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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누피 Jul 11. 2024

11. 인생 자체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이도 저도 다 싫어져버려서 그냥 모든 걸 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10년 전쯤, 정말 나는 모든 걸 버리고 떠나본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20대 초반의 우울했던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굳이 우울했던 과거에 대해 얽매이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서, 최근에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대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갑자기 큰 수술을 해야했다.

다른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꽃을 피울때, 나는 방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년간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딱 한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A+ 을 받을만큼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만큼 내가 하려는 일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던 때에 생각하지 못한 일을 겪었던 것이다.


그때의 내가 좌절했던 것은, 온전히 내 선택과 의사를 가지고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력하면 잘되겠지, 믿어보며 살았는데 그렇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겪은 것이었다.

일년이 지나 건강도 회복했고, 다행히 취업도 했다. 그러나 우울감에 빠진 나에게 첫 직장은 너무나 힘든 곳이었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으나, 나는 나조차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결국 1년 2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채로 6개월을 그냥 보냈다.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말고, 그냥 있어보자 싶었다. 그러다 네팔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행정적인 일이었다. 꼴 보기 싫은 모든 것들을 등에 지고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팔에 갈 때는 꼴보기 싫은 한국 뒤도 안돌아보겠다며, 거기서 계속 살겠거니 하고 갔다. 그러나 네팔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해야 할 일도 많았고, 혼자서 친구나 가족하나 없이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도, 언어가 되지 않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도, 그곳에서마저 나를 괴롭게 하는 한국의 일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난다고 해서, 그곳에서도 고민이 없어지진 않았다. 그곳에선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오히려 혼자서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 나를 더 괴롭게도 했다. 기껏 도망 왔더니, 여기도 거지 같네. 이런 심정이었다. 결국 1년이 안 되는 시간 안에 모든 것들을 또다시 내려놓고 한국으로 왔다.


세 번째.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온 곳은 이곳 수원.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집,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자 마음먹었건만.

역시나 이번엔 예상한 대로 또 다른 고민에서 살고 있다. 역시나 어딜 간다고 해서, 어디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고민 없이 살 순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모든 상황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서만 왔던 걸까. 그 자리에서 가진 고민을 어딘가로 가야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그때의 최선이라 생각한 선택들이 무언가로부터 떠나오게 만든 것이었을까.

당시의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떠나오기만 한 삶은 아니었을까?

닥친 어려움에 대해 내가 회피하거나, 무시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과도한 일반화일수도 있다. 흑백의 논리로 결과를 단정 짓다 보니 생긴 오류일 수 있다. 분명 네팔로 떠났다 다시 돌아온 것도, 서울에서 수원이라는 곳에 온 것도.


그 모든 과정을 깊이 돌이켜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장했고, 실패도 했고, 성숙해졌고, 다시 어리숙해지기도 했다. 내 선택을 후회했고, 잘했다 스스로 만족하기도 했다. 주변의 격려를 받기도 했고, 걱정스럽게도 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더 나아지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해왔다. 순간 멈춰서 지칠 때도 있었으나, 되든 안되든 상황에 얽매이기보다 자꾸만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으니까. 결과야 어찌 되었든 간에 말이다.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는 것이 있다.

노력하지 않았는데 이뤄진 것도 있다.

노력은 결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할 뿐이다.

솔직히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적당한 노력이었던 걸까?

여기서 뭘 더 노력해야 내 삶이 나아질까?

생각해 보면, 내 삶이 나아진다는 것조차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언가 만족스러울 만큼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다. 결국 만족스러움의 정도도 끝이 없는 것들일 텐데.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무언가 올바로 살기위한 답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려놓음’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었다. 노력해도 온전히 가질수 없다는 것이 있음에 좌절했으나, 그렇다고 포기하며 안일하게 살기 싫었다. 노력과 포기 그 사이에 서있었달까. 이제는 그만 애쓰며 살자 싶었다. 삶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싶었다.


"인생 자체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삶이란 어떠해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이다.

참된 삶을 영위하려면 미래의 기쁨을 약속하면서 현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욕망에서 몸을 빼야 한다.

마음을 열고 그 생각이 끝없이 갈등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가이 핀리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다 놓아버려라 中


내려놓고자 읽고 있는 저 책의 문구처럼, 머리로 이해할 문장들을 삶에 새기며 살아간다.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지금은 저 문구가 내가 찾은 정답이다.

진짜 저 정답이 내 삶에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면,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머리로 알았으니 가슴으로 이해하고 행동하며 사는 것이 결국 남은 삶의 과제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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