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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은 May 23. 2024

탈서울 적응기 5: 너무 심심하다

서울은 저녁 10시가 넘어도 북적거린다.

북적이는 거리를 찬찬히 살펴보면, 밤 10시가 넘어서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깥에 나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날의 피곤함보다 지금의 즐거움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더 낫다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사실 여긴, 너무 심심하다.


정말로 퇴근 후나 주말엔 할 게 없다. 저녁 6시만 되어도 캄캄하다. 특히 겨울인 지금은 5시만 되어도 해가 진다. 퇴근하고 자전거로 오가는 거리는 하필이면 공사장이 껴있다. 공사가 2년은 계속된다고 하니 아마도 이곳에 살 동안은 공사판을 오가야 한다. 공사 부지도 무척 커서, 오가는 길에 차도 적고 인적도 드물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빌라촌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살아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집주인 사모님에게 이 빌라에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사냐고 물어봤었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더 심하다. 인적이 많은 곳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어쩐지 이곳은 인적마저 드물다. 다들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그런 걸까? 가게들도 8시 전에 문을 닫는 편이다. 음식점이나 일부 카페를 제외하고는 늦게까지 하는 곳이 많지 않다. 길목은 어찌나 어두운지 가로등 불빛은 어두운 거리를 다 밝혀주진 못한다.


지금은 이사했지만, 처음 살던 수원집에 가는 길은 큰 공사가 진행되던 곳이라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야 했다.


아침에는 학교 가는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편이지만, 저녁에는 학생들도 집에 가는지 학생들조차 없다. 분명 내가 고등학교 땐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었는데. 아마도 학교에 일부만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이 근방 학교는 야자가 없는 모양이다.

인적이 드물고 어두운 밤거리를 오가는 불안감이란. 하필 수원은 범죄가 있는 편인 도시에 속한다고 했다. 사실 어디든 범죄자가 있으면 위험한 곳이건만, 괜히 살고 있는 곳이 더 불안한 것 같은 인간의 심리일 지도.


괜스레 서울에 살던 때가 그리워졌다. 서울 집은 역 근처에 있었고, 집으로 가는 길목은 호프집이나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워낙 장사들이 잘 되는 곳들이어서 가족이나 연인들로 늘 북적거렸다. 저녁 당직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늘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한 번도 위험하다고 생각된 적이 없었다.

쉬는 것보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열심히 동네를 돌아다녔다. 나는 혼자 놀기의 장인이라, 혼자서 이곳저곳을 다녔었는데 어떤 날은 집 건물 옆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 가서 1시간이고 노래를 불렀다. 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갔었는데, 신나는 댄스곡들을 그 좁은 방에서 혼자 불렀더랬다.


따릉이를 빌려서 근처에 있던 불광천을 지나 한강 야경을 즐기고 오기도 했다. 1시간이고 불광천을 따라 길을 걸었다. 가끔은 밤늦게까지 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도 했다. 주로 간 곳은 집 앞에 위치한 대형마트였다. 대형마트는 저녁 10시까지 했으니, 하다못해 갈 곳이 없으면 마트를 둘러보곤 했다. 1층부터 4층까지 한 층 한층 매주 가도, 매번 새로 가는 것처럼 둘러봤다. 결국 사는 건 먹거리들뿐이었지만, 가끔은 옷도 사며 기분 전환을 하기도 했었다.



그 언젠가 불광천 앞에서 했던 축제, 온 동네 사람들이 불광천을 끼고 밤늦게까지 축제를 즐겼다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퇴근하고 차도 없는 뚜벅이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자전거로 돌아다니고 싶어도 오가는 길이 어두워서 애초에 안 가고 만다. 요 몇 주간은 퇴근 후에 무조건 집으로 갔다. 그나마 있는 스케줄이라곤 코인세탁방에 가서 세탁하는 일이었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저녁 영화를 예매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이 생각보다 가까워서 괜찮겠거니 했으나, 돌아오는 길이 정말 어두워서 무서워 지릴뻔했다. 그래서 나중엔 후추스프레이도 샀다.


처음 수원에 살던 집 어두운 주택가, 여긴 그나마 불빛이 있어 환한 편이었다


문득 시골에 살기 위해선 이런 두려움을 감소할 정도의 씩씩함이 있거나, 돈이 많아 안전장치를 잘해두거나, 차를 사야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차를 사고 싶어졌다. 역시나 내 집과 차가 있는 삶은 좋은 삶이다. 차라리 내가 남자였으면 덜 불안하게 살았으려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여자 혼자 사는 삶은 불안하다. 남자 역시 별개의 불안함이 있겠지만.


퇴근 후 집으로 가야 하는 무료한 삶을 극복하고자, 서예학원에 등록해볼까 싶었다. 사실 영어나 통계 돌리는 것 같은 다른 실용적인 것들을 배워볼까 했지만, 마음을 수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서예를 하면 확실히 생각이 줄어든다. 배워서 나오는 멋진 글자들의 수확도 소소한 기쁨이다.


최근 작은 방을 나름대로 힐링 존으로 꾸며두었다. 별건 없다. 그냥 작은 책상과 의자를 두었고, 그 옆은 서예를 할 수 있는 물품들을 내려두었다.


나의 즐거움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겠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여기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말이다.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해나가는 기쁨도 내 몫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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