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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문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

아버지와의 추억

by 정재혁

연예인들은 종종 ‘악성 댓글’(일명 악플)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하곤 한다. ‘무플 보단 악플이 낫잖아요’ ‘무플’은 인터넷 기사에 댓글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악플’도 관심이 있어야 달아준단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무플’ 상태였다. 아버지는 나를 때리거나 야단 친 적이 거의 없다.어렸을 적에 말썽을 꽤나 부렸는데도 말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강요한 적도 없다. 사실 처음에는 좋았다. 말썽을 피워도 다른 친구들처럼 혼날 걱정이 없었고, 내 맘대로 뭐든 해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 할 무렵이 돼서 생각해 보니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군 입대를 며칠 앞두고서 아버지와 단 둘이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는 내게 처음으로‘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 좀 잘하지’ ‘학사장교 신청하지’ ‘문과 나와서 취직은 제대로 할 수 있느냐’ 등등. 뭔가 짜증이 나면서도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 게 맞다. 내게 직접적인 관심을 내보인 적은 이 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댓글’을 달았다. ‘이렇게 하실 말씀이 많았으면서 왜 여태껏 아무 말도 안하셨어요?’ ‘저 서운했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너무 많이 맞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자기 자식은 절대 그렇게 키우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고 말하셨다.야단 안치고 이것저것 시키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무관심한 척을 했을 뿐, 무관심은 아니었다. 다만, 그 방식이 너무 과했을 뿐이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내게 수많은 ‘댓글’을 달아주신다. ‘밥은 먹었냐’ ‘공부는 잘 하고 있냐’ ‘취직은 언제 할거냐’ ‘여자 친구는 있냐’ 등등. ‘악플’ 아닌 ‘악플’이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 때가 있다. 차라리 ‘무플’인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러나 아버지 얼굴을 떠올려보면 그런 생각은 눈 녹듯 사라진다. 역시,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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