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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단서, 문헌, 유물, 신화와 전설의 인용은 실제 기록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 사이를 잇는 인과와 해석, 그리고 모든 사건과 사건과 관련된 역사, 단체, 인물은 허구입니다.
화요일 아침 여덟 시. 강윤서가 서류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검은 정장. 어제와 같은 옷.
- 준비됐어요?
강윤서가 박재원을 봤다.
- 네.
박재원이 시계를 확인했다. 정확히 여덟 시 삼십 분.
- 가죠.
두 사람이 나갔다. 연구실에 세 명이 남았다. 현진은 노트북을 켜고, 로시는 설형문자 노트를 펼쳤다. 의자를 뒤로 젖히며 사진을 들여다봤다. 이수진은 샘플 분석 결과를 정리하며 창밖을 봤다. 날씨가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조용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웅웅 거림만 들렸다.
아홉 시, 서울지방경찰청. 강윤서와 박재원이 도착했다. 로비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방문증을 받았다. 최 형사가 삼 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올라오세요.
최 형사가 복도를 걸었다. 빠른 걸음. 박재원도 보폭을 맞췄다.
회의실이 아닌 복도 끝 작은 상담실. 문을 열었다.
- 여기서 얘기하죠.
최 형사가 의자를 권했다.
세 사람이 앉았다. 테이블 위에 투명 비닐봉투 하나. 증거물 태그가 붙은 검은색 노트가 들어 있었다.
- 어제 강 대표님이 보신 노트입니다.
최 형사가 말했다.
- 증거물이라 원본은 못 드리고, 제가 주요 내용만 말씀드릴게요. 사진 촬영이나 복사는 안 됩니다.
- 알겠습니다.
강윤서가 단호하게 답했다.
박재원이 메모 준비를 위해 펜을 꺼냈다. 펜을 한 번 돌렸다.
최 형사가 비닐봉투를 열었다. 장갑을 끼고 노트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펼쳤다.
- 7월 18일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여기 제목 같은 게 써있어요. '별의 지도'.
- 별의 지도요?
박재원이 빠르게 받아 적었다.
- 네. 그 아래 숫자들. 37.5326, 126.9652. 마이너스 15, 230.
박재원의 펜이 움직였다. 빨랐다.
페이지를 넘겼다.
- 8월 3일. 엠유엘점에이피아이엔... 영어로 이렇게 써있어요.
- 물아핀이에요.
박재원이 말을 끊었다.
- 뭡니까?
- 바빌로니아 천문 문서요.
- 아.
최 형사가 계속 읽었다.
- 금성 263일 주기, 화성 780일 주기, 교차 15년 8개월.
박재원의 펜이 더 빨라졌다.
- 9월 12일.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 한경지략 권3. 용산 서쪽 언덕 옛 제단. 깊이 추정 1.8미터.
- 조선시대 지리지.
박재원이 설명했다.
최 형사가 메모했다. 계속 넘겼다.
- 10월 7일. 천관서 재확인. 붉은 별과 흰 별이 서로 만나면. 화살표. 화성 플러스 금성. 전쟁의 시작과 끝.
- 천관서는 중국 천문서예요.
- 그렇군요.
- 마지막 기록은요?
박재원이 시계를 슬쩍 봤다. 아홉 시 십오 분.
최 형사가 노트 끝으로 넘어갔다.
- 11월 19일. 내일 확인. 좌표 재계산 완료. 깊이 1.5~2.0미터. 오전 10시.
최형사가 페이지 맨 아래를 가리켰다.
- 여기 작은 글씨로... '만약 맞다면'.
- 그게 마지막입니까?
- 네. 11월 20일 이후론 빈 페이지입니다.
박재원이 메모를 정리했다.
- 중간에 다른 내용은요?
- 숫자나 계산식들이 있는데...
최 형사가 한 페이지를 펼쳤다. 숫자와 기호들이 빼곡했다.
- 이런 거요. 저는 이해 못 하겠더라고요.
박재원이 봤다. 각도 계산식. 삼각함수. 궤도 주기.
- 천문 계산이에요.
- 그런 것 같습니다.
최 형사가 노트를 닫았다. 다시 비닐봉투에 넣었다.
- 이게 제가 공유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 감사합니다.
강윤서가 고개를 숙였다.
- 한 가지만 더.
최 형사가 다른 파일을 꺼냈다.
- 서울대 도서관 열람 기록입니다.
- 받으셨어요?
- 네. 7월부터 10월까지. 고서실 위주예요.
- 어떤 책들이요?
- 한경지략, 천관서, 개원점경, 보천가... 전부 천문이나 지리 관련 고서입니다.
박재원이 받아 적었다. 펜을 돌렸다.
- 김 교수님 컴퓨터 분석은요?
강윤서가 물었다.
- 디지털 포렌식팀이 진행 중입니다. 시간 좀 걸릴 겁니다.
- 결과 나오면 공유 가능하세요?
- 검토해 보겠습니다.
- 현장 조사는 가능합니까?
- 당분간 어렵습니다. 실종 사건 수사 중이라...
- 언제쯤이요?
강윤서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 최소 일주일은요.
강윤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회의가 끝났다. 열 시. 강윤서와 박재원이 경찰청을 나와 차에 탔다.
강윤서가 시동을 걸며 말했다.
- 연구실 돌아가서 정리하고, 오후에 도서관 가요.
- 좋아요.
박재원이 시계를 봤다. 열 시 삼 분.
열한 시, 연구실에 도착했다.
- 어떻게 됐어요?
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 노트 내용 일부만 들었어.
박재원이 가방을 던지듯 놓았다.
- 증거물이라 사진은 못 찍었고.
모두가 모였다. 강윤서와 박재원이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 정리하죠.
박재원의 메모를 보며 적기 시작했다. 글씨가 또박또박했다.
김 교수 노트: 7/18: "별의 지도" 37.5326, 126.9652 -15, 230
8/3: MUL.APIN 금성 263일, 화성 780일 교차 15년 8개월
9/12: 한경지략 권3 용산 서쪽 언덕 옛 제단 깊이 1.8m
10/7: 천관서 붉은 별 + 흰 별 전쟁의 시작과 끝
11/19: 좌표 재계산 완료 깊이 1.5~2.0m "만약 맞다면"
- 이게 전부예요.
박재원이 마커를 내려놓았다.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화이트보드를 봤다.
현진이 조용히 말했다.
- 첫 번째 숫자들... 좌표인 것 같네요.
- 맞아요, 위치 확인가능해요?
강윤서가 물었다.
- 확인해 볼게요.
노트북을 열어 지도 사이트에서 좌표 입력 후 지도를 확대했다.
- 용산 미군기지 부지예요. 정확히 제단 발견 지점이고요.
- 마이너스 15랑 230은요?
현진이 생각했다.
- 각도일 것 같은데...
박재원이 끼어들었다.
- 천문 관측 각도일 거예요. 고대 제단은 보통 특정 천체를 향해 정렬되거든요.
펜을 탁 놓았다.
- 고도각이랑 방위각.
- 확인할 수 있어요?
강윤서가 현진을 봤다.
- 천문 소프트웨어로 계산하면 될 것 같아요.
현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기원전 280년 용산에서 그 각도에 뭐가 있었는지.
- 해보세요.
현진이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위치 설정. 서울 용산. 37.5326, 126.9652. 날짜. 기원전 280년 1월 1일. 시간 자정.
화면에 밤하늘이 나타났다.
- 방위각 230도.
시야를 남서쪽으로 회전시켰다.
- 고도 마이너스 15도.
지평선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거기에 붉은 점.
- 화성이에요.
모두가 화면을 봤다. 로시가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 오.
- 지평선 밑에 있네요.
이수진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 시간을 바꿔볼게요.
현진이 시간을 앞으로 돌렸다. 한 시간씩. 별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화성이 올라왔다.
새벽 다섯 시쯤. 화성이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 여기요.
현진이 화면을 확대했다. 화성 옆에 밝은 점.
- 금성이에요. 같이 떠요.
- 합이네요.
로시가 말했다. 화면을 더 가까이 봤다.
- 날짜를 바꿔볼게요.
현진이 1월부터 12월까지 확인했다. 금성과 화성의 거리를 측정했다.
- 3월 15일.
화면을 가리켰다.
- 새벽 5시 20분. 두 행성이 0.5도 이내로 접근해요.
박재원이 펜을 빠르게 돌렸다.
- 그날이에요. 기원전 280년 3월 15일. 용산에서 금성과 화성이 함께 떴어요. 정확히 남서쪽 방향에서.
강윤서가 화이트보드에 추가했다. 빠르게. 또박또박.
기원전 280년 3월 15일:
금성 + 화성 합 (0.5도)
남서쪽 (230도)
새벽 5시 20분 → 제단 건립일?
- 김 교수님이 이걸 계산하신 거예요.
박재원이 말했다.
- 그런데...
이수진이 창밖을 봤다.
- 왜 그날이 중요한 건가요?
- 천관서에 나와 있대.
박재원이 메모를 봤다.
- 붉은 별과 흰 별이 만나면... 전쟁이 끝난다고.
- 무슨 전쟁이요?
이수진이 물었다. 조심스러웠다.
박재원이 노트북을 열었다.
- 확인해 보면....
검색. 기원전 3세기 한반도. 타이핑 소리.
- 한반도 기록은 거의 없어. 고조선 후기인데 중국 사서에도 단편적인 언급만.
- 로마는요?
강윤서가 물었다.
- 타렌툼 전쟁이 막바지였어요. 기원전 272년에 끝나고.
박재원이 스크롤을 내렸다.
- 하지만 이탈리아 반도 안의 일이죠.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 메소포타미아는요?
- 셀레우코스 왕조 시대인데... 한반도랑 연결 안 돼.
- 그럼 왜 여기에 제단이 있는 거죠?
로시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