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만 둘 용기
매일 출근하면 팀 동료들과 나누던 대화는 대강 두 가지 선에서 정리된다. '퇴근(혹은 퇴사)하고 싶다', '점심 뭐 먹을까요'. 하루아침의 문을 여는 인사로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정작 퇴사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대체 매일 퇴사를 외치면서 왜 퇴사를 하지 않냐고 내게 물었지만, 원래 매일 퇴사를 외치는 직장인보다는 가만히 있던 직장인이 어느 날 갑자기 신기루가 되어 사르르 사라질 확률이 더 높은 법이다.
퇴사를 하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았다. 우선 회사를 다니기 싫다는 마음으로 그만 두기에는 나는 평생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다음 회사에서도 회사를 다니기 싫으면 그냥 그대로 그만 두기를 반복할 것인가? 그럴 깜냥은 되지 않으니 당장 무언가 싫은 것이 있더라도 일단 한 번은 참는 것이 내 인생에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로는, 당일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나의 고통은 최소한 한 달 이상 지속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퇴사 일정을 조율할 때 업무 정리와 인수인계를 고려해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두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퇴사하고 싶다고 바로 퇴사할 수 있을 확률은 극히 낮다. 오히려 한 달 이내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적응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마지막으로, 성격 상 그만둔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도 최소 1년 이상 근무하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심지어 내 돈 주고 다니는 학원도 다니기 싫음에도 그만두겠다고 하지 못해 반쯤 울면서 다녔다. 장기여행이나 취업 같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이쯤 되면 내가 바보인가 싶지만, 그런 얘기를 할라 치면 목구멍에 턱 걸려서 나오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그렇기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용기와 그 이상의 결단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상태로 병원을 다니며 약을 복용하면서도 퇴사하겠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내년 봄에 그만두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그만 둘 용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새로 온 팀장님, 'K' 때문이었다.
K는 출근 첫날부터 긴 면담(이라고 쓰고 자기 어필이라고 읽는다)을 통해 본인이 우리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해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예약 시간 상 근무시간 중에 병원을 가야 하는 나로서는 K에게 미리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기간 동안 어떤 문제로 인해 힘들었고, 어떤 증상이 있었으며, 현재는 정신과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2주에 한 번은 근무시간 중에 잠시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얘기를 먼저 꺼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던 K는 얼마 가지 않아 내가 가장 공포감을 느끼고 있던 전화 업무를 맡기기 시작했다. 회사라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기에 버릇을 들여 고쳐야 한다는 이유였다. 어느 정도 이해도 갔지만, 전화 업무를 단순히 싫어서 피했던 것이 아니었다. 알림 하나, 진동 하나에도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공포감으로 다가와 몸이 굳던 시기였다. 너무 억울해서 병원에서도 물어봤다. 이런 상황인데 제가 억지로라도 시도를 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단호한 대답이 그나마 나의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K가 나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 같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업무에 공백이 생긴 점에 대해 나에게 책임을 물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첫 번째 불만은 내 업무에 대한 공백이 무엇 때문인지 K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며, 두 번째 불만은 K야 말로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완성되지 않아 나의 업무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K와 함께 일하면서 내가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결론은 No였다. 그날 퇴사를 결심했고, 다음 날 퇴사 면담을 신청했다. 정말 벼랑 끝에 몰리는 심정이 되자 그만 둘 용기는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생겼다. 하루 만에 퇴사를 결심하고 그만두겠다 말하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