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동안의 겨울 캠프는 여름 캠프에 비해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옷도 두껍고 짐이 한가득이다.
눈이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인지 준비물 목록에 방한 용품이 한가득이었다.
아침에 학교에서 출발하는 아이들에게 손 흔들어주고,
엄마들과 가볍게 수다를 떨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 한편에 놓여있는 스키 장갑을 보았다.
순간 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금도 눈이 쌓여있는데, 눈이 또 올 거라는데, 장갑도 없이, 손 시려서 어떡하지, 못 놀면 어떡하지, 감기 걸리면 어쩌지. 아이들은 이미 출발했는데. 캠프 장소까지 가서 주고 올까...'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 단톡 방에 글을 올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엄마들의 반응은 정확히 2가지로 나뉘었다.
먼저, 괜찮을 거예요. 누나들이 장갑 2개씩 가져가기도 해서 나눠줄 거예요~,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반응들이 있었고
다음으로, 선생님들께 연락해봐요. 택배로 보내요. 춘천(캠프 장소) 다녀와야겠네~ 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은 먼저 출발하고, 짐을 싣고 가는 트럭이 고장으로(!) 아직 출발을 못하고 있어서 그 트럭 편으로 무사히 장갑을 전달할 수 있었다.
고백건대, 사실 아이는 스키 장갑을 안 가져갔다 뿐이지, 털장갑은 가지고 갔다.
지금이라면 '털장갑 위에 비닐장갑 끼우고 놀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당황했었다.
준비물. 나는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하는 아이였다. 내가 산만한 아이라거나 기억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준비물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야 하는 것들이었고, 우리 집은 늘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준비물을 살 여력이 없었다. 나는 대체로 준비물 없이 수업시간을 보내야 했다. 스케치북도 없었고 물체 주머니도 없었다. 방학이 끝나면 탐구생활의 그 많은 활동들을 다 해오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크레파스가 없었는데 짝꿍이 절대로 빌려주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선생님이 와서 "같이 써라"하시면 흘겨보며 마지못해 슬쩍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가 선생님 지나가시면 다시 자기 쪽으로 당겨가고, 수업이 끝나면 "넌 왜 매번 크레파스도 없냐"라고 짜증도 내고, 어린아이들이니 그런 일이 수두룩 했다.
그리고 나도 어린아이였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몰랐고... 준비물을 챙겨 와야 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늘 곤욕이었다. 특히 미술 시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 날, 나는 아이가 손이 시리거나 잘 놀지 못할 것을 걱정했다기보다는 <준비물 없음>이라는 상황을 더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챙겨 온 것을 "나만" 안 가져온 그 상황. 그 자체를 걱정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고 이제 어른이 된 나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않고 살고 있었는데도 나의 무의식 깊은 곳 어딘가에는 준비물이 없어 늘 창피하고 불편했던 내가 남아 있어서, 내 아이가 혼자 준비물 없는 그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흔들어 깨운 것 같다. 그 부끄러움, 부러움, 불편함, 소외감, 눈치 보는 것, 막막함 등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왔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일어나더라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데 아직 내 몸과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그 오래된 흔적으로 나는 그 순간에 그렇게 흔들렸다.
내면의 힘을 기르기
나는 이제 아이가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았을 때에도, 이 날처럼 반응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이고, 다른 환경에서 지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라도 나와 다르게 반응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믿음은 내면의 힘이 충만할 때 진심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불안과 초조함을 애써 무시하고 '괜찮을 거야'하고 나 자신을 세뇌시키거나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임계점에 다다르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삐죽 튀어나오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불꽃이 튀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자주 하는 실수 하는데, 애써 나를 다독거리고 있다가 만약 아이가 "준비물 없어서 불편했어"라고 말하면, 어느새 아이에게 "그러게, 준비물 잘 챙겼어야지!!!" 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내면의 힘이 충만한 상태에서는 "준비물 없어서 불편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를 비난하거나 가르치는 대신에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앞으로 준비물을 잘 챙기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볼 수 있다.
내면의 힘을 기르는 좋은 방법 _ 알아차림, 자기 공감
때로,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흔들리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남들은 별스럽지 않게 지나갈 수 있는 일인데 유독 내가 심하게 흔들리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를 알아가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그 순간을 붙잡고 돌이켜보면, 나의 어떤 경험 그 자체나, 경험으로 인해 갖게 된 신념과 가치관 때문일 때가 많았다.
떠오르는 일이 있다면,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본다.'나에겐 이런 경험이 있었구나' '나는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알아차린다.
어쩌면 그 경험과 신념은 지금 돌이켜보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지금도 힘든 일이라면 그런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알아준다.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니? 잊어버려. 다 지난 일이야'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때 힘들었구나. 그래서 난 여전히 이런 일이 힘들구나... 슬프구나.. 두렵구나...'하고. 그리고그런 나를 마음으로 안아주며 스스로 자기 공감을 한다.
몸에 난 상처를 약으로 치유하는 것처럼, 아픈 데를 치료하고 나면 몸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마음에 난 상처를 알아차림과 자기 공감으로 치유하고 나면 마음도 건강해진다.
이렇게 마음이 건강해지면 나는, 상처투성이의 나, 껍질 속의 나, 철벽 치는 나를 벗어나서 자연스러운 나, 있는 그대로의 나, 나다운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편안해졌고, 행복해졌습니다.
제 자신을 수용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삶에 감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이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실수를 되풀이하면서요.
다만, 이 글이 누구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