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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Cho Aug 12. 2017

인생을 바꾼 3년짜리 계획표

2년은 그야말로 영겁의 시간이었다. 내 머릿속 문신과도 같던 '근의 공식'이 까맣게 잊혀지는 시간이자, 바깥의 친구들이 무려 1년짜리 어학연수를 다녀오고도 두 번의 인턴쉽을 끝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누군가가 뭔가를 한다고 하더라'라는 바깥세상 소식이 내 마음을 마구 헤집던 시간이기도 했다. 농담 같지만 그건 첫사랑의 이별통보 다음가는 아픈 소식이었다. 

군대의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이 퇴화와 진일보의 명암차 


그 명암의 농담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나는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뒤처진 것 같았다.  


그 긴 시간이 끝나갈 때쯤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의 부류로 나뉜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사람. 의욕만 있는 사람. 그리고 의욕을 넘어 거기에 의미를 담아내는 사람 - 넘치는 그 의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사람은 차치하고서라도, 의욕만 있는 사람은 너무 쉽게 그 의욕을 잃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한 학기. 그 이후에는 다시 무기력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반대로 의욕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오래도록 그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뭘 해야하는지가 늘 가장 큰 고민이다

이들을 가르는 건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금의 내 위치가 내가 꿈꾸던 미래를 이루어주지 않는다는 간극의 혹독한 인식. 다른 하나는 그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해 앞으로 얼마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경우 전자는 분명했지만 그걸 극복할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쉽게 말하면 불평, 불만만 있었지 뭔가를 해본 적은 없었다. 여러모로 먼 길을 가야 하는 나에게는 의욕만큼이나 의미 있는 계획이 필요했다.


병장이 될 즈음부터 생활이 조금 자유로워진 이후로 나는 리서치를 시작했다. 학과에서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도 없었다. 사이버 지식정보방*에 가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들을 찾았다. 멀게는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 같은 성공신화를 탐독했고, 가까이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몇 년 선배들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기록했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다양한 길을 보여줄 수 없으니, 스스로 단편적인 사례들을 모아 몇 개의 굵직한 방향으로 묶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수많은 자격증들, 경력에 도움된다는 동아리 활동, 영어공부를 위한 교환학생이나 워킹 홀리데이, 그리고 심지어는 만학도가 되어 경영학과에 재입학하는 시나리오도 그려봤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상상 속 시나리오일 뿐이었다. 고대 중국인들이 코끼리라는 존재를 코끼리의 뼈를 맞추어 보고서 짐작했다는 데서 유래한 '코끼리를 생각하다'라는 어원의 상상(想像). 그런 코끼리 뼈만 가지고 무턱대고 내 인생을 계획할 수는 없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였지만 이때만큼은 직접 부딪혀서 보고 느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나오는 휴가는 내게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대는 부천, 집은 부산. 학교를 비롯한 생활터전은 서울이었으니 부산에 내려가기 전 하루 이틀을 서울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을 놀래키면서 군복을 입고 서울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까까머리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재무/회계 관련 각종 자격증 학원에서 관련된 진로상담을 받았다. 비슷한 고민을 했던 선배들도 직접 만나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많이 물어보고 조언을 얻었다. 이런저런 활동에 지원할 때 필요할 것 같아서 연등시간 틈틈이 공부한 토익 시험을 외박 나가서 치고 오기도 했다. 물론 전부 군복 차림이었다. 그렇게 때로는 부딪혀서 물어보고, 때로는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를 하면서 나만의 계획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전역이 가까워 올 때쯤 내 손에는 분기 단위의 3년짜리 계획표가 한 장 완성되어 있었다. - 한참 나중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 계획은 그 후 2년 6개월 만에 전부 실천되었고, 정확히 3년이 될 때쯤에 '구글 코리아'에 입사하게 되었다.


드디어 전역하던 날 당일. 나는 그 마지막 날까지도 군복을 벗지 못했다. 전역 마크가 달린 각이 반듯이 선 모자를 쓰고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학교였다. 전역의 기쁨을 채 누리기 전에 때마침 절묘하게 날짜가 맞아진 모교 경영전략학회의 신입 모집 면접장을 찾았다. 내가 전역하고서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계획이었다. 

면접장에 군복이라니. 그만큼 TPO에 맞지 않는 옷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 부끄러움도 잊을 만큼 간절했다. 정확히 일주일 후, 합격통보와 동시에 그렇게 계획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



*장병들을 위한 일종의 PC방

**공대 출신으로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APAC 회장을 역임한 유명 경영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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