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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누피 Jul 18. 2024

14. 친절함에 대하여

이사의 과정은 큰 스트레스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친절한 한 분으로 인해 고단한 이사과정이 풀렸음을 쓰고 싶다.


드디어 집을 구했다.

지난주에 지금 살고 있던 월세방이 나간 것이다. 집이 나가고 나면 새 집을 구하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집이 나가자마자 바로 다음날부터 집을 보러 다녔다. 지난주 금, 토 이틀간 총 9곳의 부동산과 연락하여 12개의 집을 보러 다녔다. (한 마디만 하자면, 네이버 부동산 앱은 좋으나 결국 사진으로 확인 가능하고 다양한 매물이 있는 것은 다방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네이버 부동산, 다방, 피터팬, 호갱노노까지 보는 것이다.)


이번에 살고 있는 집을 들어왔을 때, 교통도, 집 상태도, 치안, 가격도 적절하지 않은 게 많았던 지라 살면서 후회가 되었다. '집 좀 더 보러 다니고 신중히 선택할걸.'이라는 생각. 이번에 집을 구하게 된 것은 단열이 되지 않는 구옥에서 보일러를 틀면 결로 현상으로 곰팡이가 생기는 문제가 컸다. 이 가격으로 곰팡이가 있는 집에 살 수 없었다. 이후 세입자에게는 정말 너무 미안한 마음으로 이번에 생긴 곰팡이들을 열심히 닦아두었다. 내가 날이 추울 때 와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전셋집을 구하고자 직장 인근의 총 4개의 동을 돌아다니면서 매물을 보았다. 신축 건물은 꿈도 꾸지 못할 테니, 구옥이라도 집 가격이나 거리, 위치 정도를 잘 고려해서 구해봐야지 싶었다. 다행히 매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총 12개의 매물을 볼 수 있었다. 전세보증보험도 가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전세 대출이 가능한 금액도 고려해야 했다(물론 중소기업청년대출 중 보증금 100% 전세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흔치 않다. 서울에서 그 집에 내가 살았던 거니 얼마나 운이 좋았던가).


다행히 12개의 매물 중 정말 괜찮은 집이 있었다. 공실인지라, 계약만 서둘러 진행하면 전세 대출도 이사 예정일에 맞추어 진행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전세 대출이 어지간한 서류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몇 천이상을 대출해 주는데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새로 입주하는 곳은 임대 사업자였는데, 직접 계약이 어렵다고 하여 계약서를 우편으로 우선 보내주겠다고 했다. 우편으로 보낸 뒤에 내 사인만 채워 넣으면 된다고 했다. 여기에 정확히 기재할 순 없으나, 나라에서 인증한 안전한 매물이었기에 안심하고 계약하기로 결정했다(개인 임대 사업자여도 공인 중개인은 끼고 진행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매우 특이케이스이다.)


좋은 조건으로 집을 구했다. 직장과의 위치, 가격, 신축 건물에 주변 인프라까지. 유일한 걱정은 도로가에 위치하여 소음이 많긴 하지만, 괜찮다. 윗집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보다 훨씬 낫다.


전세 대출의 과정들이 고단하고 그 과정을 지금 막 끝낸 지라(물론 대출 결과가 나와야 하지만)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한 상태여서 기나긴 글을 쓸 수 없어 간결한 요약식으로 써보겠다.



-입주 예정일 최소 3주 전에는 대출을 신청해야 한다.

-입주 예정일에 맞추자면 오늘(목요일) 아니면 내일(금요일) 신청이 완료되어야 했다.

-오늘 일을 끝내자 싶어서, 휴가를 2시간만 내고 은행으로 갔다.

-은행에 가니 회사 직인이 찍힌 급여명세서와 확정일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근 동주민센터에 가서 확정일자를 발급받으러 가니, 임대 사업자의 계약서에 내 주소가 잘못 기재되었음을 확인했다.

-내가 잘못 보냈나 해서 확인해 보니, 그가 잘못한 것이었다. 죽일까?라고 나도 모를 욕이 나왔다.  

-서둘러 연락하여, 주소만 수정해서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직장에 다시 가서 급여명세서를 받고, 수정된 계약서를 들고 다시 동주민센터로 갔다.

-동주민센터에서는 내가 이사 갈 동에 있는 동주민센터로 가야 한다고 했다. 왜 그걸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왜 나는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을까.

-화가 나도 어쩌겠는가, 은행에서 4시까지 하니 2시 30분까진 오라 했다. 시간이 없었다.

-욕을 하며 동주민센터에 가서 확정일자를 받아왔다. 계약서가 앞면만 사본인지라, 확정일자가 적힌 관련 서류라도 받아올 수 있었다.

-다시 은행에 가자니 시간이 이미 너무 지체되어 버렸다. 휴가를 더 쓰고 또 쓰다 결국 5시까지 휴가를 연장했다. 오늘까지 끝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연장근로도 신청하고 나왔다. 스스로의 선견지명은 칭찬할 일이었다.

-원래 가기로 한 은행이 4시가 다 되어 문을 닫을 것 같았다. 운명처럼 바로 앞에 보이는 다른 은행에 들어갔다.

-주거래 은행이 아니었고, 작년 초에 엄마가 빌려달라고 한 덕에 몇 천 빚을 지게 되었다. 엄마 빚을 내가 갚는 것도 서러운데, 주거래은행도 아닐뿐더러, 이미 빚이 있어서 대출금이 다 안 나올 거라고 했다. 주거래 은행에 가보라고 해주셨다.

-눈물이 났다.  아 서러워라.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니 지체할 수 없었다. 여긴 버스도 세월아 네월아라 자전거로 다녔다. 눈은 울고 발은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다행히 6시까지 하는 은행이 있어서, 그곳에 갔다.

-그곳에서 은인을 만났다.

-너무나도 친절하게, 내가 필요한 서비스를 정확히 알려주시고 인도해 주셨다.

-너무 우울한 기운이 그분에게도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서류 확인부터 중간중간 지체될 때 말을 걸어주시는 스킬까지. 정말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친절왕 백 퍼센트 모드의 친절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상 위에 이달의 친절 우수직원의 명패가 달려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은행에 돌아다니셨겠어요라고 하시기에, 맞아요 근데 이렇게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확인이 필요한 서류가 있는데, 추후에 연락을 주시겠다고 했다. 고생 많으셨다고, 감사하다고 하고 나왔다.

-돌아와서 은행 사이트에 칭찬합니다 탭이 있기에, 그분에 대한 글을 적었다.


여기까지가 오늘 11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있던 일이다.

하려던 업무를 마무리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 사람이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친절한 것은,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그 마음은

속상한 오늘 나의 하루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서 또 눈물이 났다.

대출이 잘 나올지 걱정은 되지만,

일단 오늘 신청이 잘 되었으니 다행이다.

일이 또 생기면, 그때 또 해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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