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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르넨 Apr 03. 2024

궁거랑 벚꽃

궁거랑 벚꽃 한마당 축제 끝나고 다음날 구경

축제 관련 강의로 인해 가게 된 사실상 첫 벚꽃 명소. 솔직히 '이런 거 왜 가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연애에 관심도 없고 귀찮기 때문. 하지만 교수님께서 일찍 마쳐주면서 벚꽃 보고 오라고 하셔서 결국은 가게 되었다. 간 곳은 바로 궁거랑이었다.


사실 궁거랑 벚꽃 축제는 일요일에 이미 했고 우리는 다음날에 가게 되어서 축제를 즐긴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벚꽃 구경이다. 궁거랑 벚꽃 축제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궁거랑은 무거천의 별칭으로 활 궁(弓)+시내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 거랑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 '도대체 궁거랑이 뭐야'라고 하고 있었는데 한자와 순우리말의 혼종어(적당한 표현을 검색하다 이걸 찾았다.)라니. 이미 기장의 오시리아라는 큰 임펙트의 단어를 봐서인지 크게 놀라진 않았다.


학교에서 궁거랑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래서 걸어서 도착. 벚꽃을 보자마자 아름답다고 느낀 건 아니였다. 하지만 걷다보니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궁거랑은 봐도 우리 지역에 있는 청량천보다 작았다. 사실 청량천도 학교 쪽에는 작긴 하나 궁거랑보다 조금 큰 정도였고 아래로 갈수록 갑자기 커져 외황강의 모습을 갖춘다.


30분쯤 가니 다리에서 푸드트럭이 보였다. 궁거랑에 도착하기 전까지 먹을 것을 궁리했던 우리였다. 하지만 다리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서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아마 굳이 계단까지 가서 보는 건 귀찮고 어차피 안할 것 같았나보다.


다리 밑을 지나오니 꽃이 심긴 하중도가 보였다. 돌 배치를 보니 딱 봐도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원래 궁거랑은 자연 하천이니까 벚꽃부터 인위적일 것이고 실제로 벚꽃 축제는 2009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더 가니 다른 푸드트럭이 보였다. 근데 어째서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혹시 몰라 대학원 동기 분이 확인하러 가시더니 돌아오신 후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핫도그는 4시부터 한대요"


4시까지 기다리기에는 아직 30분 남았는데 당연히 30분 동안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린 아무 것도 못 먹은 채로 그곳을 지나가야 했다. 지나오면서 '벚꽃 축제 기간이 아니라서 늦게 하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한 10분 정도 걸었나 푸드트럭이 또 보인다. 세번째로 마주하는 푸드트럭. '이번에는 제발 하기를'라는 생각으로 회오리감자 트럭에 가니 다행히 한다고 한다. 나는 회오리감자, 동기 분은 옆의 트럭에 가 타코야키를 샀다. 회오리감자를 받기 전 사장님이 가루를 묻히시는 것을 보고 급하게 말했다.


"안 해주셔도 되는데…"

"아, 그냥 드릴까요?"

"네."


한쪽만 가루가 묻은 채로 회오리감자를 받았다. 가루 묻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건 가루 묻히지 않은 그 맛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지, 가루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른 분이 물으실 때도 가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만 했다. 회오리감자를 먹으면서 동기 분의 타코야키를 기다렸다. 조금 지났을까. 곧 타코야키를 받으셨다. 근데 꼬치가 4개였다.


"다 같이 먹으려고 샀어요."


그런 거였다. 맛있겠다는 생각에 하나 콕 찍어서 한입에 넣었는데 속이 너무 뜨거워서 눈물 날 정도였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뜨겁다고 난리났다. 결국 한입에 넣지 말고 식혔다가 조금씩 베어먹었다. 그래도 뜨겁지만 첫입에 비하면 낫다.


두번째로 다리 밑을 지나오면서 선거유세하시는 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아 맞다. 지금은 선거철이지. 축제는 아니지만 벚꽃 보러온다고 궁거랑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다 무거동 주택가라서 선거유세 하시는 분들이 보이는 거다. 특히 국가혁명당에서 '기호 15번 허경영'이라고 지지자들이 말하는데 목소리가 딱히 큰 건 아니다. 그냥 반복적으로 말하셨다. 며칠 전에 살펴봤는데 허경영은 비례대표 1번이 아니다. 하지만 유세를 저렇게라도 하는 것이 효과가 있나 보다. 생각해보면 저 정당은 매 선거마다 나오고 항상 저래왔으니.


이들을 그냥 지나오는데(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네번째 푸드트럭 발견. 이번에는 다른 분들이 떡볶이+김말이, 핫도그를 사시는 동안 나는 가만히 서서 개를 산책하는 분들을 지켜보았다. 개들이 서로 반갑다고 호감 표시를 하는데 견주분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고 가야 하는 방향도 달랐다. 그래서인지 억지로 떼어놓는다고 힘을 쓰셨다. 그걸 개들은 싫다고 버티다가 멀리 떨어뜨리니 드디어 순응했다.  


타코야키를 샀던 분은 여기선 떡볶이와 김말이를 사셨는데 이번에도 다 같이 먹으려고 샀다고 한다. 떡볶이는 딱 옛날 떡볶이 맛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시장 떡볶이 맛에 익숙했던 사람이라 오히려 프렌차이즈보다 이런 걸 더 좋아했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선배는 맵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매운 걸 못 먹는 나도 충분히 먹을 정도였는데 더 못 먹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내 반응을 본 선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라고 하셨다.


간식을 먹고 10분 정도 더 걸었다. 합계로는 1시간 30분 째. 선배 분은 카페 가자고 했다. 카페도 궁거랑에 도착하기 전에 가자고 했었다. 사실 간식들로 인해 배불렀지만 원래 배가 따로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카페에 갔다. 각자 음료를 시키고 대기하는데 책상에 사장님이 직접 필사하신 시가 하나 보였다.


아름다운 사람 - 나태주 -

아름다운 사람
눈을 둘 곳이 없다.
바로 볼 수도 없고
그저..
눈이 부시시기만 한 사람


시 말고도 사장님의 감각이 돋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수제 핀, 컵받침대, 액자. 특히 액자는 달 액자였는데 잘 보니까 어찌된 영문인지 달 액자가 울고 있다. 뭐지. 그리고 카드 유효기간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김에 나도 농협 체크카드를 꺼내 확인해보니 올해 9월이 말기였다. 생각해보니 20살에 발급받은 카드이니 올해일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테리어와 카드 등에 신경쓰다 보니 음료가 나왔다. 내가 시킨 것은 요거트 스무디. 한입 맛보고 '아 달다.' 다른 곳에 비하면 달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음료를 마시면서 30분 있다보니 5시였다. 원래 강의부터 5시까지이니 집에 가야하는 시간.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궁거랑 옆을 걷고 있었는데 동기 분께서 운동을 하시냐고 물었다. 어? 저번에 진달래 보러 갈 때 다 같이 운동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아니요."라고 확답했다. 덧붙여 필요하지 않으면 외출 자체를 안하며 운동이 워낙 재미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이를 들은 동기 분이 한 마디를 하셨다.


"운동은 재미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고집을 부려 재미가 있어야 안 질린다고 했다. 운동 얘기를 하면서 걸으니 신복교차로로 빠지는 길이 보였다. 다른 분은 울산대로 돌아가기 위해 걸으셨으나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굳이 울산대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먼저 일행에서 빠져나오게 되면서 벚꽃 구경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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