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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은 Jun 06. 2024

탈서울 적응기7: 오래간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주말에도 집 정리하고 쉬느라 바빠서 가보지 못했다. 언니네 부부도 본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가족들 모두 조카를 보고 싶어 해서 조카를 맡겨놓고 가라고 한다. 엄마는 천방지축 조카를 혼자 돌보기 힘든지라, 내가 같이 가서 조카를 돌봐준다. 사실 나도 조카가 보고 싶어서 가지만.


생각보다 본가로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 지하철 한 번을 갈아타면 되는 정도이다. 다만 서울로 가는 급행 지하철은 사람으로 꽉 차있어서 탈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출근길이었으면 참고 탔겠는데, 여유로운 주말이라 타지 않았다.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광경이었다. 급행이 아니면 15분 정도 더 걸리는데, 15분을 참고 달려 1시간 30분 만에 본가에 도착했다. 사실 시간이나 거리는 서울에 살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 마음이 다를 뿐.




군산여행 온돌기차 창밖 풍경, 노을이 멋지고, 온돌이 따뜻하다


지하철을 보면 그 동네의 노후화 정도가 보인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 연령대를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서울 지하철은 20-50대 정도의 연령대 사람들이 많다. 인천이나 경기도권만 가도 어르신들이 많다. 특히 경인선은 어르신들이 많아서 거의 앉지 못할 정도이다. 1호선은 원래 어르신들 좌석은 늘 꽉 차있다. 수원 방향은 많이 안 타봐서, 이번에 갈 때 보니 어르신들이 꽤 있는 편이었다.

경기도권은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집값 때문에 인구 유입이 되는 편이라고 한다. 얼마 전 간 군산만 보더라도, 사람도 안 오는데 빈 아파트만 지어두는 걸 보면 지방은 확실히 인구 자체가 적다.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사람들 안 가는 지방에 가서 집을 사자고 결의를 다지기도 했었는데, 나쁘진 않을지도. 대신 차가 있어야겠지. 또 잡다한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조카 팬클럽 엄마, 아빠, 동생 + 나, 그 언젠가 밥 먹으러 갈 때 찍은 사진



집에 가보니 엄마와 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자금을 모으는 중이다. 어쩐지 얼굴이 많이 까칠해져서 안쓰러웠지만, 원래 그 시기는 다 그런 거지 했다. 엄마는 내가 오자마자 따끈한 김치찌개와 여러 반찬들을 내어주었다. 역시 누가 차려준 밥이 최고 맛있다고 했다. 원래 도착할 때 한 번 밥 차려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차려먹는데, 이번 주는 엄마가 갈 때도 차려주더라. 역시 사람은 말이 고와야 한다.


모두가 기다리던 조카가 도착했다. 조카는 낮잠을 20분밖에 자지 못하고, 감기도 걸려서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다. 보통은 도착해서 전화기로 전화를 하거나, 이것저것 둘러보고 만지기 바쁜데. 그 와중에 엄마는 조카가 좋아하는 지하철을 타러 가자며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이고 곧바로 데리고 나가버렸다. 지하철 타는 걸 제일 좋아하는 조카는 신이 나서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 조카는 한껏 상기된 기분으로 집안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집에 오면 청소하는 걸 좋아하는 조카의 대왕 귀여운 뒷모습




이전에 살던 곳은 조카 집과 가까워서 언제든 보고 싶으면 미리 연락하고 찾아갔다. 물론 형부가 불편해하실 테니 조카를 내가 봐주고 언니 부부는 영화를 보거나 놀다 오라고 하는 식이었다. 조카는 그만큼 예쁘기 때문에 언제든지 봐줄 의향이 있었고, 조카를 보는 일은 삶의 낙이기도 하니까.


수원으로 이사 온 다음 조카를 보기 어려워졌다. 물론 자주 보기도 했지만, 조카도 내가 보고 싶은지 '이모 보고 싶어.'라고 종종 말한다고 한다. 차에 있던 형부가 잠깐 주유하러 가도 '아빠 보고 싶어'라고 하는 아가이니 진짜 보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조카는 종종이지만 나는 매일매일 조카가 보고 싶었다. 집이 멀어져서 가지 못하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조카를 만나서 '이모 보고 싶었어? 이모는 매일매일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고 꼭 안아주었다. 물론 조카는 자기가 코파는 영상이나 보여달라고 했지만.



지하철 마니아 조카덕에 매번 타는 지하철


오래간만에 조카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만들어 준 반찬을 잔뜩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는 잔뜩 널어둔 빨래거리를 생각하며, '부디 잘 마르고 있어라.'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여기 와서 월세를 냈다. 집주인분에게 월세를 보내드렸다고 문자를 보내니, 저녁 늦게 '수고했음니다'라는 답장이 왔다. 수고했다니. 열심히 벌어서 집주인분에게 드린 기분이 들어서 뭔가 억울하달까. 사실 내가 산 집값 낸 거면서도 월세는 괜히 나가는 돈처럼 느껴지는 심보.  그래도 한 달 잘 살아냈다.


혼자 살다가 가족들과 조카와 북적거리는 주말을 보내고 나니 주말이 금세 지나갔다. 주말은 핸드폰을 보거나, tv를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이패드를 본다. 기계에 손을 놓지 못한다. 그게 다 아마 외로워서 일 테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땐 그렇지 않았으니까. 조금씩 기계를 보는 시간을 줄여야지. 벌써 조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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