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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Cho Aug 26. 2017

한국에서 날아온 특이한 방문학생

인생에 있어서 큰 걸림돌을 두고 우리는 두고두고 발목이 잡힌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 대다수의 평범한 대한민국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는 아마도 '영어'가 바로 그런 큰 걸림돌 중 하나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구글에서 일하니까 당연히 원래 영어를 잘 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사실 내게도 영어는 너무나도 큰 걸림돌이었다. 열 살 즈음부터 방문학생을 가던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대략 15년 동안이나 영어공부를 했음에도, 그때의 실력으로는 영어가 두고두고 내 인생의 발목을 잡을 게 분명했다. 내 영어는 수능시험의 문제 풀이에나 최적화되었지 회화 같은 건 해본 적도 없는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여권도 방문학생을 가던 그 해에야 처음으로 만들어 봤으니 여행에서라도 영어를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영어권 국가로의 1년짜리 교환/방문학생이었다. 학점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졸업을 늦추지 않고도 동시에 영어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권 국가의 대학교들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높은 토플 점수였다. 정말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지원하는 것인데, 지원자격은 '이미 영어를 꽤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토플 점수를 90점대에서 많게는 110점 가까이 요구했는데, 토플에서 그 정도 점수를 받을 것이었으면 애초에 그렇게 걱정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토플시험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서, 수능시험 문제풀이에만 매달렸던 내가 단시간에 충분한 점수를 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모범적인 학생 말고, 모험적인 학생이 되기로 했다


그때까지 항상 세상의 수많은 시험들이 요구하는 형태 그대로 스스로를 모범적으로 맞춰오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반대로 모험적인 승부수를 걸기로 했다. 당시에 교환학생 신청란에는 1순위부터 10순위까지 원하는 학교를 쓰게끔 되어있었는데, 나는 토플 없이 낮은 토익점수만으로도 지원할 수 있는 딱 하나의 방문학교*만 1순위에 기록했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10순위까지 꽉꽉 채워서 '어디든지' 가겠다는 자세를 취할 때, 반대로 나는 면접장에서 '왜 이 학교여야만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교수님들께 어필하기로 했다. 

이렇게 배수진을 쳐버렸으니 나는 더더욱 꼼꼼하게 알아보고서 '왜 이 학교여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준비해야 했다. 1) 해당 학교에 있는 인턴쉽 프로그램에 지원할 것이고, 2) 미국 특유의 오랜 전통을 가진 경영학회(Business Fraternity) 활동을 할 것이며, 3) 더불어서 이 학회의 학회원으로서 외국 친구들과 미국 공모전(Case Competition)에 참가하고 싶다는 것이 주요 세 가지 골자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1순위 합격을 거머쥐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다사다난한 10개월의 시작이었다. 


물론 영어를 너무 못해서 시작이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보는 해외인데 커다란 이민 가방 두 개와 함께 주소 하나만 달랑 가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서야 내가 대책 없이 큰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환승지에서 햄버거를 시켜먹다가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곤욕을 치릇 탓에 한껏 의기소침해진 이후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How would you like your onions?라는 질문이었다. 한국에선 좀처럼 묻지 않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비슷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부딪히고 배워야 했다. 언어를 배우는 데에는 영어로 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억지로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각종 바자회와 봉사활동, 신자는 아니지만 주말에 일부러라도 나갔던 성당, 그리고 이런저런 체육대회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철저히 외국인들과 보냈다. 10개월 동안 한국분들과 함께 한 식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현지인처럼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덩달아 눈에 띄게 영어 실력이 늘어갔다.


이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모험적인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취업 시즌에 대기업에는 단 한 군데도 지원하지 않는 배짱을 부려보기도 했고, 미국에서 영어도 못하는 외국인이 다국적의 팀원을 모아서 말도 안 되게 공모전에 도전도 해봤으며, 히라가나 한 자 읽지 못하는 채로 덜컥 구글 재팬으로 옮기기도 했다. 물론 큰 모험이었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렇게 호기롭게 냈던 용기들이 점점이 잘 이어져서 그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더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졌다.



*방문학생 - 말 그대로 서로 간의 학생을 '교환'하는 교환학생과는 달리 일방적으로 타학교로 보내기만 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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