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의 취향 | 무탈함에 대한 소망이 담긴 차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답할 수 있는 취향이란 게 있나요?
안타깝지만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는 그런 취향이 많지 않다. 숨을 받은 지 30년이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삶에 있어 분명한 게 이리도 없다니. 슬픈 일이다. 갑자기 생을 박탈당하는 날이 오더라도, 앉은자리를 훌훌 털고 흔쾌히 떠날 수 있을 거라 자부하며 살았건만. 이렇게 살다 간 정말 땅을 치며 펑펑 우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가 적기는 하지만 이런 내게도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이거지'라고 답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또렷한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음료는 취향과 주저하지 않음의 작은 교집합에 들어가는 소중한 애정의 응집체이다.
차라는 세계는 정말이지 무궁무진하다. 커피와 비슷하게 차를 우리는 온도, 도구, 시간 등에 따라서 맛과 향이 천향 지차로 달라진다. 기획이라는 나의 업처럼 통제해야 하는 변수가 사방에 널려있는 셈이다. 다른 이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법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변수의 존재 자체가 차를 좋아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된다.
A를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도, 통제하지 못한 작은 변수 하나로 결과가 달라진다. 이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다. 포기하고 A를 받아들이던가, 결과가 달라진 원인을 분석하고 A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가설을 세우던가. 전자를 택하면 아쉬움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으면 되고, 후자를 택했다면 다시 한번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나의 업과 참 많이도 닮아 있다. 내가 차를 사랑하게 된 건 내게 주어진 운명 같은 거였을까?
차는 얕게 알고 싶다면 충분히 얕게 즐길 수 있는 문화다. 물론 반대로 깊게 파고 싶다면 일생이 다하기 전까지 모든 것을 보고 알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문화이기도 하다. 어떤 깊이로 문화를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차를 마주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나는 전자와 후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연차가 늘어날수록 본업에서 요구되는 기술과 능력을 채우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차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조정해나가고 싶은 욕망이 들 때마다 나는 이 핑계를 앞세워 마음의 시간을 유예하고 있다.
차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걸까? 나는 여전히 차를 좋아하고, 때로는 이를 넘어 사랑한다. 차는 이미 나의 반려 음료가 되었다. 종종 커피와 술을 찾게 되는 날들이 있지만,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한 음료는 늘 차였으면 하는 바람이, 내 삶에는 아직 존재한다.
커피에도 차만큼이나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커피가 아닌 차와 사랑에 빠진 걸까? 마땅한 답을 내기 어려워 과거의 삶과 현재의 하루를 되돌아본다. 아무래도 나는 차가 가지고 있는 여백의 미를 사랑하는 것 같다.
차에는 여백이 많다. 100%로 채워지지 않는 맛과 향 때문에 차를 마시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차를 만들 때 과일이나 꽃의 향 또는 주재료를 첨가한 가향차가 나오면서 여백의 크기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커피만큼이나 강렬한 음료를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것은 차라는 음료가 가진 한계일 수도 있고, 차가 지닌 독특한 가치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애초에 가향차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오리지널 티가 지닌 여백을 채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간혹 오만으로 보이는 때들이 있다. 왜 매번 완벽한 맛과 향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 차의 매력은 주의를 기울였을 때 언뜻 하고 마주치게 되는 은은함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시각에선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현대인의 식습관이 '강렬하지 않으면 인지되지 않는 시점'에 이르렀기에 만들어진 당연한 변화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오리지널 티를 판매하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차에서 느끼는 사람이 나 말고도 분명 많을 텐데.
차를 좋아하고 즐기게 된 지 어느새 10년이나 되었다. 무언가를 향한 애정을 지속하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10년의 애정을 고수한 결과 내게 남은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대단한 건 아니지만 차에 대한 나름의 두터운 취향과 이를 통해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노하우를 알게 되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약리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차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내게 차는 그저 좋은 반려 음료일 뿐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고 삶을 조금이나마 무탈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담긴 음료가 바로 차이다.
삶이 흥미로운 일들로 가득하길 바라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의 하루가 그저 무탈하기를 바란다.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하고, 슬플 때 충분히 슬퍼하되 곧잘 제자리로 돌아와 나머지의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차라는 음료에는 그러한 무탈함에 대한 소망과 , 그렇게 살아올 수 있던 날들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다. 그러니 내가 차를 좋아하게 된 것도, 차와 하루를 함께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운명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