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자 세계 10대 서점 중 하나인 다운트북스(Daunt Books). 한국에서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인데, 다운트북스에서는 책 그 이상의 무언가를 팔고 있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스타 감성을 충족시켜주는 매장 내부 인테리어의 역할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책의 다양한 갈래 덕에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츠타야 서점을 들 수 있겠다.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시작한 츠타야 서점은 도서 판매를 넘어 가전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서점의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츠타야 서점의 거의 모든 것은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검토를 거쳐 실행된다. 매장 안에서는 책과 더불어 상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일반 서점에서 문구 코너 또는 가전 코너를 별도로 만들어 놓는 것과는 달리, 츠타야에서는 책과 상품이 함께 어우러져 존재한다. 상품 하나를 놓기 위해서 수많은 기획안을 거치고, 이를 통해 상품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최종적으로는 고객에게 제안된다.
비단 상품뿐만 아니라, 매장에 놓인 거의 모든 것이 고객에게 주는 제안이다. 책의 다양한 갈래 덕에 그들은 고객에게 하나의 상품군이 아닌, 삶 자체를 제안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들은 서점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츠타야 서점의 영향인지, 스틸북스처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작은 서점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저 유명해진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에만 머물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츠타야의 진정한 가치는 책과 함께 상품을 진열하고 그것을 판매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무언가를 판매하게 된다면,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다운트북스와 츠타야 서점처럼 고객의 시선을 머물게 할 수 있는 작지만 강력한 무기도 필요하다. 만약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이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 팔면 된다. 사람들은 이제 상품이 아닌 공간을 소비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가져다가 어떻게 팔아야 할까?
패티앤번(Patty and Bun)은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이 30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가게지만, 런던 최고의 버거 맛집으로 손 꼽히는 가게 중 하나이다. 버거 안에 든 재료라곤 큼지막한 치킨과 몇 가지 야채 조각이 전부지만, 그것들이 모여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하나와 하나가 모였을 때 둘이 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버거 안에 치킨과 야채가 들어있다면 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치킨과 야채 맛이 나는 게 당연하다.
그냥 무난한 버거가 아닌 맛있는 버거가 되려면 재료들의 맛이 개별적으로 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따로 먹을 때는 느끼지 못한 조화로운 맛과 향을 내어야 한다. 하나와 하나가 모여 둘 이상을 이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재료를 빵과 빵 사이에 끼워 함께 먹는 것이 의미가 있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일상에서 온전한 하나의 역할을 다 하고 있었을까?
런던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은 대부분 전용 공연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무대에는 프로들이 오른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프로들의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 눈에 비친 그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프로였다. 뮤지컬 공연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몇 번이고 다시 관람할 의향이 있다.
역시 좋은 것만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