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대학생 시절에 교양 수업 첫 강의 때 일이었다. 교수님은 수강생 이름을 한 명씩 확인하고 있었다. 이씨들을 차례대로 부르면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나 싶었을 때 교수님에서 입을 여셨다.
"이 강의에 이재희가 두 명이 있네요. 먼저 ○○학과 이재희."
그러면 반대쪽에 앉아 있는 여학생 이재희가 '네'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교수님은 그제서야 내 이름을 부르신다.
"역사·문화학과 이재희."
내가 '네'라고 대답하고, 교수님은 한 마디를 하신다.
"같은 강의에 동명이인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이재희. 우리 엄마께서 아빠의 집안인 이씨 가문의 돌림자인 '희'에 무엇을 붙일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이름이다. 내 이름이 남자와 여자 모두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는 중성적인 이름여서 동명이인 찾기는 더 흔한 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같은 마을에 살던 1살 어린 남자애의 이름도 이재희였고, 연예인 이재희도 있었다. 심지어 몇 년에 본 드라마인 '왔다 장보리'에도 이재희라는 인물이 나왔다. 딸과 똑같은 이름을 발견하면 항상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재희라는 이름이 흔한가? 난 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러면 내가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재목 재를 쓰지 않았을 테니, 한자로는 동명이인이 아니죠. 보통 이름에는 재주 재를 쓰지, 재목 재는 잘 안 쓰인다고 하니까요."
사실 지금과 달리 어릴 때는 하도 놀림을 받아서, 흔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비슷하게 락 발라드를 좋아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부활의 '희야'였다. 중학교에도 내 폰에 그 노래를 넣고 들었는데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남학생이 그걸 알고 장난식으로 '희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불린 나는 왜 '희'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여자애는 나 뿐인가하고 속으로만 한탄을 했다.(사실 그 이전에는 또 다른 여자애가 있었긴 하나 전학을 가버려서 나만 남은 거다.)
이 생각이 바뀐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한문 선생님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볼 수 있어야 한다며 이름의 한자 표기를 알아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자 공부를 해왔던 사람이라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서 별 다른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 이후 이름을 직접 쓰는 시간을 가져 내 이름을 칠판에 써보았다.
'李材熙'
내 이름의 한자 표기를 보신 선생님은 이렇게 입을 여셨다.
"재희의 부모님은 딸 이름을 재목 재로 지으셨구나. 보통 이름에는 재목 재가 아닌 재주 재가 이름에 더 쓰이는데 말이지."
그 이후 이 이름이 좀 더 좋아졌다. 재목이라는 단어는 '목조의 건축물ㆍ기구 따위를 만드는 데 쓰는 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거기에서 확장되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나 어떤 직위에 합당한 인물'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 엄마는 후자의 뜻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