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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 동적 구도와 절차적 사고

동적 구도와 절차적 사고

by jeromeNa Feb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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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르네상스의 유산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정돈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는 불가피하며, 때로는 질서와 균형보다 움직임과 흐름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 프로그래밍에서도 단순한 정적인 데이터 구조를 넘어, 흐름을 조정하고 조건에 따라 동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프로그래밍: 움직임을 다루는 언어


프로그래밍에서 절차적 사고(procedural thinking)는 일련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작업들은 정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동적 과정 속에서 실행된다.                              


var a = '변수 첫 번째 값'
a = '변수 두 번째 값'
a = '변수 세 번째 값'

print(a) // 변수 세 번째 값이 출력된다.


이처럼 프로그램은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실행되며, 변수의 값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더 나아가 조건문을 통해 프로그램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var a = '고양이'

if(a == '고양이') {
    print(a + '는 동물이다.')
} else {
    print(a + '는 동물이 아니다.')
}


‘if’는 단어 뜻 그대로 ‘만약..’이라는 의미다. ‘만약에 a가 고양이라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a가 고양이라면 ‘고양이는 동물이다’라고 출력된다. ‘else’는 ‘아니면…’에 해당한다. a가 중간에 ‘연어’라고 변경됐다면 ‘고양이’가 아니기에 ‘연어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출력된다. ‘if.. else’는 논리학적으로 참, 거짓을 판단하고 그에 맞는 코드를 수행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정적 질서와 동적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왔다. 르네상스 이후 등장한 바로크(Baroque)는 그런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시대였다.


르네상스의 한계와 바로크의 등장


르네상스는 수학적 원리와 인문주의(Humanism)를 바탕으로 한 예술적 혁명이었다.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원근법을 확립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와 라파엘로(Raphael)가 인체 비례와 조화를 연구하며 예술을 정밀한 과학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균형과 조화가 점점 너무 엄격한 규칙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예술은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러움보다 이상적인 모습을 강조했다. 모든 것이 너무 정교하고 질서 정연하여, 감정의 격렬한 움직임이나 변화의 순간이 부족했다. 인간과 자연을 기하학적 질서 속에서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곧 새로운 표현 방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단순히 균형 잡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감정을 경험하며, 움직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종교개혁과 감각적 신앙의 부활


16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Reformation) 이 일어났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95개조 반박문(1517년)을 시작으로 개신교가 확산되면서, 가톨릭 교회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에 가톨릭은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을 통해 강력하게 대응하며,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을 다시 강하게 불러일으키기 위해 감각적이고 강렬한 예술을 강조했다.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고, 신비로운 체험을 제공하며, 단순한 교리적 메시지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바로크 미술과 건축이 탄생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1626)성 베드로 대성당 (1626)


성당 내부는 웅장한 곡선과 장식들로 채워졌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극대화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조각과 회화는 단순한 정적인 형태가 아니라, 강렬한 감정을 담은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했다. 신을 향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움직임과 드라마틱한 연출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같은 예술가들이 등장하여 바로크의 역동성과 감정을 예술 속에 녹여냈다.


과학 혁명과 역동적 세계관


르네상스가 인간의 이성과 기하학적 질서를 강조했다면, 17세기의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 은 세상을 더욱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공간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지동설(Heliocentrism) 이 확산되며, 우주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공간임이 밝혀졌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망원경을 통해 천체의 운동을 관찰하며, 우주가 르네상스의 기하학적 조화보다 훨씬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연속임을 증명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운동 법칙이 등장하면서, 세상의 움직임이 단순한 질서가 아니라 힘과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동적인 과정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과학적 변화는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는 더 이상 정적인 질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바로크 예술은 역동적인 구도를 강조하게 되었다.


베르니니: 움직임을 조각하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차이는 단순히 ‘더 화려해졌다’는 것이 아니다. 바로크는 시간성(Temporality)을 강조하며, 단순한 정적인 구도가 아니라 움직임이 포함된 장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베르니니의 작품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듯한 강렬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베르니니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폴로와 다프네>는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태양신 아폴로가 님프 다프네를 사랑하게 되지만, 다프네는 그를 피하고자 신에게 간청하여 월계수로 변한다. 베르니니는 바로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극적인 순간을 조각으로 표현했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 <아폴로와 다프네>, 1622~1625년, 243cm, 보르게세 미술관잔 로렌초 베르니니, <아폴로와 다프네>, 1622~1625년, 243cm, 보르게세 미술관


베르니니는 움직임의 과정을 조건문처럼 단계적으로 연결하여, 다프네의 손끝과 발끝에서 나무껍질이 돋아나는 순간을 포착했다.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성 테레사의 황홀경(Ecstasy of Saint Teresa)>에서 성 테레사는 신비로운 황홀경에 빠져 있으며, 천사가 황금빛 창으로 그녀를 찌르는 순간이 묘사된다. 이 작품이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를 활용하여 움직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경>, 1647-1652년, 로마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잔 로렌초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경>, 1647-1652년, 로마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바로크는 단순한 화려함이 아니라, 세상을 정적인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으로 바라본 사고의 변화였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은 현대 프로그래밍, 알고리즘, AI, 인터랙션 디자인 등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하고 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의 변화는 완벽한 질서에서 벗어나, 유동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정적인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사고하고, 창조하고, 움직인다. 바로크와 프로그래밍은 결국 이 변화를 다루는 또 하나의 언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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