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수원에 와서 처음 자취방을 구하고,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다음 일어난 일이다.
하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날 있던 일이 또 다른 의미에서는 1인가구로서 안전하게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에서 썼던 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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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빌라는 투룸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일인 가구이며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남자라고 했다. 정확히는 나와 집주인 사장님네 부부를 제외하고 말이다.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온다기에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늘 집을 보고 가면 불안해서 비밀번호를 바꾼다. 여러 부동산을 끼고 집을 돌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부동산에서 집 번호를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냥 대놓고 비밀번호가 적힌 수첩이 보이기도 하며, 대놓고 비밀번호를 누른다. 안 그런 사람보다 그런 사람을 많이 봤다.
그래서 내 집 비밀번호를 까는 게 꺼림칙했지만 부동산 중개인 말씀으로는 지방은 사람들이 약속을 미리 잡고 오는 게 아니라 그냥 바로 오면 바로 보여주는 거란다. 그날도 집을 보러 온다기에 비밀번호를 알려드렸다. 퇴근 후에 돌아오고 나니,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결국 비밀번호를 바꾸려고 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바꾼 비번을 문을 열고 확인해 보지 않았고, 성질 급한 내가 대체 어떤 번호를 눌렀는지 몰라서 업체를 불러 해결했다.
비번은 기억하나 손가락에도 살이 쪘는지 손이 미끄러졌는지 내가 설정한 비번으로 아무리 시도해도 안 열리는 것이었다. 여러 비번을 조합하여해 보아도 안되고 휴대폰 배터리는 다 돼가고 해는 어둑해져 가니 속이 타들어갔다.
더 늦게 전에 업체에 연락해 보니 이십만 원 가까운 돈을 불렀다. 숨고에 들어가 보니 10-12만 원 선이기에 되는대로 연락하여 오늘 가능한 업체를 찾았다. 그마저도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여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허탈함에 뭘 하고 싶지고 않았다.
금요일인데. 퇴근해서 누워야 하는데. 심지어 금요일은 혼자만의 돼지 파티를 하는 날이라 장도 잔뜩 봤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몇 시간 전 사둔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 사이 집주인분들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드리고 허락을 구했다. 다행히 이해해 주셨다. 나에게 화를 안 내주셔서 감사했다. 마냥 앉아있기도 뭐 하고 날도 아직 추워서 근처 카페로 갔다.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휴대폰 충전도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렸다.
위험을 피하려다 똥을 맞은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게 집 비번 뚫고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왜 가서 범죄를 저지르는 건지, 온갖 성범죄자들과 주거 무단 침입 죄인들을 원망스러웠다.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유난스럽게 만드는 만큼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서도 불과 바로 인근에 사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뒤에, 저녁 6시쯤 해가 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나온 낯선 남자가 나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괜히 무서워서 집까지 뛰어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도 나를 따라 뛰어오고 있었다. 정말 무서웠다. 범죄자는 같은 장소에 다시 나타난다든데, 설마 그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린 나이었으니, 무서워서 그 후로 학원도 그만둔 적도 있다.
이렇게 사건 역시도 사고처럼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다. 나 스스로 예측할 수 없고 내가 제어할 수 없어 더욱 불안하다. 심지어 주변에 나를 도와줄 이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가방에 늘 후추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는 것도 오버할 일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백 프로 대처해도 마냥 당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두려울 뿐이다.
두 세시간 뒤, 친절한 기사님덕에 겨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어락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집주인 두 분이 도어록이 교체될 때까지 지켜봐 주셨다. 날이 추우니 다 되면 연락드리겠다고 해도 같이 계셔주셔서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집주인분들이 그 순간만큼은 든든했다.
아, 친구에게 아무래도 내가 요새 뭐가 낀 것 같다고 정말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고 하니 넌 급한 성질부터 고치라 충고해 주었다. 어휴 누굴 탓해.
또 다른 친구는 답을 늦게 하니 불금을 보내냐고 했다. 그래 다른 의미의 불금이었다. 기나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