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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달해 Apr 19. 2016

'칸느 박' 박찬욱, 신작 들고 칸으로!

[대중문화 이야기]

                                                                                                          

박찬욱 감독이 ‘칸느 박’이란 별명 값을 톡톡히 해냈다. 신작 ‘아가씨’를 5월 11일 개막하는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본선 경쟁 부문에 올려놓으며 최근 해외 영화제에서 지지부진했던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살렸다. 수상을 한 것도 아니고 경쟁 부문에 올랐을 뿐인데 벌써부터 호들갑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한국영화가 단 한 편도 경쟁 부문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생각이 달라질 듯하다. 오랜만의 성과일 뿐 아니라 ‘올드보이’와 ‘박쥐’로 두 차례 칸에서 수상한 박 감독의 신작이라 경쟁 결과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최근 수년간 국내 영화산업의 빠른 성장세와 달리 작품성으로 세계를 호령한 한국영화가 뜸했던 게 사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영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지 관심이 커진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포스터


박찬욱 신작 ‘아가씨’ 발표에 세계가 주목

14일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초청작 명단에 따르면 박 감독의 ‘아가씨’가 공식 경쟁 부문에,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비경쟁 부문에 각각 초청됐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도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소개된다.가장 고무적인 건 역시 박 감독의 경쟁 부문 진출인데, 그동안 박 감독이 경쟁 부문에 올라 수상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기대감이 커진다. 


영화 '아가씨' 스틸사진


특히 ‘아가씨’가 박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스토커’ 이후 3년 만에 내놓는 장편영화인 데다, 충무로발 한국 장편영화로는 ‘박쥐’ 이후 무려 7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이미 지난 2월 열린 유로피안 필름마켓에서 세계 116개국에 선판매되는 놀라운 결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하정우와 김민희, 조진웅, 김해숙 등 존재감 넘치는 배우들이 출연한 ‘아가씨’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그 재산을 노리는 백작, 또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암투를 그린다.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가 원작이다.박 감독은 ‘올드보이’로 2004년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으로 진출했으며 해당 시상식에서 ‘2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취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결과였지만 ‘올드보이’의 수상에 대해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없다. 오히려 칸 국제영화제 수상 이후 수년에 걸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꼭 봐야 할 외국영화’ ‘최고의 반전영화’ 등 다양한 설문조사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어 박 감독은 ‘박쥐’로 2009년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또 한 차례 진출해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칸이 인정한 감독’으로 쐐기를 박았다.



박찬욱 감독 수상 후 칸 경쟁 부문 성과 없어

2010년 이창동 감독은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시’를 올려놓고 각본상을 받았다. 당시 박 감독의 ‘박쥐’에 이은 또 한 번의 쾌거라 크게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후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서 한국영화는 수상에 번번이 실패했다. 심지어 지난 2012년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과 홍상수 감독작 ‘다른 나라에서’ 이후로는 공식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도 없다. 이 시기 충무로의 연간 극장 관객 수는 1억 명을 넘어서고 다수의 ‘천만 영화’가 나오는 등 산업적 발전이 이뤄졌다.그러나 막상 작품성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케이스는 극히 드물었다. 이 기간에 베를린과 베니스 등 칸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행사에서도 한국 장편영화의 경쟁 부문 수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받은 게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거둬들인 가장 최근의 성과다. 비공식 부문 및 단편영화 경쟁 부문에서 간간이 상을 받은 한국영화의 소식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4년간의 공백. 그래서 세계 영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영화계가 상업적인 부분에만 치중한다”는 안타까운 평이 이어졌다. 지금 박 감독의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박찬욱 감독. 단편영화 '로즈리본' 촬영현장 스틸. 


나홍진-연상호, 칸이 반기는 감독들

비록 경쟁 부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나홍진과 연상호 역시 칸이 반기는 감독이다. 이번에 ‘곡성’으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은 2008년 장편 데뷔작 ‘추격자’를 내놨을 때부터 칸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쌓은 인물이다. 당시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으며, 2010년 발표한 두 번째 장편 ‘황해’도 비경쟁 부문의 부름을 받았다. 이번 영화 ‘곡성’까지 세 편의 연출작이 고스란히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는 행운을 얻게 됐다. 칸 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세계 영화인들과 팬들에게 연출력을 알리게 된 만큼 머지않아 경쟁 부문에 오르거나 또는 할리우드 등 해외에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올해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부산행’을 내놓게 된 연상호 감독도 한 차례 이 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2013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다. 이어 좀비 소재 애니메이션 ‘서울역’으로 또 한 번 칸을 노리다 아쉽게 무산됐는데, 결국 이번에 첫 실사영화 ‘부산행’으로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나홍진 감독(맨 오른쪽). '곡성' 촬영현장 스틸. 


박찬욱 ‘아가씨’ 수상 가능성은?

박 감독과 ‘아가씨’의 수상 여부를 점치는 게 쉽진 않다. 항상 그랬지만 올해 칸 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문 진출작의 면면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화려하기 때문이다. 우선 칸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또 심사위원상까지 수상한 경력을 가진 거장 켄 로치 감독이 신작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를 들고 경쟁 부문에 올라왔다. 역시 칸과 인연이 깊은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도 ‘단지 세상의 끝’으로 이 부문에 초청됐다. 또 다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도 ‘줄리에타’를 들고 수상 여부를 가린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크리스티앙 문쥬도 새 영화 ‘바칼로레아’로 경쟁 부문에 올라왔다.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받은 세계적인 연출자 다르덴 형제는 새 영화 ‘언노운 걸’로 또 한 번 칸 국제영화제 석권을 노린다. 심사위원대상 수상 경력을 가진 미국의 대표적인 예술영화 감독 짐 자무쉬는 ‘파터슨’을 이 부문에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연기파 배우이자 감독인 숀 펜도 연출작 ‘더 라스트 페이스’로 경쟁 부문에 첫 진출했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구도 안에서 박 감독이 수상하게 된다면, 그만큼 여파도 폭발적인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출처:칸 국제영화제 공식 페이스북) 


칸 국제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행사다. 소위 예술영화뿐 아니라 상업영화 중에서도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우수작들이 상영되며, 각국의 유명 감독들과 톱스타들이 대거 모여 별들의 축제를 연다. 이곳에 초청된 영화와 영화인들은 각자의 명예뿐 아니라 자신의 국가까지 널리 알리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특히 올해는 아시아 최대 영화 페스티벌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좌초 위기에 놓인 상태다. 산업뿐 아니라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행사가 문화까지 힘으로 좌지우지하려는 세력들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한국영화와 영화인들의 칸 국제영화제 진출이, 또 그들이 보여줄 활약에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달해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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