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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 3

3-(3)

by jeromeNa

마법 훈련장 바닥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붉은색 원형, 푸른색 나선형, 갈색의 육각형. 각기 다른 문양들이 돌바닥에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수정구슬과 금속 장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수정 주위로 작은 빛들이 반딧불이처럼 떠다녔다. 공기 중에는 마나의 잔향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전사 훈련장의 땀 냄새와는 전혀 다른, 건조하고 맑은 공기였다.


유성은 훈련장을 둘러보며 걸음을 멈췄다. 바닥의 마법진들이 각기 다른 속성을 가진 듯 미세하게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붉은 원형 마법진은 희미하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푸른 나선형은 주변 공기를 차갑게 만들고 있었다. 갈색 육각형 마법진 위로는 작은 먼지들이 천천히 회전하며 떠다녔다.


"선생님!"


엘리나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그녀는 뺨이 상기된 채 숨을 헐떡였다. 붉은 로브 자락이 뛰어오는 동작에 펄럭였고, 허리춤의 작은 마나석이 찰랑거렸다.


"유성 씨도 함께 오셨네요!"


유성을 힐끗 봤다. 손가락이 로브 자락을 꼬집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뒤로 세 명이 더 있었다. 모두 각기 다른 색깔의 로브를 입고 서 있었다. 연한 하늘색, 짙은 파란색, 흙빛 갈색. 각자의 속성을 드러내는 색이었다.


마르쿠스가 제자들 쪽으로 걸어가며 하나씩 가리켰다.


"소개해드릴게요. 먼저 린입니다. 바람 마법이 특화죠."


짧은 갈색 머리의 소녀가 고개를 숙였다. 연한 하늘색 로브가 미풍에 살랑거렸다. 실제로 그녀 주변의 공기가 미세하게 흐르고 있는 듯했다. 손목의 작은 팔찌가 희미한 은빛으로 빛났다.


"반갑습니다..."


린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녀는 유성을 한 번 보더니 금세 시선을 내렸다. 손가락이 로브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다음은 브렌트. 물 마법을 주로 씁니다."


안경을 쓴 마른 청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깔끔하게 빗은 머리, 반듯한 자세. 짙은 파란색 로브에는 물결무늬가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의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이 드러났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브렌트는 안경 너머로 유성을 관찰하듯 바라봤다.


"그리고 미라. 땅 마법 특화고..."


갈색 머리 소녀가 환하게 웃었다. 흙빛 로브에 나뭇잎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목의 호박석 목걸이가 따뜻한 빛을 냈다. 그녀의 발 주위로 작은 흙먼지들이 모여들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미라가 유성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흔들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흙냄새가 살짝 났다.


"마지막으로 토마스. 응?"


마르쿠스가 멈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토마스가... 어디 갔지?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제자들도 두리번거렸다.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아, 토마스요?"


미라가 훈련장 입구 쪽을 가리켰다.


"아까 새로운 분 오신다고 하니까 어디론가 갔어요. 뭔가 중얼거리면서..."


마르쿠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중얼거렸다고?"

"네. '또 이상한 놈이 왔나' 이런 식으로..."


미라가 머쓱하게 손을 긁적였다.

린이 손가락으로 로브 자락을 더 세게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사기꾼일지도 모른다'고도했어요..."


브렌트가 한숨을 쉬었다. 안경을 고쳐 쓰는 동작이 피곤해 보였다.


"토마스는 원래 그래요. 새로운 걸 싫어하죠. 특히 전통적인 마법 방식을 건드리는 건 더더욱..."


마르쿠스가 유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미안한 표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토마스는 좋은 아이인데, 고집이 좀 세서요. 5년 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수련해 왔거든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나중에 따로 소개해드리죠."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개발팀에서도 새 프레임워크 도입할 때마다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존 방식이 더 안정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다', '왜 굳이 바꾸려고 하느냐'. 익숙한 패턴이었다.


브렌트가 엘리나 쪽을 힐끗 봤다. 그의 눈빛에 호기심이 담겼다.


"엘리나, 유성이라는 분이 이분?"


엘리나가 움찔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유성을 봤다.


"저, 그게..."


손을 꽉 쥐었다. 풀었다. 또 쥐었다.

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유성씨라는 분이 가르쳐줬다면서?"


엘리나의 손가락이 로브 자락을 비틀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참는 표정이었다. 볼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음... 그게..."


훈련장 입구에서 무거운 발걸음이 들렸다. 쿵. 쿵. 돌바닥이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선생님, 늦었나요?"


까만 머리의 건장한 청년이 들어섰다. 붉은색 로브였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의 로브와는 달랐다. 화려한 금빛 문양이 어깨와 소매에 수놓아져 있었다. 실력자의 표시였다. 그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턱을 들고 들어오는 걸음걸이, 팔짱 낀 자세.


"아, 토마스 왔구나."


마르쿠스가 안도하듯 말했다.

토마스의 시선이 훈련장을 훑었다. 제자들, 마르쿠스, 그리고 유성. 그의 눈이 유성에게 닿았을 때 멈췄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토마스, 유성 씨를 소개할게."


마르쿠스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갔다.


"마법 이론 연구가야. 오늘부터 우리 훈련을 참관하실 예정이다."

"안녕하세요."


토마스의 톤은 평평했다. 관심 없다는 듯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유성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평가하는 눈빛. 그리고 별로라는 결론을 내린 듯한 표정.


그는 엘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엘리나, 어제부터 소문이 자자하던데?"


토마스가 한 걸음 다가섰다.


"대체 뭘 한 거야? 어제 오후부터 갑자기 파이라가 완벽해졌다면서?"


엘리나의 손이 더 세게 로브를 움켜쥐었다. 유성을 힐끗 봤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냥... 연습이요..."

"연습?"


토마스가 코웃음을 쳤다.


"5년 동안 연습해도 안 되던 게 하루 만에? 뭔가 숨기는 거 아냐?"


엘리나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발이 바닥을 톡톡 쳤다. 손이 떨렸다. 참고 있었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저, 그게..."


토마스가 팔짱을 더 세게 꼈다.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역시 뭔가 있구만. 혹시 금지된 마법이라도..."

"아, 답답해!"


엘리나가 터졌다. 그녀가 훈련장 한쪽으로 뛰어갔다. 붉은 로브가 펄럭였다.


"말로 하면 복잡해요! 그냥 보여줄게요!"

"엘리나, 훈련장에서 함부로 마법을..."


마르쿠스가 말리려 했지만 늦었다. 엘리나는 이미 표적 앞에 서 있었다.


"보시면 알 거예요!"


그녀의 눈에 자신감이 넘쳤다. 어제의 성공이 그녀를 변화시켰다.


훈련장 한쪽에는 나무로 만든 표적이 설치되어 있었다. 불에 그을린 자국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엘리나가 그 앞에 섰다. 다른 제자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오랜 훈련으로 몸에 밴 동작이었다.


엘리나가 심호흡을 했다.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공기 중에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그녀의 손끝에 모였다.


"마른 불씨여, 한 점으로 모여 타올라---파이라!"


목소리가 분명했다. 영창이 또렷했다. 어제와는 완전히 달랐다.

순간, 손끝에서 불덩이가 생성됐다. 주먹만 한 크기. 흔들림이 없었다. 불꽃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며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궤적이 곧았다.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팡!


표적 중앙에 정확히 명중했다.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불꽃이 퍼졌다가 곧 사그라들었다. 폭발 범위도 일정했다. 주변으로 튀는 불똥도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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