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일까?
퇴사를 하기 전,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를 마지막까지 알차게 쓰겠다며 매일 같이 서점을 들락날락하던 때가 있었다. 무제한 도서 구매는 당시 재직 중이던 회사가 자랑하는 복지 중 하나였고, 나는 그런 회사의 선의와 배려에 열광하던 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덕분에 퇴사를 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내 방 한 구석에는 아직 펼쳐보지도 못한 새 책이 한가득이다.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 위에 까만 먼지가 층층이 쌓여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가끔은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도가 틀대로 텄다. 적어도 책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그래. 이건 낭비라기보다는 내 취향을 찾기 위한 여정일 뿐이다.
쌓여 있는 책에 대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한 일환으로 요즘은 바삐 독서를 하고 있다. 독서라는 명사와 바쁘다는 형용사 사이에는 연관성을 찾긴 힘들지만, 요즘의 내 상태를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조합은 어디서도 찾기 힘들 것만 같다.
빠른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책 선택을 잘해야 한다. 실용 서적이나 깊이 있는 고전은 어울리지 않는다. 예제를 연습하거나 중간에 떠오르는 사유에 빠질 여유는 없다. 그건 사치다.
투자하고자 하는 시간은 적지만 활자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에세이를 찾게 된다. 이미 기록된 타인의 일상을 엿보는 데에는 짧은 시간만큼이나 가벼운 집중력과 애정만이 요구되니 말이다.
그렇게 선택한 책 치고는 여운이 긴 책이었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 이후, 이전의 여행 기록을 돌아보며 남긴 편지 형식의 글로 채워진 책 치고는 깊이가 있는 책이었다.
간혹 그런 책들이 있다. 처음 보는 작가. 적은 리뷰.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주제.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감각. 근원을 알기 어려운 감각에 근거하여 선택한 책들이 아주 가끔씩 내 일상에 물결을 일게 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책들은 대부분 에세이다. 시간이 없을 때 늘 선택하게 되는 그 가벼운 책 말이다. 실용 서적이 아니라 특정 기술을 쌓기에도 무리가 있고, 읽고 나면 내가 성장했다는 느낌보다는 잘 쉬었다는 편안함만이 가득한 에세이가 여태껏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던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져온다.
이번에 내 삶에 파문을 일게 한 내용은 취향에 관한 것이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의미한다. '선호'와 비슷한 말인 듯하면서도 어쩐지 둘 사이에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 것만 같다.
핑야오 때 명백해진 그 취향 때문에 오늘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취향 하나만 믿고, 내 마음의 방향만 믿고 여기까지 온 거야. -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 김민철 作>
작가는 취향이 뚜렷하면서도 두터운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단한 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움직인다. 자신이 쌓아온 취향을 믿고, 선택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가 다시 그의 취향을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작가와 같이 취향 하나만 믿고, 내 마음의 방향만 믿고 길을 갈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일단 나에게도 취향이 존재하고 있는지 조차 명확하지 않다. 내 취향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남들이 내리는 평가와는 무관하게 지속할 수 있는 취향이라는 게 내게도 존재할까?
그래서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혹자의 말처럼 기록된 것만이 기억되기 마련이니까. 기록의 힘을 잠시 빌려 나라는 사람의 색을 또렷하게 만들어보고자 한다. 혹시 모를 일이다. 이렇게 발견한 작은 취향이 언젠가 위태로운 나를 살게 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