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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 인간 중심 사고와 데이터의 부활

복잡함 속의 단순함

by jeromeNa

우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규칙을 찾고, 패턴을 정의하며, 이를 통해 질서를 만들어낸다. 프로그래밍에서 변수와 데이터는 이러한 질서를 창조하는 도구다. 어지럽게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맞춰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드는 것처럼, 변수는 변동하는 값을 담아 구조화하고, 데이터는 현실의 정보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역할을 한다.


프로그래밍에서는 추상화(abstraction)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구조로 정리한다. 변수는 변화하는 값을 담고, 함수는 특정한 패턴을 정의하며, 데이터는 우리가 관찰한 현실을 구조화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접근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


변수와 데이터: 복잡함 속의 단순함


프로그래밍에서 변수(variable)는 변화하는 값을 저장하는 개념이다. 이는 우리가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과 연결된다. 데이터 과학자들은 현실의 현상을 숫자로 변환하고, 이를 분석하여 패턴을 찾는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날씨 예측 시스템, 검색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일정한 규칙을 찾아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var weather = 'rain';
val weather = 'rain';
const weather = 'rain';
let weather = 'rain';
int temp = 10


변수는 위의 코드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정의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인 이유는 프로그래밍 언어마다 정의하는 방식이 틀리기 때문이다. var, val, const, let, int, float 등 정의하는 방법이 틀리다고 하더라도, “ 변수형 변수이름 = ‘값’ ”와 같이 단순한 구조는 같다. 가장 기본적인 구조이며, 가장 기초적인 문법이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프로그래밍 기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혼란스러운 세계를 질서 있게 정리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시대가 바로 르네상스이며, 그 시대의 대표적인 사례가 원근법이다.


르네상스 변화의 바람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감소하면서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구 감소로 인한 농노제의 붕괴와 기존 신 중심 질서의 약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세보다 현실 세계의 가치를 중시하게 만들었고, 인간과 현실을 더 깊이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는 상업과 무역으로 번영하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특히 피렌체를 중심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와 같은 도시들에서는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부유한 상인 계층이 예술과 학문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새로운 문화 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재탄생'을 의미하는 이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사상과 예술을 부활시키며,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능력과 이성을 중시하는 인문주의를 발전시켰다.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은 이러한 르네상스의 확산을 가속화했다.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과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했고,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다빈치와 같은 위대한 학자들이 등장하여 근대 과학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직관적이며 비체계적인 공간


중세의 화가는 세계를 직관적으로 묘사했다. 사물과 인물의 크기는 원근이 아니라 ‘중요도’에 따라 결정되었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는 항상 화면의 중심에 크고 위엄 있게 자리 잡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마치 작은 조연처럼 그려졌다. 그들에게 공간적 질서란 필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었고, 감각적 경험보다 신학적 의미가 우선이었다.


AD_4nXc1EiapTFUPEuDtky_HZMOEDSNd7tGOxn-WGvg3UiUknQWw4wSBOin1MLglBcVYxETwcqw6SzPfzWvJcLZuZVKJ8r9Dsb1q1VT4B6hfVZqYx2t0EneSg1udLrlnJWkU_3Pufg9hDw?key=GdOjhPNd0mJvh694QQNh9_nX 두치오, <마에스타>, 1308 ~ 1311, 판넬에 템페라


그러나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현실을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경험을 존중하는 흐름 속에서,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개념이 점차 중요해졌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수학과 기하학을 통해 공간을 질서 있게 배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브루넬레스키와 소실점의 발견


피렌체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브루넬레스키는 오랫동안 공간의 법칙을 연구했다. 그는 세상을 재현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을 찾기 위해 피렌체 두오모 앞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는 피렌체의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작은 패널을 제작하고, 이를 거울과 함께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모든 평행선이 한 점(소실점)으로 수렴한다는 법칙을 발견한다.


AD_4nXd6VF_lIZ_OJG0QalkCTntIMxWfgJ04n_Pl7JExEyjmTRAMfq31nNW6pipgWlkhWZATuqkLxUKqU7uG_IeSQzFHec-AGZyiOUjrqSxHX1JGjzvNwpE_WoN-ikYq-ZtPqbMs-Ea0jg?key=GdOjhPNd0mJvh694QQNh9_nX 브루넬레스키 원근법 시현 상상도 : https://brunch.co.kr/@ac5feed12284416/181


이 원리는 간단하지만 혁명적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선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을 정립했고, 이후 이 기술은 르네상스 미술의 표준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거장들은 이를 활용해 깊이감 있는 공간을 창조하며, 마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원근법과 좌표 시스템: 르네상스의 기하학적 사고


브루넬레스키의 발견은 단순히 미술의 발전을 넘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데카르트 좌표계(Cartesian coordinate system) 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현대의 좌표 시스템에서 X, Y, Z 축을 사용해 공간을 표현하듯,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도 소실점을 중심으로 화면의 모든 요소를 배치하는 구조를 따랐다. 3D 그래픽이나 데이터 시각화에서 X, Y축을 활용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한 개념이다.


AD_4nXdflhKsPOUDclfve6rniSuJv9S1n6oExBwriozkrnjAWyDlwmzUu2kshOErEPS6Cx1QIRWFYCNG2FMKuSyUJBPskQYEb_N_k1ctxjaldXD-s2X1pZRH5zLOLN4aHT31rf-wr-OMPQ?key=GdOjhPNd0mJvh694QQNh9_nX 데카르트 좌표예 : https://kr.123rf.com/photo_20988020_데카르트는-평면-좌표계.html


이처럼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미술뿐 아니라 건축, 도시 계획, 기하학, 그리고 나아가 현대의 컴퓨터 그래픽과 데이터 분석 기술까지 영향을 미쳤다.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직관에서 수학적 질서로 변화한 것이다.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든 것처럼, 변수와 데이터는 우리가 세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 단순히 변수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질서를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 혼란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발견하려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었고, 데이터는 인간의 지성을 통해 세상을 다시 이해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원근법’을 찾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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