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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12. 2022

우리는 쉼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각자가 원하는 여행지가 다르고, 그곳에서의 소비 습관이 다르며, 숙박과 교통 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준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은 모두 다른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같은 게 있다면, 여행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쉼'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친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숨을 고르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내 어깨 위에 놓인 짐이 무거워질수록, 내 앞에 놓인 길이 어두워질수록,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우리는 여행을 갈망한다.



즉 여행은 누군가의 준비이자 누군가의 쉬어감이다


그래서 매년 우리는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마주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쉼을 찾아 떠난다.


사실 쉼이라는 건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찾아 누릴 수 있는 가치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러하였듯 많은 것을 갖기 위해 그보다 많은 것들을 버리며 산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은 현실과 또 다른 현실 사이의 줄을 타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돈과 명예로 대표되는,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인간이라면 갈망하게 되는 반짝이는 것들로 채워진 현실과 그것들을 위해 희생되는 나머지의 현실이 우리의 삶 속에 공존한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진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둘 다 놓친 채 살아가기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양쪽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어느 한 쪽이 맞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우리는 태어나 죽기 전까지 둘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나도 동의한다. 어차피 사람이 죽기 전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야 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이전에 한창 붐을 일으켰던 '욜로(YOLO)'의 개념도 이와 비슷한 선 상에 위치해 있다. 


'꿈', '명예', '돈', '안정', '사랑', '화목한 가정' 등 인간이라면 당연히 갈망하게 되는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구호이고, 욜로라는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인간의 습성이 그러하듯, 사람들은 여기에 숨겨진 오류를 잊고 사는 거 같다.



인간의 욕심은 선택에서 시작되고 그 끝은 또 다른 선택으로 맺어진다. 혹자는 말했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도 좋고 욜로의 방식도 좋다. 인간이라면 대부분이 바라는 삶이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의 오만이 있다. 우리는 보통 내가 바라는 것만 생각하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사실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가진 것 중 무언가를 잠시라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 텐데 말이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기분은 좋겠지만 수입은 쥐꼬리만 할 거야'라는 저주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 적어도 시작을 할 때만큼이라도 수입 정도는 포기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쉼이 자취를 감추었듯,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쉼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근심 걱정 없이 마음껏 여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감히 우리가 그런 삶을 택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거나, 그것들과 바꿀 만큼 내가 갈망하는 것의 가치가 크지 않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이라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보통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해치우며 일상을 살아간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꼭 찾아올 여행이라는 쉼을 위해서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쉼에 중독되고 있다


여행지로 휴식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건 과연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그만큼 사람들의 일상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의미일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싶을 수 있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도 그런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요즘은 제법 생겼다. 나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반 오십은 넘기면서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잘 모르겠는 엉킨 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그런데 노력하지 않으면 방황도 없다고 하니, 이 방황은 분명 내 노력이 만들어낸 움직임 같은 것일 것이다. 종착지인 해안선으로 파도가 점점 다가옴에 따라 그 높이가 살짝 더 높아지는 것뿐이겠지. 그러니 밀려오는 방황도 기꺼이 즐겨보기로 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흥미와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건 10,000원짜리 복권 당첨금 같은 게 아닐까? 분명 있긴 하지만, 은근 얻기는 힘든 그런 당첨금 말이다. 회사 안에서도 그만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삶,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도 다행인 건, 밖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이 요즘은 많이 양지로 나왔다. 결정은 늘 개인이 하는 거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각자가 지고 사는 거지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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