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취향 | 라테와 플랫화이트의 역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카페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음료의 가짓수는 많지 않았다. 카페에 가면 나는, 마치 내 또렷한 취향의 수만큼이나 적은 선택지에서 겨우 무언가를 주문해 자리에 앉는다.
고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이마저도 가능하지 않은 곳이 당시에는 많았다. 커피 외의 음료가 카페라는 공간에서 받아들여진 역사는 결코 길지 않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카페에 가는 빈도수가 늘어났다. 달갑지 않은 일이다. 선택의 즐거움이 박탈된 공간에 가는 것이 즐거울 리 없지 않나. 눈치가 보였다.
마치 고깃집에서 한바탕 회식을 하고서, 온몸에 고기 냄새를 가득 품은 채 작은 버스에 올라타는 기분이었다. 누구는 카페에 가는 게 힐링이라는데, 나는 그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의 방향을 바꾸게 된 건 커피에서 작은 취향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니,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강렬한 커피 향도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티끌만 한 취향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되다니. 이러니 취향의 위대함을 믿지 않을 수가 있나.
커피의 조화로움을 찬양한다.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이 지닌 하모니도 애정하지만, 커피의 씁쓸함과 우유의 고소함이 만나 생겨나는 어우러짐이 배로 좋다. 라테는 따뜻하게 마시기에도, 차갑게 마시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음료다. 각각의 주체가 만나 만들어지는 조화로움에는 그런 풍족함이 있다.
라테라는 음료에서 시작된 취향은 플랫화이트를 거쳐 최근에는 카페 콘파냐에까지 닿았다. 늘어난 커피의 함량만큼이나 우유가 없는 커피에서도 나름의 취향이 생겨났다.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커피의 맛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커피 맛이 좋다고 소문난 곳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 방문해 본다. '얼마나 맛있을지 보자고' 싶은 마음으로 카페를 찾지만, 매번 마음을 빼앗기는 대상은 사람과 공간이다.
커피 한 잔에 자신의 삶을 거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단 하나의 가치나 대상으로 온통 가득 차 있다는 건, 그가 그만큼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니 내 눈에는 그의 주변에 놓인 모든 게 좋아 보일 수밖에.
지금 내가 놓여 있는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때에는 카페를 찾는다. 여행을 떠나기 전 평점이 좋은 카페를 몇 군데 찾아두는 건 다 이런 이유가 있다. 견문을 넓히기보다는 좋은 기억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간절함이다.
커피는 인간의 단편적인 기억을 담는다. 단 한 잔의 커피만으로도 공간을 가득 메우는 진한 향 덕분일 것이다. 공간에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그라인더의 진동과 그 사이를 밀도 있게 채우는 노랫소리도 역할을 톡톡이 한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딱 그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커피와 커피를 판매하는 공간인 카페는 인간의 오감을 순식간에 장악한다. 그리고 짧은 영상을 찍듯 순간이 기록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때와 비슷한 향을 맡거나, 닮은 공간에 가거나, 같은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어렵지 않게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영상 한 편을 꺼내 재생할 수 있다. 그러니 커피는 내게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억력 보조제인 셈이다.
커피에서 취향이 생기고, 그 취향이 불호를 선호로 바꾸고, 삶을 대하는 색다른 태도를 만들어 낸다. 이 기나긴 여정의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나조차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커피라는 세계에서의 취향이 늘어날수록 나의 세계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했지? 이러니 취향의 위대함을 믿지 않을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