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 살차이 나는 동생은 요즘 자신이 20대라는 것을 보여주듯 하루를 25시간처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니 사실 이전부터 그랬다. 대학시절 휴학계를 내더니 한 달이 넘도록 홀로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했고 대학 동아리로 기타를 연주하며 큰 무대에 서기도 했다.
임용고시 합격이라는 목표에 짓눌려 의자에 앉아 주구장창 책만 들여다보며 살아온 나는 그런 동생이 들려주는 경험담들을 들으며 대리만족하곤 했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동생이 준 자극 덕에 나 또한 바디프로필 촬영이나 홀로 여행을 해보는 등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나는 이전보다 상당히 제약이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 내게 동생이 들려주는 20대 청춘의 생활은 신선한 자극이자 답답하기만 했던 숨통이 트여지는 느낌마저 선사해주곤 했다.
-
2022년 8월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육아로 반복된 삶에 무료함을 느끼던 내게 동생은 또 한 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니, 나 이번에 대천갔다? 근데 나 거기서 헌팅당했어!! 아니 언니 거기는 있지, 바다가 아니고 세렝게티야. 헌팅의 메카여 아주. 막 남자들이 같이 놀자고 삭 얘기하고 다녀! 무튼 그 친구들이랑 완전 신나게 놀고왔어!'
지금껏 살면서 미팅 경험 전무, 클럽과 나이트 경험 또한 해보지 못한 나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말로만 듣던, 바닷가에서의 헌팅이라니!
'그래? 그거 어떻게 하는거야? 나도 해볼래!'
자극적인 소재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뇌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내뱉은 첫마디였다.
지금 글쓰며 생각해보니 애 딸린 아줌마가 헌팅이라니..헛웃음이 나오는 정신나간 발언이었지만 이런 반쯤 미친 얘기에도 내 동생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언니, 뭐 할 게 없어. 그냥 돌아다니면 알아서 같이 놀자고 와.. 거긴 지금 예쁘고 못나고 이런거 전혀 상관없이 그냥 이성이면 같이 놀자고 얘기하러 오더라'
정신나간 발언을 이미 한 후였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발언을 실행에 옮기고자 이 얘기를 들은 즉시 바로 오피스 허니*(학교에서 아주 친한 언니쌤, 미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다짜고짜
'쌤!!! 우리 대천가요. 시간 되는 때 있어요???'
뜬금없는 나의 전화였지만 평소 육아하다 답답하면 늦은 시간임에도 나의 요청에 응답해주던 언니였다. 이런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이 익숙하다는 듯 나의 허니는 웃으며 받아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찐 웃음)대천은 왜?'
'샘 지금 거기 완전 헌팅의 메카래요. 그냥 이성이면 바로 같이 놀자구 한대요. 미팅이런거 한 번도 안해봐서 너무 궁금해!!!!!!'
'이 아주머니 완전 이상한 바람이 들었네.저기요- 저는 가정파탄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ㅋㅋㅋㅋ가게 되도 내가 쌤이랑은 안 간다,진정해!!!!'
오피스 허니의 자중하라는 말에 드디어 머리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맞아... 나는 애엄마지.....내가 아무리 여자라지만 난 엄마고...'
라며 주춤하는 사이,
나중에 호캉스나 하러 가자는 허니의 말에 아쉽지만 마음을 슬쩍 접어두었다.
-
그러고 며칠 뒤
오늘은 하원 후에 또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어 고민하다
최근에 생겼다는 키즈카페에 데리고 갔다.
규모가 꽤나 큰 곳이라 동물도 있고 놀이 기구도 꽤나 많고 공간도 매우 넓었다.
현재에 충실한 타입이라 아이를 위해 간 곳이었지만 마치 나를 위해 이 곳이 존재하는 듯 열심히 아이와 함께 놀고 있는데,
'여기보다 저기가 더 재밌는데? 저기가 더 점프 잘 돼요!'
라면서 한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딸아이와 놀아주는 게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까 한 말을 시작으로 그 아이는 나에게 이런 저런 요즘 아이들의 노는 기술들을 알려주었고 나도 열심히 그에 반응해주었다.
에어컨이 아주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는 공간임에도 땀이 날 정도로 아이와 놀아주니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아이도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 덕분인지 저 멀리서 아이들이 한 명씩 나에게로 몰리기 시작했다.
각자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겠다며 트램펄린에서 자신의 최대치의 점프력을 끌어모아 뛰는 아이,
볼풀장의 공을 얼마나 멀리, 정확하게 던질 수 있는지 보여주려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는 아이,
저 멀리서부터 뛰어와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전사가 된 듯 자세를 잡는 아이 등등
'이모, 난 이거 잘해요!' 하며 내 옆에서 재잘거리고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정신없이 반응 해주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깔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알았다.
아이엄마라면 헌팅의 메카라는 바닷가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헌팅당하는 느낌을 느껴볼 수 있다는 사실을.
-
난 이 날,
키즈카페에서 끝내주는 여왕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