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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Jul 13. 2020

여덟 살의 나를 만나다.

나를 사랑하기(1)


나는 우연히 비폭력대화 강의를 듣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연습모임에 열심히 참여했으며 내 삶에 크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 일(여덟 살 아들의 분노가 폭발할 때 https://brunch.co.kr/@jerrybuild/1)이 있은 후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내가 알아차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머니, 여덟 살짜리 아이가 그렇게 무서우세요? 어머니가 힘도 더 세시잖아요”

놀이치료 선생님의 이 말이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1호가 화를 내는 순간을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정서적으로 어린아이가 되었다. 아니, 나의 내면에 숨어있던 어린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는 늘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불쑥불쑥 짜증과 욕을 내뱉었고 진짜로 화가 나면 그 에너지가 무시무시했다. 어린 나는, 그런 엄마의 화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자주 맞았고 엄마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큰소리로 말하거나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무서워한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누군가 큰소리로 화를 내면 순간 어린 시절의 그 두려움에 휩싸인다.      



1호가 화를 낼 때도 나는 그랬다. 기껏해야 여덟 살의 아이일 뿐이지만, 큰 목소리로 화를 내고 딱딱한 말투로 말할 때면 순간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공포가 다시 나에게 나타났다. 그래서 정서적으로는 어린 내가, 물리적으로는 어른인 나를 만나서 나의 두려움은 다시 비극적인 방법(무시, 분노, 벌 등)으로 표현되고, 1호의 화는 더 커져만 갔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나다. 



나는 비폭력대화의 코어 자칼 프로그램을 통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났다.

그 날 아침, 누군가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댔고 엄마는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엄마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엄마의 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어린 나는 너무 무섭고, 맞은 게 너무 아프고,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었다. 엄마가 왜 나를 의심하는지, 내가 아닌데 사실을 말해도 왜 믿어주지 않는 건지, 도대체 누가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댄 건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나는 모든 게 잘 이해되지 않고 억울하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어린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어린 나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그래 네가 그런 게 아니야. 엄마도 나중에 알게 돼. 미안하다고 해. 그래도 지금 힘들지. 이리 와. 내가 지켜줄게. 이제 더는 맞지 않을 거야.


처음에 나는 어린 나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만 되풀이했다. 그냥 안아주기만 했다. 어린 내가 조금 진정이 된 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 내가 바라는 것은 안전, 신뢰, 따뜻함, 부드러움, 사랑 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몇 날 며칠을 어린 나와 함께 보냈다.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같이 울었고 같이 슬퍼했다. 며칠간 몸이 많이 아팠다. 어린 내가 충분히 괜찮아졌다고 느꼈을 때, 언제든 네가 힘들 때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나눴다. 


  


어린 내가 안정을 되찾은 후,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후에 나는 1호의 비극적인 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겼다. 그래서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해도 1호를 그저 안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저 그 작은 포옹이 되풀이되면서 우리의 관계는 질적으로 변화했다.     



 

의식의 저 아래에 두고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제는 거의 잊고 지내는 그 기억 하나가, 지금 나의 삶에 이토록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가끔 지금의 내가 힘든 경험을 반복하고 있을 때면 어린 나를 찾아가 본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거니? 하고.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편안해졌고, 행복해졌습니다. 

제 자신을 수용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삶에 감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이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실수를 되풀이하면서요.

다만, 이 글이 누구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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