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 이사다.
짐을 정리하며 느낀 것이지만, 지난번 이사는 용달 기사님과 갑자기 도우러 온 친구 덕에 했다. 다이소에서 산 봉투로 엉망진창 짐을 대충 싸두고는, 잘도 이사하려고 했다니. 스스로가 부끄럽고 놀라울 지경이다.
이번 이사에도 첫 이사를 도와주신 용달 기사님이 와주시기로 했다. 하필 손목도 다쳐서,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한 분더 섭외 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셨다. 감사하신 분.
용달 기사님은 짐을 미리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셨다. 안 혼나려고 짐 사진을 정리 중에 찍어 보냈더니,
'내가 아가씨 짐을 아는데 솔직하게 다시 보내라.'라고 하셨다.
죄송합니다. 솔직하게 오늘 다시 보낼게요. 너무 혼내지 마세요. 어제저녁에도 안 쓰는 물건 당근으로 나눔까지 하며 정리했건만, 짐이 많아 보이네요.
이사는 탄탄대로 준비되고 있었으나, 나의 마음에 돌을 던진 것 주인공은 바로 우리의 '집주인 부부'
사건은 이러했다. 집주인은 전화로 내가 당일 정산해야 하는 금액을 읊어주셨다.
'중개 보수비 233,200원'
'입주 청소비 120,000원'
'이번 달 월세 및 관리비 480,000원'
여기까진 오케이.
내가 월세 납부 기한 이후 이사 전날까지 추가로 사는 날짜 계산이 문제였다.
집주인은 내가 '11월 6일'에 입주했으니 10일 치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계약서 상에도 11월 18일 입주라고 되어있었고, 매달 월세를 드린 날도 그에 맞춘 17일이었는데. 이쯤 되면 그분이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시는 건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내가 가진 계약서와 본인의 계약서를 비교해 보자고 하시기에, 알겠다고 바로 퇴근 후에 만나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왜 나는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좋게 나가는 이사는 없는 것일까. 그분은 왜 그런 것일까. 나쁜 사람이라 나한테 돈을 더 받으려고 그러는 걸까? 아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좋게 생각해야지. 그분이 진짜 헷갈리셨을 거다. 설마 그렇게 나쁜 사람일까.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혼자서 해결하다가 해결이 안 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부동산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급히 약속을 잡았다. 사장님께 전화하여 부동산으로 오시라고 했다. 전화로 오시라는 와중에, 11월 9일 날 입주했다고 주장하는 집주인의 주장은, 9일이 아니라 15일이 되어있었다. 전화 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집주인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사모님도 같이 오시라고 했다.
그렇게 결정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집에 가자마자 계약서를 들고 부동산으로 갔다. 역시나 미리 앉아서 중개인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세입자에게 말하지만, 대부분의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계약할 때만큼은 집주인 편이다. 집주인에게 돈이 더 나오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건물 통째로 부동산이 전담할 경우는 특히나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부동산으로 온 이유는, 혼자보단 낫겠지라는 마음이었다. 집주인 부부가 그나마 부동산 중개업자 말은 믿는 듯했으니.
애초에 화낼 생각도 없었다. 말이 통해야 말이지. 가자마자 계약서를 보여드렸다. 내가 원래 입주하기로 한 날짜가 11월 24일이었으나, 버스파업 이슈로 예상보다 이른 11월 18일에 입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입주 전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이 함께 만나서, 3자 동의하에 수기로 입주 날짜 수정 후, 서로의 서명을 했다. 문제는 집주인이 수기로 수정한 입주일자를 악용한 건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혼자서 계약서를 수정'한 것이었다. 혼자서 계약서를 수정하신 사안에 대해,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으나 문제가 될 걸 안 공인중개사가 막았다. 접어서 손에 꼭 쥐고 있던 계약서에는 15일로 고쳐진 날짜가 보였다.
중개인이 내 계약서를 보여주며 '이거 안 믿으시면 전 일 못해요. 18일 맞죠?'라며 확인을 해주셨다. 그 와중에 내 말은 안 믿으면서 중개인의 말을 믿으며 잠잠해진 집주인 부부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집주인 사모님은 뭐가 못마땅한지 할 말은 있는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혼자 구시렁거렸다.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았으나, 이야기하자면 속 터지고, 보는 사람도 답답하니 생략하겠다.
좋게 나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음에 속상했다. 집주인 말이 또 바뀔까 봐 중개인에게 정산내역도 작성해 달라고 했다. 결국 공인중개사가 작성한 정산내역에 서로 서명하고 원본은 공인중개사가 가지고 있기로 했다.
어찌어찌 일을 해결하고 나니 진이 빠졌다. 맛있는 거라도 먹고 힘이라도 내야 했다. 음식점에 다 와가는데 중개인이 전화가 왔다. '속상한 마음은 풀고, 집주인들한테 잘 정리하시라고 이야기했다.'라고 하셨다. 그럼 뭐 하나. 이미 기분은 다 상해 있는데. 그래도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하고 끊었다.
집 근처에 맛집이 있었는데, 오며 가며 한 번도 가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왔다.
맛집은 맛집이었다. 김치나베우동 최고.
밥을 먹으며 '집주인 문서 위조', '계약기간 위조' 등 이런 전례가 있나 찾아봤다. 어디에도 입주 날짜를 혼자 위조한 집주인은 없었다. 대신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남긴 글들이 많았다.
집주인은 과연 나한테 돈을 더 받으려고 사기를 친 것일까? 그럼 너무 나쁘지 않나. 세상에 그렇게 나쁜 사람이 있을까? 과연 어떻게 나갈까.
이삿날이 기대가 된다. 아주 다른 방면으로.
씩씩한척하면 씩씩해지겠지.
그 와중에 나와 같은 세입자들 정말 귀찮더라도 잘 알고, 잘 대처해서 속이는 자들에게 속지 말아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