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식물들을 열심히 키우고 있다. 그런데 작년에 키웠던 식물들은 다 죽었다. 올해 2~3월에 되서는 식물을 더 이상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돈도 많이 들지만 무엇보다도 내 손으로 키우던 생명체가 다 죽어버리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게했다.
재능이 없는 일에 욕심을 부리면서 괜한 생명체만 죽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식목일은 무료로 나눠주는 서향(천리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나에게는 매우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래서 천리향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
식물을 잘 키운 경험보다는 죽여본 경험이 많은 나에게는 식물 키우기란 굉장히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작년에는 그 작은 애들을 빨리 키워보겠다는 욕심에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과습으로 죽은 애들도 있었고, 비료를 너무 강하게 줬는지 흙갈이를 하면서 죽은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욕심이 없다. 내가 물을 많이 준다고, 내가 비료를 많이 준다고 천리향이 더 빨리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작년에 깨달았다.
이 글을 쓰면서 아파트 밖 나무들을 보고 있다. 10년 전 분양 단지였던 지금 아파트 단지의 꽃들도 나무도 이렇게 화려하지도 않았고, 크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 많이 컸다. 무엇보다 강하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5~6명의 친구들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엄청난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던 20대 초반에 무리 중 한 친구가 로또 1등에 당첨이 되었고, 그 이후에 그 무리들은 와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20대 초반의 무리에서 한 명은 로또 1등 당첨으로 대충 20년 전에 수 십억을 손에 쥐고 건국대 부동산학과에 들어가서 아파트와 건물을 보고 다닐 때, 다른 친구들은 취업을 해서 연봉 2,000만원~3,000만원을 받아가며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말로는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자신이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친구는 지금도 훌륭하게 잘 살고 있다.
지인 중에 수 백억의 자산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몇 분 계신다. 그 중 한 분이 한 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이 분은 훌륭한 사업가로서 약 25년 전에, 이 분 나이가 50세 정도 되었을 때 사업체를 팔아서 수백억의 자산가가 되셨다. 서울에 수 많은 아파트와 건물들 그리고 겸손함을 갖추신 분이었다.
그리고 최근 3~7년 전부터 이 분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10~15세 정도 어린 후배 중 몇 명이 코인으로 수 천억의 자산가가 되었다. 그 이후 이 분은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는 듯한 뉘앙스를 내 앞에서 자주 내비치셨다. 뭔가 세상이 허무하고, 알 수 없는 억울함도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이유를 막론하고 어떤 친구가 좋은 차를 샀다고 하면 괜히 마음이 힘들어지는가? 외형적으로 나보다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사는 곳이 좀 있어 보이는 동네면 괜히 심술이 나기도 하는가?
그냥 나는 내 삶을 잘 살고 있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모임에 와서 자기가 산 주식이 얼마나 오르고, 코인이 얼마가 오르고, 집이 얼마가 올랐다고 듣기 싫을 정도로 크게 이야기를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가?
학교 다닐 때 성적도 비슷했고 학력도 나랑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친구가 들어간 회사가 나랑 다르다는 이유로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는가? 세상살이는 결국 운발이라고 생각되는가?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렇다. 그냥 "우리"라는 단어로 "너와 나는 비슷하다"라고 내가 정의 내린 무리에서 누군가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손에 쥔 것 같으면 나도 흔들린다.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누군가가 확 밀어버린다면 당연히 나는 그 자리에서 밀려날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그 자리로 스스로 돌아오느냐다.
고무줄이 탄성을 바탕으로 제자리도 돌아오듯이 우리는 튼튼한 자존감과 가치관을 갖고 자기 자리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투자를 하고 있는 자산이 있다면, 처음 투자를 시작할 당시에 나는 왜 해당 자산에 투자를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려 보아야 하는 시기에 우리는 와 있다.
나의 인생이 어느 시점에 어떤 모습을 하기를 기대하면서 투자를 시작했는지도 떠올려보고, 해당 자산을 선택한 이유도 기억에서 되살려볼 필요가 있다.
이유가 없는 투자는 욕심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욕심은 상식 밖의 수익률을 상식처럼 상상하게 만들지만, 현실 속에서는 비참한 손실로 끝이날 수도 있다.
씨앗을 뿌려서 나무를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당장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씨앗을 다 나무로 키울 수도 없다. 욕심을 부리면 나처럼 일년도 안 되는 기간에 식물을 모두 죽여버리게 될 것이다.
열정과 욕심은 분명히 다르다. 열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 또한 흥분이 된다.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그냥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는 선후배들이 있다. 당장 뭔가 이뤄질 것 같지 않은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쳐가면서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모습을 십년 넘게 보았을 때, 언젠가 그들이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나는 믿고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욕심을 같고 온 힘을 다해서 직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절대로 오래 가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사람보는 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번 만나보면, 내가 이런 일에 엮이면 사기를 당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히 우리 스스로도 알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선택하는 투자의 기준이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한 열정에서 시작이 된 것인지 아니면 나의 기준은 없이 그냥 내가 아는 바로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한 욕심에서 시작이 된 것인지 우리는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다.
나는 과연 언제,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다시 물어본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는 인생의 계기가 있다면, 그 다음 단계를 그려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기준도 없이 그냥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만들어 놓은 삶의 모습은 인생의 가치관도 없고, 기준도 없는 그냥 흔들리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냥 누군가 밀면 그냥 저리로 밀려난 곳에서 서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밀면 또 다른 저리로 밀려있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내가 저 멀리 꼽아놓은 등대를 향해서 조금씩 항해를 했으면 좋겠다. 파도와 폭풍우를 만나 방향을 잃더라도, 본인만의 등대를 다시 찾아서 그냥 갔으면 좋겠다.
운이 좋아 해가 쨍하는 날 멋진 뒷바람을 만나서 항해 속도가 빨리지더라도 흥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곧 폭풍후를 만나 다시 뒤로 밀려날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항해는 그냥 지루한 것이다. 하지만 항해를 하는 동안에 배 안에서 경험하는 여러 에피소들들 재미있고, 화가나고, 슬프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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