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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Nov 25. 2020

시작은 무조건 소맥이었다

술, 친구를 만나다

자리에서의 첫 시작은 무조건 ‘소맥’이었다. 

소주와 맥주를 적당히 섞는 그 술이 바로 소맥이며, 어감상으로 사람들은 ‘쏘맥’이라고 부르는걸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직장인들의 모든 모임의 첫 잔은 왜 이 공식이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다. 

소주와 맥주를 적당히 섞는, 그러나 그 ‘적당히’의 개념은 모두에게 상대적이다. 두 술을 적당히 타는 농도는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다르다.

나는 소주 반잔에 맥주는 글라스의 육부(60%) 비율을 선호한다. 한 번에 원샷으로 털기에 딱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친구들의 모임에서는 소주 거의 한잔 가득에, 맥주도 글라스의 약 80%까지 섞어서, ‘세게’ 타서 주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나는 이 소맥의 애호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으로만 주종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첫 잔이나 두 번째 잔 까지만 섞어서 먹고, 그다음부터는 소주로만 정해서 마시는 편이다. 

아무래도 계속 섞어 먹게 되면, 두 종류의 술이 적당히 잘 흡수되어, 너무 빨리 취해버린다거나, 또는 술로만 배가 채워진다거나, 아니면 빈병들이 계속 쌓여나간다거나, 아니면 계속 누군가가 조제하는 수고를 맡아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이 방식으로 술을 먹게 되면, 이상하게 다음날 숙취가 오래갔던 것 같다.


그 첫 잔은 다 같이, 원샷으로 먹는다면 더없이 맛이 난다.

빈 속에 첫 잔을 마시고 나면, 으레 3분 이내에 신호가 온다. 식도부터 위장까지 자극적인 알코올이 흡수되어 넘어가는 느낌.


찌릿찌릿-


그 자극의 정도를 굳이 따지자면, 더운 여름날 아주 차가운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고 난 뒤 온몸에 퍼지는 청량함과 짜릿함보다 그 첫 잔의 찌릿함이 조금 더 강한 자극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첫째 잔과 두 번째 잔을 ‘조제주’로 한 이후에는 주로 소주만으로의 자리가 이어진다. 

쓴 소주를 안주 없이 먹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안주 한 입에 소주를 털어 넣는 마시기 방식을 습관처럼 해오고 있다. 

삼겹살을 먹을 때는 적당히 쌈을 하나 싸서 건배 후, 소주를 마시고 쌈을 먹는다. 회를 먹을 때도, 회를 먼저 초장이나 간장에 묻혀 장전하고 있다가 소주를 털어 먹고, 안주를 먹는다. 

족발도, 곱창도, 막창도... 모든 소주 안주는 그런 식의 공식이 통했다.

지인들도 나와 술자리를 함께 할 때는, 이런 한 쌈에, 한 잔의 방식을 같이 즐겼다. 

간혹 모르는 사람이나, 처음 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이 그 방식으로 장전하여 나에게 건배를 제안하는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런 한 쌈에, 소주 한 잔의 방식은 유용했다.

안주와 술이 함께 들어가니 음식이 더 맛있었고, 술과 음식을 같이 하여 생각보다 빨리 취하지도 않았다. 단점이라면, 배가 부르지만 실상은 술과 함께 먹어 안주를 많이 섭취하지 않아서 그다음 날은 숙취와 함께 허기가 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단점은 과음을 해도 과식까지 이어지지 않아 몸을 관리할 수 있다는 측면으로 보자면, 굳이 단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장전된 안주와 술을 먹으면서 어느 정도 취할 때쯤 1차가 마무리되곤 한다.

1차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기분 좋게 술이 취하게 된다. 

1차만으로는 항상 아쉽다. 2차는 자동. 

2차는 주로 맥주일 경우가 많다.

1차를 소주와 양념 가득한 고단백의 안주로 했다면, 2차는 맥주가 좋은 조합일 수밖에 없다. 

시원한 탄산과 쌉쌀한 맥주의 맛은 그전에 먹었었던 텁텁한 안주의 뒷맛을 정리하기에는 더없이 충분하다. 그때의 맥주잔은 500㎖ 큰 잔이 분위기를 내기는 좋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잔을 부딪칠 때, 또는 누군가의 위로를 전하며 부딪치는 큰 맥주잔의 건배 소리 –탁. 타닥- 은 마치 힘내. 얏. 하는 기합소리 같기도 하다. 

그런 2차의 안주는 노가리, 오징어 같은 주로 씹는 건어물일 경우가 많았다. 배가 부르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시원한 맥주와 이야기를 하며 먹을 수 있는 짭짤한 안주들은 맥주와 그리고 적당히 취한 2차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500㎖ 짜리 두어 세잔 이면, 이제 정말 술에 축축이 젖는다. 2차를 마무리할 때면, 이제 분위기에 취해 또 다음 차를 가자고 할 때가 많은데, 그때가 되면 내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술을 불러 마시는 게 되어 버린다.

그때, 자제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때, 집에 가지 않으면,

정말 망한다.

그런데, 나는 십중팔구 분위기에 취해 망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낮에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또는 전날 아내와 말다툼이 있었을 때, 사무실에서 낮에 일을 하는 도중에 목 아래부터 더운 기운이 끓어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끓어오르는 더운 기운은 커피나 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술이다.

혹자는 그것을 알코올 의존증 정도로 말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 그것은 고단한 삶에 있어서의 잠깐의 휴식과 토닥임이었다.

적당히 술에 축축해져 늘어진 몸뚱아리에서 쏟아 나오는 긴 한 숨 -

항상 ‘적당히’가 조절이 안되어 문제이지만, 긴 한 숨 몇 번에 기운을 다시 내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술은 내가 스스로 세운 높은 기준에 부딪혀 숨이 차오를 때, 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삶에 여유가 없어지고 예민해질 때, 몸과 마음의 긴장감을 풀 수 있게 해 준다.

항상 힘을 주어 신경을 곤두세우다가도, 몸의 힘을 풀어 그 상황을 이완할 수 있도록 하는 처방이 술이라고 한다면 좀 심한 과장일까.

힘 빼- 힘 빼- 라고 속삭여 준다.


돌이켜보면, 술은 항상 내 곁에 있던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였다.

앞날이 막막하던 대학시절에는 늦은 밤 도서관을 내려오며 하숙방에 같이 오던 존재였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속이 탈 때마다 자취집에서 같이 하던 친구였다.

결혼식 전날 착잡하고 떨리는 마음을 잡아주던 친구였고, 심지어 신혼 첫날밤도 함께하던 친구였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같이 있어 분위기를 띄워주던 흥겨운 친구이기도 했고, 가끔은 혼자인 나를 토닥여주던 존재이기도 했다.

물론 그 친구를 과하게 오래 만나면 다음날 되려 힘들기도 했다.


마흔을 훌쩍 넘어, ‘중년’이라는 시절을 살고 있는 요즘,

이제 몸에서 슬슬 이상 신호를 보내온다.

뱃살은 기본. 

고혈압, 고지혈증,,,


언제까지 그 친구를 건강한 몸과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위안과 기쁨을 더 오래 누릴 수 있도록 이제 스스로를 천천히 관리해야 할 것 같다.


그 친구가 좋다고 너무 자주 보지 않기.

운동을 꾸준히 하기.

다른 친구도 찾아보기.

.

.

.

그래도 오늘 한 번만 더 만나고..


사진1 출처 : http://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19051001366

사진2 출처 :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23602

사진3 출처 :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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