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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은 Jun 27. 2024

탈서울 적응기9: 곰팡이야 안녕

8:47


자전거를 타고 회사 입구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신기하게 늦게 나와도, 천천히 나와도 꼭 8:47분이다.

일찍 나오면 여유를 부리고, 늦게 나오면 전속력으로 달린다. 회사는 9시 직전에 가야 덜 억울하다.


아침 출근은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 최대한 늦게 출근해야하니까. 그래서 전날 입을 옷을 다 준비해둔다. 아침은 시간이 되면 먹고, 아니면 도착해서 사 먹거나 한다. 빈속에 커피는 직장인들의 필수 코스이기 때문에, 위약을 꼭 챙겨 먹는다. 빈속에 커피를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아침밥을 챙겨 먹을 바엔 졸린 몸을 깨우려고 커피를 마신다. 배고프면 뭐도 사 먹긴 하지만. 자주 그러긴 하지만.


연초가 되었으니, 고백을 하나 하겠다. 나는 지금 사는 집을 내놓았다. 더 이상 살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집은 월세이고, 이왕 고백한 김에 다 까자면 보증금 천만 원에 월 43만 원, 관리비 5만 원을 포함하여 월 48만 원을 납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20년이 넘은 빌라이고, 그래서 그런지 단열이 안된다. 내가 이사 초반에 쓴 글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세탁기와 보일러가 고장 나서 집주인과 투쟁하여 새것을 얻어냈다. 그러나 단열이 안되는 집의 결로 현상이 빚어낸 곰팡이 천국의 파라다이스는 극복이 안되었다. 곰팡이가 발생한 장소는 보일러가 있는 곳 베란다같은 곳과 침대 머리맡.

찾아보니 단열이 안되는 구옥들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더라. 새삼 곰팡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국 지역의 여러 사람들에게 동질감이 들었다. 현재와 이전 집주인들과의 여러 말도 안 되는 논쟁으로 이미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신체적 에너지는 바닥을 기고 있던 터라, 굳이 곰팡이로 인해 새로운 집주인과 새로운 라운드를 열고 싶지 않았다.


베란다에 생기는 곰팡이들

지난주였나, 지지난 주 주말에는 날을 잡고 곰팡이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락스와, 각종 청소 물품을 구비하였다. 심지어 보호안경도 착용하였다. 모든 살림을 알려주는 노하우꾼 유튜브로 검색해 본 결과 곰팡이 제거 방법을 터득하였다. 이후 실행에 돌입하였다. 곰팡이는 다행히 전멸하였고, 나는 쾌적한 환경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결로 현상의 경우 집의 단열 문제가 거의 90% 이상이라고 했다. 단열이 되지 않으니, 바깥 온도와 실내 온도차로 인해 습기가 차고, 습기가 차다 보면 곰팡이가 번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환기는 거론도 하지 말아라. 감기 걸릴 정도로 자주 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방한켠에 계속 생기는 곰팡이와 흔적들


곰팡이를 제거하고 나서 이제는 익숙한 빨래방에 갔다.  빨래방 앞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가서 뜨근한 국밥을 시켰다. 원래 우리 민족은 힘들면 국밥이다. 국밥을 주문하자마자 바로 집주인 사장님에게 연락했다. 집을 내놓겠다고 하니, 이유를 물어보시기에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고만 해두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집주인과 새로운 라운드를 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계약기간 내에 이사하는 거라 부동산 중개 비만 납부하면 될 터였다. 훗날 엄마에게 이 사태를 간략히 전했다. 엄만 집주인한테 말을 하라고 했으나, 나는 너무 피곤하고 지쳤다. 집주인은 분명 ‘멀쩡한 집에(집주인 기준) 왜 곰팡이가 생겼느냐, 전에 살던 사람은 안 그랬다’ 내 탓으로 돌리며, 말없이 떠난 세입자의 확인 안될 말들만 늘어놓을게 뻔했으니까.

나가기전에 곰팡이만 박멸하고 가야지. 전문가니까.이후 세입자에겐 어쩐지 미안하지만… 아니다. 단열도 제대로 안된 집을 지은 사람과 그 집을 세 놓는 사람들 잘못아닌가?


앞으로 이사를 할 집은 구해야 하지만, 머리가 아파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은 해야 하니까 중간중간 생각을 좀 해보았다. 결론은 이전처럼 집을 구해놓고, 살던 집이 안 나가는 경우 이중 월세 부담이 있으므로 그냥 집이 나가는 것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새로운 집은 집이 구해진 이후에나 계약하기로 결심했다. 돈이 없으면 몸이 고생해야 하므로, 기꺼이 몸이 고생하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억울하면 돈을 잘 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렇다고 내가 노력하지 않고 나태하게 산 것은 아니므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일단은.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오래간만에 쓴 서예


결국 이번 사태를 통해 깨달은 점은 1) 집은 함부로 구하지 말 것, 최대한 고민하고 발품 팔 것 2) 돈이 없으면 몸이 고생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 3) 이사를 위해서 짐을 최소화해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4) 이사를 위해 먼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정도이다.


앞으로의 일이 머리가 아프지만, 차근차근 해내면 된다.

미래의 내가 잘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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