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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Jul 23. 2020

선입견을 넘어서기

나를 사랑하기(4)



어느 날 A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껏 웃는 것을 보았다.

‘아,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A를 잘 모른다. 우리는 같은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어서 그저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였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간혹 마주치게 될 때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지나가는 정도의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는데, 그럴 때마다 A의 무표정한 얼굴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 안 좋은 일이 있나?

- 바쁜가?

- 내가 뭐 실수했나?

- 나를 싫어하나?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일어났고, 그때마다 나는 A가 점점 어려워졌고 가끔은 멀리서 보이면 피해 가기도 했다. 나와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단지 A의 그 무표정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날, A가 환히 웃는 것을 보며 나는 좀 안심했다.

‘저런 표정도 있구나. 아주 이상한 사람은 아닌가 봐’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깜짝 놀랐다.

나를 돌이켜보니, 나는 잘 웃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가가기 어려웠고 말을 걸거나 인사를 나눌 때도 왠지 긴장되고 위축되어 있었다.      





          

내가 7살 무렵부터 엄마가 일을 시작하시면서 우리 남매는 외갓집에 맡겨지다시피 했다. 외할머니와 큰외삼촌 가족이 함께 살았고, 큰 외삼촌네 아이들 4명과 남동생과 나를 포함한 총 6명의 아이들, 그리고 작은 외삼촌들까지. 이 대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하시느라 큰 외숙모는 무척 힘드셨을 것이다. 내가 10살 무렵까지 그렇게 외갓집에서 지내다시피 했으니 긴 시간이었고 숙모는 진짜 힘드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며 큰 외숙모가 참 대단하게 느껴지는데, 그때 나는 7살이었으니 숙모가 무섭기만 했다. 숙모는 잘 웃지 않으셨다. 나는 숙모의 찡그린 얼굴만 기억이 난다. 나를 혼내고 걸레를 빨아라, 방을 닦아라 했던 소리만 기억이 난다. 나는 늘 숙모의 기분을 살피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래 봐야 철부지 어린아이였지만.


숙모를 원망하거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무표정한 얼굴에 왜 긴장하는지를 (저 사람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가보네. 하고 돌아설 수도 있는데!), 왜 그런 얼굴을 보면 자꾸만 살피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내 안의 어떤 지점을 자극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A를 불편해하는 이유를 알기 전에는, 나는 A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A의 무표정에 불편한 반응을 갖고 있구나를 알게 된 후에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무표정'에 반응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자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나 탓이 아닌, 그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내가 갖는 선입견일 뿐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무표정'이 내 안의 어떤 지점을 자극하여 내가 상대방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에는 직되고 긴장된 모습이 아니라 한결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으로 A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대화와 관계를 시작하게 되면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나는 다시 A를 만나고 무표정한 A를 보면 여전히 조금 긴장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게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A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긴장하는 건 A자체가 아니라 '무표정'이라는 것을 알면서 A를 좀 편하게 볼 수가 있다.

가끔은 A에게 말도 걸어본다. "커피 드실래요?"

A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을 보고, 나도 조금 편안해진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살펴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반응이고, 제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삶에 감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과정중에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이 누구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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