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따르릉 따르릉
어릴 적부터 그랬다. 남들에게 잔소리든 쓴소리든 부정적인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만, '쓴 약이 몸에도 좋다'라고 나를 위한 피드백으로 생각하고 감내하는 성격도 되지 못했고,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무던한 성격도 되지 못했다. 그 부정적인 소리 자체가 내 몸에 날아오는 표창이 되어 쿡쿡 찔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니,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처음부터 내가 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알고 있다. 언제나 잘할 수만은 없고, 내가 잘하는 업무만 할 수도 없다. 사회에 이제 한 발짝 내민 초년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정당한 업무 범위 안에서 내려지는 지시라면 군말 없이 따랐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가장 싫어하는 업무는 바로 전화 업무였다. 배경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번에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한 마디를 놓치게 되면 다시 따라가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임기응변에 약해 갑작스러운 질문이 들어오면 어버버거리는 내 모습도 바보 같다 여겨졌다. 상사들이 나의 등 뒤에서 내 전화 업무를 한심해하는 상상은 덤이었다.
Z사에서 인턴을 할 당시의 일이었다. 입사 후 사무 보조 정도의 역할만 하다 처음으로 받았던 제대로 된 업무는 전화를 통해 인터뷰 약속을 따내는 일이었다. 각종 공공기관에 전화를 걸어 <별도의 대가를 드릴 수 없지만 시간을 내어 대면 인터뷰를 진행해 주실 수 있을지>에 대해 설득해야 하는 업무였다. 어설픈 설득에 당연히 수많은 거절을 당했다. 게 중에는 '우리가 그런 거 해주는 곳인 줄 아냐'며 화를 내는 곳도 있었다. 전화 하나를 걸 때마다 심호흡을 몇 번씩 해야 했다. 내가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하니 성과가 좋지 않을 수밖에. 매일 전화를 시도한 리스트와 거절한 리스트를 작성하여 보고하는 일이 숨이 막히게 무서웠다. 스스로 인턴에게 맡길 정도로 기본적인 업무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이후로 전화 업무가 더 무서워졌던 것 같다.
사무실 막내로 매일 사무실에 울리는 전화를 당겨 받는 일조차 나에게 주어진 시련 같았다. 그래서 X사에 입사해 좋았던 일 중에 하나는, 내선 전화가 없어 막내인 내가 당겨 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업무에 대해서 듣고 바보같이 몇 번씩 반문하고, 그러고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이상하게 적은 메모를 담당자에게 넘겨 내 멍청함을 옆 부서에까지 자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단점이기도 했는데, 나에게 오는 전화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내가 받아서 대응을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쪽지를 적어 부엉이를 날릴 수도 없고, 봉수대에 불을 피울 수도 없었다. 현대 사회생활에서 전화 업무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X사에서 사회생활을 4년 넘게 하면서 수많은 전화를 걸었고, 그보다도 더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고 받을 때마다 긴장하는 것이 무색하게도 대부분은 별 일이 없이 지나갔다. 이 중에서 내게 사건으로 기억될 만한 전화 업무는 극소수이지만,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 잊을 수 없는 몇몇 말들이 있다.
첫 번째는 1년 반 정도 됐던 것 같다. 정산을 위해 A사 광고주와 논의를 하던 중 정산 방식 변경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 해당 방법에 대해 내부의 재경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였고, 그 말을 전달하며 가벼운 마찰이 생겼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였으나, 재무에 대해 이해도가 없는 두 사람이 전화로 얘기해 봤자 맞닿지 않은 평행선과도 같을 뿐이었다. 담당자는 자신의 상사에게 전화를 넘겼고, 그 상사는 전화를 건네받자마자 '그 회사 사람들은 그렇게 다 멍청하고 제대로 하는 일이 없냐'며 소리를 질렀다. 너무 놀라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다 간신히 죄송하다는 말만 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광고주의 요청대로 정산 방식은 변경되었다. 그리고 A사의 상사는 내 상사를 통해 말이 심했다며 사과의 말을 전해왔다.
두 번째는 3년이 지났을 때였다. 내가 큰 사고를 친 이후로 굉장히 까다로워진 광고주 B였다. 최대한 두 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세세한 사항까지 모두 메일로 사전에 안내하고 있었으나, 이미 큰 실수는 벌어졌기에 의심의 여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급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광고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광고 이미지를 만들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수정이 불가피하였고, 일정상 광고주가 최대한 빠르게 확인 후 방향을 제시해줘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전화, 카카오톡, 문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을 취하였으나 한참 뒤에서야 연락이 닿은 광고주는 '왜 이제야 얘기하냐',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희와 일 못한다' 등 기분이 나쁜 티를 숨기지 않았다. 여유로웠던 일정에서 답변이 오지 않아 빠듯한 일정을 만든 것은 그 담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알고 있다. 업무들에서 내가 100% 무결한 것도 아니었고, 나보다도 더한 얘기를 들으면서도 오늘도 꿋꿋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슬픈 말이지만, 누군가를 불안이라는 절벽으로 떠밀기에는 이런 말들은 너무나 별 것 아니며, 고작 이 정도에 상처를 받고 아직까지 기억하는 내가 나약한 것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와 가슴은 다르게 움직여서 전화를 통해 날아오는 피드백의 화살들은 그대로 내 심장을 후벼 팠다.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마다 나의 멍청함을 증명하지 않기 위해, 무난하게 성공하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백 번 중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나는 가벼운 업무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전화 업무에서부터 불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