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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Cho Sep 09. 2017

단상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다

미국 네바다 주에 리노(Reno)라는 인구 20만 명 남짓의 크지 않은 도시가 있다. 미국 서부의 유명 휴양지인 레이크 타호(Lake Tahoe)의 스키 리조트들이 인접하고, 그래서 덩달아 카지노도 많이 생겨서 유명해진 작은 라스베가스라고 불리는 도시. 방문학생을 하던 중에 나는 이 낯설고 이질적인 도시에서 미국 각지의 학생들과 Case Competition을 치렀다. 외국을 처음 나와본 한국인, 그리고 크로아티아계, 멕시코계, 일본계 미국인으로 이루어진 오묘한 조합의 팀으로 지난 한 달간 준비한 우리의 해법을 심사위원들에게 발표하는 자리였다. 발표 전날 밤, 우리는 차를 타고서 눈 덮인 국립공원의 언덕을 넘어 리노를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그만 눈 속에 빠져버렸다. 아무리 가속페달을 밟아보고 핸들을 이리저리 틀어봐도 눈 속에 깊이 파묻힌 차는 움직이질 않았다. 계속 헛바퀴만 돌 뿐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Case Competition을 준비하던 지난 한 달 동안의 우리 팀 모습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눈 속에 파묻혀서 제각각 헛바퀴질을 하는 4개의 바퀴, 그리고 4 명의 팀원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 팀 리더와 공모전이라고는 경험해 본 적도 없는 비 경영대 소속의 미국인 셋이 처음부터 술술 굴러갈 리 만무했다. 마치 눈 속에 헛도는 이 바퀴들처럼. 


대회 참가 한 달쯤 전에 대회의 주제를 받았는데 그땐 우리 팀 구성원이 4명이 아니라 한 명 부족한 3명이었다. 미국의 유명 MBA인 켈로그 비즈니스 스쿨에서 만든 케이스로 '구글의 중국 진출 전략'에 관한 A4 15장 분량의 문제 상황 설명이 주어졌었다. 케이스에서 중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민감한 검색 결과를 숨기거나 몇몇 반체제 인사의 이메일을 감시하는 등 자유로운 인터넷 활동을 저지하고자 했다. 반면에 구글은 이런 불합리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중국에서의 사업을 영위할지 아니면 구글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밀어붙이되 막대한 중국 시장을 잃게 될지의 기로에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케이스의 스케일이 이처럼 너무 컸던 만큼 4명 모두의 역할 분담과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3명밖에 없었던 데다가 나의 영어 문제로 속도가 더뎠고 나중에는 중간에 추가로 들어온 1명과 나머지 인원들 간의 케이스 이해도 차이가 커뮤니케이션을 힘들게 했다. 그리고 워낙 다들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보니,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관점 차이도 상당했다. 누군가는 기업의 제 1 목적이 매출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기업의 단기 이익보다는 도덕적 당위성이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난관이었다.


그런 때일수록 리더였던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조사해서 알아보고, 더 많이 고민해보고 그리고 모두를 납득시킬만한 더 논리적인 해법을 고안해내야 했다. 그렇게 해야 내가 영어는 조금 부족하지만 이 케이스에 대한 지식과 논리만큼은 그들보다 더 단단하다는 걸 보여주고 팀을 이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최대한 팀원들과 일대일로 만나서 일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각자의 이해도가 다른 상황에 넷이 동시에 모이면 늘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일쑤였고, 나머지 셋의 빠른 영어 대화 속도를 내가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상적인 팀워크 모델은 아니지만 최대한 일대일로 만나서 차분히 논리적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한 명씩 한 명씩 내가 밤새 고민한 스토리를 설득해 나갔다. 이런 식으로 전반적인 논리의 뼈대는 스스로 잡아서 한 명씩 설득을 하고, 처음의 두 사람에게는 필요한 리서치를, 발표력이 굉장히 좋았던 친구에게는 스크립트 준비를 따로 부탁했다. 지난 1년간 열심히 했던 한국에서의 경영전략 학회 활동이 크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전의 땅, 리노의 다운타운 입구

또 하나 단기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나의 영어였다. 대회의 심사 내용 중에 모든 사람이 발표에 참가한다는 것과, 심사위원으로부터 지목당한 사람이 질문에 대답을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나도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그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어실력이 한 달 만에 늘 리는 없으니 남은 방법은 딱 하나 - 내가 맡은 슬라이드의 스크립트를 토시 하나 빠트리지 않고 전부 외우고,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도 미리 다 작성하여 그마저도 전부 다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심사위원들이 우리가 준비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발표 내용을 구성했다. 발표만으로 바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발표 중에 유독 강조해서 심사위원들이 그 부분을 질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 보았다며 준비된 참고자료를 배부함과 동시에 외운 답변을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전에서 아주 정확히, 심사위원들의 질문은 그렇게 우리의 계획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면서 싱긋 웃었고 자신 있게 답변을 하였다. 그와는 별개로 나는 내 목소리로 이 모든 스크립트를 녹음해서 잘 때도 귀에 꽂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건드리기만 해도 발표 내용이 입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외우고 또 외웠다. 한 달간 고생한 만큼 너무 간절하게 수상을 원했고, 그게 내가 이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The Biggest Little City in the World". 


세상에서 가장 큰 작은 도시 - 이 역설적이고도 재치 있는 문구는 리노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이 도시의 이런 역설 때문이었을까. 그날 밤, 역설적이게도 나는 가장 작은 세계에서 왔지만 낯선 땅의 단상 가장 높은 곳에 선 사람이 되었다. 스탠포드나 버클리 같은 유명한 대학 팀들마저 제치고 대회 우승팀으로서 무대 위에 올라섰다. 무대 아래에서는 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팀들과 응원하러 함께 온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어느 방문학생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몸에 흐르는 전율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언젠가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윌 스미스가 두 손을 불끈 쥐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간 저렇게 기뻐할 수 있을까라고 간절하게 바랐던 적이 있었다(프롤로그 참조).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때였다.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난 이날 밤, 오랜 기다림의 끝에 내게도 내가 그토록 바랐던 주체할 수 없는 크기의 기쁨과 성취감이 내 인생에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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