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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은 Jun 13. 2024

탈서울적응기8: 멍청한 선택


수원까지 와서 옮긴 직장이 별로다.  생각보다 많이 별로다.

심지어 갑자기 이직한다고 한달치 일을 오일만에 하고 왔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싶었지만, 오일안에 안오면 입사를 포기하라고 했다. 한달치 일을 오일안에 다 하고 나왔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을 할수 있구나를 깨닫고 새직장에 갔다. 근데 막상 와보니 딱히 일을 시키지도 않아서 더 화가났었더랬다.


급여마저 낮아졌다. 분명 급여가 더 많았는데.

입사 후에 다시 본 채용공고에는 급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제일 속상한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전혀 보람이나 가치를 느낄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것 하나 만족스럽고 더 나은게 없었다. 진짜 사기 채용공고 아니냐며 화도 났지만, 멍청한 내 선택에 누구를 탓하랴.


수원 곰팡이 핀 자취방과 갈수록 마음에 안드는 직장을 오가며 기분이 지하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더 나은 선택이라 믿고 나름대로 노력해서 온 곳이건만.

여전히 이 나이가 되도록 저질러버리고 실패하기 바쁘다니. 자책의 연속이었다.


우울감을 떨치려 쓴 서예


어제는 오래간만에 쇼핑을 해보겠다고 온라인 쇼핑창을 켜서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괜스레 스트레스가 생겨서 그냥 창을 닫아버렸다. 애초에 안 가지고 안사면 받지 않을 스트레스니까. 그냥 덜 가지면 된다.


오히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알고 있어서 삶이 더 불안하고 불행한 게 아닐까.

머리론 알겠지만, 결국 내가 고민하는 것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지금보다 더 많이 돈을 버는 것, 그래서 뭐든 더 많이 갖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랄까.

어느 아침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는데 맞은편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무념무상으로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보니 '나는 삶의 목적이 없구나' 싶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결정하고, 그런 다음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그 언젠가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아서 찍어둔 문구(출처를 찾을 수가 없는데, 아시는 분들 부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어쩐지 삶을 잘 살아보겠다며 먼곳까지 떠나왔건만.

무슨 존재가 되고 싶은지는 커녕 뭘 하며 살아야하나에 대한 답조차 없다.


돌이켜보면 여태껏 물 흐르는 대로 살았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기보다는 지금 당장의 현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들을 해왔다. 그 선택지도 결국엔 내가 아는 것, 본 것, 들은 것과 같은 좁디 좁은 것들이었겠지.

그때의 나에겐 최선이라 믿었던 것들이었을텐데.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그리고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아직 정답은 모르겠다. 아는 게 더 이상할지도.

여기까지와서 별다를 것 없이 사는 내 모습에 현타가 오는 시기랄까.


벚꽃과 하이터치하며 가던 출근길 언젠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지 못하는 막막함의 연속이다.  열심히 달리기만 했지 어디로 갈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안읽던 철학책을 읽기시작했다. 내려놓아야 마음 편하다는 내용들의 책도.

이미 선택했고, 잘못한 선택도 내 선택이었다.

엎지러진 물을 다시 채울지, 그대로 둘지도 내 선택이다.


아, 그러고보니 좋은 점은 있다. 일이 많지 않다. 적어도 칼퇴는 가능하다. 고민도 결국 시간이 남아서 가능한 일이다. 인생을 통달하는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결국 시간이 남아서 고민하다 답을 찾지않았는가.  쇼펜하우어 역시 부자라서 일대신 고민할 시간이 많다고 했는데.


돈은 적어도 시간은 많으니 여유롭게 삶을 관철해나가는 사색을 해보겠노라 다짐했다. 사실 마음이 갑갑해서 그냥 마음을 다시 다잡느라 그런거지만.

어쩐지 지금 하는 고민들을 꾸준히 하면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모르면 어때. 고민하며 살면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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