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끝났다.
새로운 집에서 맞는 주말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내가 자취한 곳 중 가장 만족스러운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주변 환경이 시끄럽긴 하지만, 애초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은 없다.
모든 게 만족스러울 수 없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테다.
그러니 지금 상황이 그저 만족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다행히 집주인 부부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
아침에 짐을 뺄 때도 꼬투리나 잡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끝이라 생각하니 후련했다.
보통 무언가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는데, 그냥 시~워언 했다.
새로운 집을 이사할 때는 지난번 첫 이사를 도와주셨던 용달 기사님께서 와주셨다.
아직 온전하지 못한 오른쪽 손목 덕에, 함께 일하시는 한 분도 모시고 와주셨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거라고, 같이 와주신 분도 참 좋으신 분이었다.
용달기사님은 처음 이사할 때, 내가 짐도 제대로 안 싸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일찍 오셨다.
그게 바로 7시였다. 전날 짐을 싸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여서, 용달 기사님이 오셨다는 전화를 받고 일어나자마자 이사를 했던 기억이 났다.
분명 이번에도 일찍 오시겠거니 싶어서, 진작에 일어나서 빨래를 개고 있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7시에 오셨다. 용달 기사님이 벌써 일어나 있냐며 놀라셨다.
기사님은 전문적인 솜씨로 이삿짐을 포장하고, 나르셨다. 거의 40분 정도 만에 짐을 다 싸고, 차에 실렸다. 전날 드실 거라도 사놔야지 했는데, 못 사서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물과 커피를 샀다.
기사님은 ‘돈도 없으면서 뭐 이런 걸 사.’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또 괜히 아저씨들은 쓴 커피 안 먹는다고 툴툴거리셨다. 원래 캐릭터가 그러하시다.
같이 오신 기사님은 ‘아니 이래야 잠이 깨지.’ 이러셨다.
그분도 진짜 재밌으신 분이셨다.
어차피 새로 입주하는 곳은 9시 넘어서야 갈 수 있었다.
기사님께도 미리 말씀드렸던 부분이었고, 그래서 8시에 오라고 말씀드렸는데, 나처럼 성격 급하신 사장님은 7시에 오셨던 것이었다.
그럼 식사라도 하러 가자고 하니, ‘돈도 없으면서 뭘.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아가씨는 거기 집 가서 정리할 거 하고 있어.’라고 하셨다.
나에게 돈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던 집주인 부부와, 내 돈은 한 푼이라도 아끼라고 하시는 용달 기사님 사이에서, 과연 진정한 어른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셋이서 차를 타고 새 집으로 향했다.
진짜 너무 재미있었다. 원래 나는 기분이 좋으면 말이 많아지는 편인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일단 집주인 부부가 꼬투리를 안 잡고 무사히 나와서 좋았고, 새집으로 가서 좋았고, 새집으로 가는 날 날씨가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같이 새집을 향하는 두 분이 참 좋으신 분들이라 좋았다.
내가 전세사기라도 당하진 않을까 걱정하시면서, 집은 어떻게 구했냐, 서류는 떼어놨냐, 사람들 아무도 믿지 말아라 등등 집에 대한 걱정을 해주셨다.
주변이 번화가라 시끄럽다니까, ‘그럼 같이 나가서 놀아. 집에만 있을 거야?‘라고 하셨다.
명쾌한 답이었다.
그 와중에 전날 동생이 오기로 했다. 기사님은 동생도 아가씨처럼 힘이 세냐고 물어보셨다. 지난번 이사할 때 힘이 장사라며,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고 칭찬해 주셨기 때문이다. 동생은 키는 크지만, 힘이 저만큼 세진 않다고 했다. 동생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짐이 다 옮겨졌다. 기사님은 그 와중에 내기로 한 금액보다 만원 더 깎아주셨다. 감동이었다. 반포장이사였는데, 한 명이 와서 해야 할 금액으로 두 분이 오셔서 해주셨다.
와중에 동주민센터에 차로 데려다주셔서, 전입신고도 금방 마쳤다.
이사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길에 같이 오신 기사님이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하시고 가셨다.
마지막까지 큰 웃음 선사하고 가신 두 분께 감사의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기다리던 삐쩍 마르고 키 엄청 큰 남동생이 왔다. 그 와중에 누나 먹으라고 커피랑 케이크까지 사 왔다.
섬세한 녀석. 그 와중에 남동생은 잠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날에 미리 말해둔 터라, 나 혼자 열심히 정리했다.
동생이 일을 안 하고 자꾸 딴짓하며 일이 늦어지는 듯 보였다. 엉덩이를 발로 차주고 싶었으나, 멀리서 여기까지 와준 동생이니까 참았다.
정리를 마치고 중간에 다이소에 들러 필요한 화장실 청소 용품이나 슬리퍼 등을 사야 했다. 가는 길에 마침 할인매장이 있었다. 오늘 노동비로 트레이닝복 한 벌을 사줬다. 안 산다던 동생도 어차피 오늘 돈으로 주려 했다니까 바로 골라 샀다. 집 정리가 거진 끝나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어서 파업을 선언했다.
동생과 함께 집 근처 고깃집에 가서 두툼한 오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 와중에 양심 있는 남동생은 자신이 일하느라 정리를 못 도와주었다며 고기는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집에 없던 전신거울도 이미 주문해 두었다고 했다. 동생이 돈을 버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업어 키운 보람이 이런 거구나.
언니도 밥 사 먹으라고 돈도 보내주고, 조명도 사준다고 했다. 형부도 연락이 와서 전입신고도 꼭 하라고 신신당부해 주셨다. 회사 분들도 치킨 쿠폰에, 시장 가서 쓰라고 온누리상품권도 왕창 주시고, 따순 응원도 보내주셨다. 친구 놈들도 뭐 필요한 건 없냐고 물어왔다.
사실 이사를 혼자 해야 하는 게 막막했다. 본가 근처도 아니었고, 전처럼 언니네 집과 가까운 곳도 아니었다. 주변에 친구나 가족도 없으니, 혼자서 해결할 일이 더 많아진 기분이었다.
씩씩하게 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내일은 내가 해낸 다라며 해내었으나,
결국엔 주변 도움이 없었으면 어려울 일이었다.
혼자 한다고 했지만, 사실 주변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나를 챙겨주고 있는지.
우울할 뻔한 이사가 감사함이 되었다. 감사함을 잘 표현할 줄 알면 좋겠건만.
그저 감사하다는 정도의 말 말고. 감사한 마음을 지혜롭게 잘,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여하튼 이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