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SR을 만든 존 카밧진은 Mindfulness(마음챙김)를 이렇게 정의했다.
“Mindfulness is paying attention in a particular way:
on purpose, in the present moment, and nonjudgmentally.”
“마음챙김은 특정한 방식의 주의 기울임이다.
의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비판단적으로”
여기서 "비판단적"이라는 것이 무슨말이냐. 여기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당연히 "비판단적"이 무슨말인지 알려면 "판단적"이라는 말부터 이해해야 한다.
판단적은 이런 것이다.
어떤 직장 후배가 당신을 마주쳤는데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쳐갔다.
→ "그 자식은 싸가지가 없어." 이것이 판단적이다.
친구가 하루 종일 답장이 없다가 밤늦게서야 메시지를 보냈다.
→“걔는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이것도 판단이다.
연인이 다투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 "나는 관계의 피해자야.”
회의 자리에서 상사가 당신에게만 유독 날카로운 말을 했다.
→ "이 조직은 나를 괴롭히는 곳이야"
시험에 실패하여 좋은 직장을 가지지 못했다.
→ "나는 완전히 실패자야."
부부가 모두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자녀들은 공부를 잘하고, 가족들이 모두 화목하다.
→ "우린 더 좋을 수 없는 완벽한 가족이야." 이것 역시 판단이다.
이것을 다 하지 말자는 것이 바로 "비판단적"의 정신이고 "있는그대로"의 정신이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프레임도 씌우지 말아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판단과 해석은 지극히 임의적이다.
해석은 사건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해석은 백가지, 천가지가 가능하다.
백가지 천가지의 해석 중 임의로 선택한 한가지를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다.
비판단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착해지게 만들까? 상처를 덜 받게 할까? 세상에 덜 분노하게 할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비판단적의 가장 큰 이득은 선택지를 준다는 것이다.
판단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게 되면,
내 감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현실은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는 감정과 해석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실패자다”라는 생각이 곧바로 우울로 굳어지지 않고,
“실패자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다른 자리에 서 있다.
해석이 내가 되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잃는다.
비판단적은 그 동일시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스스로에게는 회복탄력성을 주고, 남들을 불필요하게 비난할 이유도 줄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