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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르넨 Apr 17. 2024

흔하면서도 독특한 이름

몇 년 전 대학생 시절에 교양 수업 첫 강의 때 일이었다. 교수님은 수강생 이름을 한 명씩 확인하고 있었다. 이씨들을 차례대로 부르면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나 싶었을 때 교수님에서 입을 여셨다.


"이 강의에 이재희가 두 명이 있네요. 먼저 ○○학과 이재희."


그러면 반대쪽에 앉아 있는 여학생 이재희가 '네'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교수님은 그제서야 내 이름을 부르신다.


"역사·문화학과 이재희."


내가 '네'라고 대답하고, 교수님은 한 마디를 하신다.


"같은 강의에 동명이인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이재희. 우리 엄마께서 아빠의 집안인 이씨 가문의 돌림자인 '희'에 무엇을 붙일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이름이다. 내 이름이 남자와 여자 모두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는 중성적인 이름여서 동명이인 찾기는 더 흔한 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같은 마을에 살던 1살 어린 남자애의 이름도 이재희였고, 연예인 이재희도 있었다. 심지어 몇 년에 본 드라마인 '왔다 장보리'에도 이재희라는 인물이 나왔다. 딸과 똑같은 이름을 발견하면 항상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재희라는 이름이 흔한가? 난 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러면 내가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재목 재를 쓰지 않았을 테니, 한자로는 동명이인이 아니죠. 보통 이름에는 재주 재를 쓰지, 재목 재는 잘 안 쓰인다고 하니까요."



사실 지금과 달리 어릴 때는 하도 놀림을 받아서, 흔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비슷하게 락 발라드를 좋아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부활의 '희야'였다. 중학교에도 내 폰에 그 노래를 넣고 들었는데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남학생이 그걸 알고 장난식으로 '희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불린 나는 왜 '희'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여자애는 나 뿐인가하고 속으로만 한탄을 했다. (사실 그 이전에는 또 다른 여자애가 있었긴 하나 전학을 가버려서 나만 남은 거다.)


생각이 바뀐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한문 선생님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볼 있어야 한다며 이름의 한자 표기를 알아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자 공부를 해왔던 사람이라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서 다른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었다.


이후 이름을 직접 쓰시간을 가져 이름을 칠판에 써보았다.


'李材熙'


내 이름의 한자 표기를 보신 선생님은 이렇게 입을 여셨다.


"재희의 부모님은 딸 이름을 재목 재로 지으셨구나. 보통 이름에는 재목 재가 아닌 재주 재가 이름에 더 쓰이는데 말이지."


그 이후 이 이름이 좀 더 좋아졌다. 재목이라는 단어는 '목조의 건축물ㆍ기구 따위를 만드는 데 쓰는 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거기에서 확장되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나 어떤 직위에 합당한 인물'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 엄마는 후자의 뜻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해주셨다. 


'재목이 빛나다'


엄마께서 공들여 지어주신 이 이름을 마음에 새겨두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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