묶여있었다. 공항에서 다이빙 샵까지 픽드랍 서비스도 제공해주니, 후기 좋은 샵만 고르면 이 이상 신경 쓸 게 없었다.


모알보알(거북이 알이라는 뜻의 필리핀 남부의 작은 시골마을). 필리핀에서 스쿠버 다이빙이 처음 시작됐다는 모알보알의 다이빙 샵을 예약했다. 왕복 항공편을 끊자 여행 준비는 벌써 모두 끝나버렸다.


모알보알에서는 3 4일간  열세  바다들어갔다. 국내에서는   없던 아름다운 바다 생태계가 매일 같이 나를 현혹시켰다. 단언컨대  하루하루는 정말이지 낙원 같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른 바다,  속에 살아  쉬는 다양한 물고기들, 알록달록한 산호초. 자격증 따고 꼬박  년째, 이제야 진정한 다이버가   같았다.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단 생각이  정도로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새벽녘 정어리떼가 몰려다니며 내는 은빛 향연을 봤을 .  뒤로 정어리떼를 잡아먹으러 좇아오는 중형 물고기 ,  그보다  뒤에서 오는 몸체가  바라쿠다(어종 이름) . 먹고 먹히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나는 스스로가 엄청나게 작은 존재라 여겨졌다. 물속에서는 말을   없으니 감탄할  없었지만 귀로 들리는 숨소리만가 너무나 가쁘고 생생했다.  


다이빙을 시작한 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했고 그 후로는 틈만 나면 바다에 갔다. 아가미가 달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할 정도로 바다가 정말이지 좋았다. 이 다음 휴가도 모알보알에 갔다. 모알보알에서 스쿠버다이빙 중급 자격증(Advanced openwater)을 땄고 휴가를 쪼개고 쪼개 2년 동안 총 세 번을 재방문했다.


갈 때마다 집처럼 편안해서 어떤 날엔 그냥 여기 눌러앉아버릴까. 다이빙을 전업으로 삼아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얶다. 휴가를 여기다 쓰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았고 돈도 아깝지 않았다.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다이빙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는 개인 카카오톡이나 소셜 미디어 또한 모두 다이빙으로 도배됐었는데  그걸 본 친구 A에게 연락이 왔다. 소개만 시켜주고 일 년 동안 연락 없던 친구가 웬일인가 싶어 의아했지만 반대로 조금 반갑기도 했다.


ㅣ 어디 바다 갔어? 인어공주 동호회 다시 나가는 거야?


근황을 묻는 친구에게 그동안의 일화를 들려주넜다. 스쿠버 다이빙을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도 당연히 덧붙였다. 축하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친구는 외려 툭툭댔다.  


ㅣ 혼자 다니다가 조난당할 수도 있어. 너 B 알지. 개도 얼마 전에 제주도 혼자 갔다가 그룹에서 낙오돼서 크게 다칠뻔했대.


염려와는 달리 정말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을 지속해왔는데. 혼자 갔지만 다이빙 샵에서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된 경우가 많았다(다이빙은 주로 팀 단위로 진행되는 터라 다이빙할 때 친해지고  출수하고 나와서는 저녁 내내 로비에서 맥주를 마시며 친해졌다) 어느날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근처 펍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하기도 했다.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땐 다이빙을 하지 않고 바다를 배경 삼아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해먹에 누워서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경험이었다.

 

 ㅣ 걱정 마. 난 갈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오죽하면 다이빙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 같아.


 정말로 행복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때까지 다이빙한 횟수만 해도 거의 90회에 이르렀다. 이야기를 다 듣던 친구 A가 심통 난 어투로 덧붙였다.


ㅣ그럼 처음부터 인어공주 말고 필리핀에서 시작하면 좋았겠네


 왜 이러는 건지 의아했지만 잠시 생각하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ㅣ 글쎄. 그때 다이빙이란 걸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다는 말처럼 그냥 그때도 다음을 위해서 나름대로 좋았던 게 아닐까. 기실 돌아보면 모든 경험이 소중했기에 친구 A가 소개해준 군대식 동호회와 그곳 다이빙 강사님이 우겨서 끌고 갔던 다이빙 또한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적어도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됐으니까.

처음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동호회 생활은 꾸준히 유지할 수 없었지만 대신에 혼자서 해외 투어를 떠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국내, 해외 둘 다를 경험해보고 나서야 다이빙을 정말로 온전히 좋아할 수 있게 된 거고.  옛말에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 하듯  결국 나는 바다로 오지 않았는가.



그 후로도 몇 번 친구 A에게 연락이 왔다. 인어공주에서 투어를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그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어디서 소문을 들은 건지 다이빙 강사님에게도 비슷한 연락이 왔다.  


ㅣ 괜찮아요. 그곳은 제가 얼마 전에 다녀와서요.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 있는 제안에 능청스레 대답할 수 있었던 건 아마 내가 그때도 꾸준히 다이빙을 이어 왔기 때문이었을 테다.


다이빙을 시작한 지 삼 년째. 나는 이제 내가 가고 싶은 다이빙 스팟을 찾고 결정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마찬가지로 지나온 모든 시행착오들이 그냥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뭐가 됐든 후회가 없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자기가 스스로 선택해서 두 다리를 얻었던 인어공주도 꽤 주체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결국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지만 시도했고 좌절도 해보면서 사랑이란 걸 알게 됐으니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온전히 다이빙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인어공주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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