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복잡스러운 서울시를 떠나 조용하고 평온한 마을에 정착하겠다는 꿈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 시골에 간다지만 사실 나이가 들수록 의료시스템이 좋은 서울에 살아야 한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혼자만의 개척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 나의 고향은 인천이다. 인천은 아시아의 허브로 서울에 근접한, 도시이다(모두들 내가 이 말만 하면 웃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내가 꿈꾸는 삶이라 함은 적어도 주택가에 있으며 앞엔 나무나 풀이 푸릇푸릇하게 피어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매일을 출근하는 지하철 안처럼 사람이 바글바글 하지 않고 한적하고 여유로움을 느끼는 출근길을 맞고 싶다. 그러니 나의 첫 번째 고향인 인천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을 찾기로 했다. 사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엄청난 시골을 기대하진 않는다. 나름 카페 가서 커피도 즐길 줄 아는 도시 생활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한 마을이 필요하다. 너무 붐비지도, 너무 낙후되지도 않은 마을 말이다.
그러다 찾은 첫 장소는 바로 세종시이다. 사실 이 글의 시작은 조치원역으로 향하는 itx 기차에서 작성했었다. 첫 탐색지가 세종시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세종시에는 정부청사가 몰려있다.
사회복지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사회복지 관련 기관들이 어느 정도 몰려있는 곳이 좋다. 여기도 별로면 저기도 갈 수 있는 선택지는 있어야 한다. 정부청사라 함은 적어도 안정적인 환경임은 맞다. 그렇다고 꼭 그런 데서 일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2. 세종시는 낮은 건물들이 많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세종시 여행을 가는 영상을 봤다. 인근에 사는 언니에게도 물어보니 세종시는 정부청사가 몰려있는 곳을 제외하면 아직은 낮은 건물들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바로 낮은 건물. 이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낮은 건물이 많으면 좋겠다. 내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꼽는 영월은 바로 이 낮은 건물들이 많았다. 보존을 위한 정책 때문이긴 하였으나 낮은 건물틈새로 보이는 자연풍경은 숨통을 트이게 한다.
3. 서울과 멀지 않다.
적어도 친구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려면 서울과 너무 멀어서는 힘들 테다. 교통비만 해도 저기 밑 지방은 편도 5-6만 원 이상이다. 그러니 좋은 방법은 너무 멀리 가지 않는 것.
위의 세 가지 이유로 세종시에 가보기로 했다.
세종시에 가기 위해서는 조치원역을 거쳐야 한다. 조치원역에 도착하여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크라잉넛의 ‘좋지 아니한가’라는 노래를 오래간만에 들었다.
사고의 흐름이 단순하긴 하나, 나름대로 좋지 아니한가의 조치원 응용이다. 세종탐사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기 내가 적당히 다닐만한 직장이 있다면 가서 살고 싶다. 물론 정부청사 쪽 말고 좀 더 여유로운 베어트리파크 쪽이 더 개취이다. 매번 여행지에 가면 숙소나 중요한 스팟만 정하고 되는 대로 가는 편이다. 이번에는 어쩐지 시간표를 짰다. 엠비티아이가 좀 바뀌었는데 아마 제이가 돼 가는 모양이다. 우선 세종시 일정을 공유하고 삼탄에서 세종시가 제2의 고향이 될 수 있는 가 고찰을 해볼 셈이다.
<세종시 1박 2일 뚜벅이 기준 스케줄>
8:48-10:14 서울역-조치원역
10:30-11:30 조치원역-베어트리파크로 이동
11:30-13:00 베어트리파크 구경 및 점심(웰컴레스토랑)
13:00-14:00 카페이동 및 커피 한잔(카페 살포시)
14:00-16:00 커피숍-대통령기록실로 이동 및 공원산책
16:00-17:00 대통령기록실 관람
17:00-17:30 저녁식사(진주냉면 남가옥)
17:30-18:30 조치원역으로 이동
18:40-20:30 조치원역-서울역 도착
아침에 늦어도 8시엔 나가야 했으나 7시 50분에 일어났다. 버스를 기다리다간 세종이고 뭐고 하루가 날아가게 생겼다. 다음 기차가 죄다 매진이었다. 급하게 택시를 잡아서 8:48까지 가능한지 여쭤보니 기사님이 가보겠다고 하셨다. 전날 잠을 못 잔 탓에 비몽사몽 모르겠다 앉아있다가 어쩐지 택시 기사님에게 죄송하여 자세 바로했다. 무려 8:41분에 도착했다. 기사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하며 서울역으로 갔다. 아침에 약도 먹어야 하고 저혈당이라 당이 떨어지면 힘이 확 떨어져서 커피와 도넛을 샀다.
기차에서 휴지를 깔고 깔끔하고 야무지게 먹었다. 커피가 뜨거워서 입천장이 데었다. 참고로 부서진 초코파이는 할인이라고 했다. 초코파이를 먹고 한숨 돌리니 조치원역에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대략 2시간이고 itx 새마을호는 12000원 정도 무궁화호는 9천 원 정도 든다. 기차값은 오차범위 있다. 그래도 저 정도면 다른 지역보단 오케이.
조치원역에서 내리면 오른쪽에 바로 역전다방이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인데 다방의 존재유무에 따라 그 도시의 발달 정도가 나타난다. 스벅이나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는가 아니면 다방이 있는가. 이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노인층이 많은가 젊은 층이 많은가와도 연결이다. 여긴 일단 아직 역전다방이 있다. 정겹다. 가본 적은 없지만 다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예스러움 탓인가. 그건 그렇고 도착하자마자 풍기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참 정겨웠다.
세종시는 대부분 개발지역이 아니면 건물들이 낮다. 서울의 전경을 생각해 보라. 건물로 빽빽하고, 심지어 건물과 건물사이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고 인사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새 건물이 들어오면 시야가 줄어들어 조망권 소송까지 하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자연풍경이 멋진 이유는 시야가 탁 트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종시도 아파트 개발은 피해 갈 수 없었던 지라, 뒤쪽에 보이는 아파트단지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낡은 구옥들은 모두 2-3층이었다. 우리가 보통 시골에 가서 ‘시내‘라고 말하는 느낌의 길목들이 이어졌다. 인적이 많진 않았고, 덕분에 버스도 배차간격이 30분 정도로 길었다. 버스 한번 놓치면 30분은 멍 때려 야한다는 말이다. 역시 지방은 차가 없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세종시에는 관광지가 많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관광이 아닌, 이 도시가 과연 살만한 곳인가에 대한 탐색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관광을 목적으로 다니진 않았다. 다만, 이 정도 랜드마크는 가줘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곳은 찾아가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베어트리파크’였다. 조치원역에서 곧장 베어트리파크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시골시골한 느낌이었다. 이곳과 다른 정부청사 쪽은 갑자기 개발되어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만약 살게 된다면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시골한 느낌이 드는 곳이면 좋겠지만, 그럼 일은 누가하나. 그 옛날 유행어처럼 소는 누가 키우나 이런 느낌이다. 결국 생활권 내에 직장과 집이 가까우면 좋으련만. 모든 걸 선택할 수 없다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게 뭐가 될지는 내 선택이고.
991번에서 내리니 정말 90년대와 같은 마을이 나왔다. 그리고 중요한 점. 버스를 30분 타고나서 25분은 걸어야 베어트리파크에 갈 수 있다. 운 좋게 벚꽃이 아직 남아있어서 벚꽃 휘날리며 홀로 저 거리를 걸었다. 굉장히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벚꽃이 날리고 날씨가 청명하니 마치 내 세상 같았다. 세종탐사의 느낌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베어트리파크도 좋았다. 돈 많은 회장님이 좋아하는 거 다 가져다 두고 멋진 것도 다 가져다 두었다. 자기 취향으로 꾸민 박물관이랄까.
볼거리도 많고 관리가 누가 봐도 잘되어있어서 입장료가 안 아까웠다. 관리 진짜 잘해뒀다.
베어트리파크에서 다시 가야 할 곳은 대통령 기록관이었다 그쪽은 정부청사가 몰려있는 곳이라 기대치 않게 세종시의 두 가지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정부청사 쪽은 이야기만 들었지 내가 상상한 것보다 엄청나게 크고 거대했다. 굳이? 싶을 만큼이다. 급하게 지어진 느낌이 컸다. 그전에 들려야 했던 도담마을은 정말 아파트단지를 지어두고 사람이 필요한 상가들을 때려 넣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는 길에 큰 병원이 있었다. 최근 늙고 병들어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병원은 참 중요한 요소더라. 병원에 엄마가 입원해 계셨을 때도 지방에서 올라온 어르신 한분이 계셨다. 지방에서 혼자 생활하시다가, 몸이 아파 큰 병원에 와야 했는데 지방엔 큰 병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와야 했다며 하소연하셨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젊을 때 시골에서 뛰어놀다가, 몸이 늙으면 오히려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지만 모두들 잘 알듯이 우린 반대로 살고 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느낀것.
“어디에 가기 때문에 무조건 행복하지 않다. 어디에 있든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다. 다만 내가 평온함을 느끼기 쉬운 환경을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도 나의 선택이다.”
여러 가지 글이나 영상들을 찾아보고 있지만, 청년의 나이에 시골이나 근교 생활을 시작할 경우 둘 중 하나라고 했다. 정말 적응을 잘해서 잘 지내거나, 뭣도 모르고 그냥 환상만 품고 갔다가 시골이라는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서 다시 돌아오는 것. 사실 이민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 이민은 가겠다고 갈 사람이 남는 게 아니라 생각 없이 그냥 갔다가 남는 경우가 많다고.
어쩌면 내가 지금 생각하고 꿈꾸는 것들도 언젠가 결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다. 다만, 지금의 나이가 적지 않고 생각해야 할 요건들이 많아진 탓에 이런 탐사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직장에서 쌓이는 연차, 연차에 따른 취업도 무시할 수 없더라. 만년 신입일 순 없으니. 월급도 적은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는 터라, 집값도 무시 못 한다. 그러니 경제활동, 적당한 집값 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그럼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결단하는 게 필요할 수도 있겠다.
거두절미하고, 세종시에 대한 탐사(?) 결론이다.
세종시는 2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한쪽은 일부러 고도로 발달한 것처럼 만든 도시 쪽 정부청사 라인, 그리고 그 외의 90년대 느낌을 자아내는 동네들. 읍, 면, 동이 있다면 읍도 아니요 면에 해당하는 마을들이 많았다.
# 이웃.
세종시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여자 어르신 두 분을 만난 일이다. 집 앞 텃밭을 가꾸시면서 어르신 두 분이 건강해야지라는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집 앞에는 바로 건강 센터라는 곳이 있었다. 시골이나 근교만 가더라도 어르신들이 이전부터 터전을 잡고 사시다 보니 연로하신 분들이 많다. 건강 센터가 그 마을에서 제일 큰 건물 중 하나였으니 말 다 했다. 나이가 들면 가족보다 더 의지할 대상은 집 근처에 사는 이웃들이다. 가족들은 멀리 떨어져 사니 주변 이웃들이 급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도울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마음 나눌 친구나 이웃 한 명은 있으면 참 좋겠다. 물론 과유불급이다.
# 거주지.
일단 집은 아파트나 빌라면 소용없다. 주거지 유형도 매우 중요하다. 안전은 물론이다. 전세는 필수. 직장을 우선 구해본 후에 전세로 집을 구한다. 직장도 마을도 마음에 들면 구입할 집을 물색한다.
세종시를 돌아다니고 집에 오는 기찻길에서 본 전경의 소감은 이러하다. 우리나라는 무조건 아파트부터 짓는구나. 아파트가 지어진 그 동네는 그때부터 개발 시작이다. 어쩐지 아파트를 짓고 있는 장면만 보더라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금 층간 소음을 마음껏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층간 소음이 아니라, 일상 소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이긴 하지만.
그리고 또 느낀 것은 우리나라가 땅덩어리가 작다 작다 하지만 지방에 가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 세종시만 하더라도 텅 빈 땅덩어리에 이 건물 저 건물 짓는데 공간이 빽빽하지 않다. 건물 사이사이로 길이 있고 나무도 있다. 여유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서울시는 바로 창문만 열고 보면 옆집과 인사도 가능하다.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도 문만 열면 우리 집안에 다 보여서 가급적 블라인드를 치고 생활하니 말 다 했다.
# 일자리.
애석하게도 면에 해당되는 마을에는 내가 일할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올해 초쯤이었나 춘천여행을 다녀왔었다. 춘천은 서울의 물을 공급해 주는 고마운 도시로서, 대신 수질보호를 위해 마을의 개발이 제한된 도시이기도 했다. 가보면 마을의 건물들이 낡고, 개발이 되었다기보다는 방치되었다는 느낌까지 자아낸다. 세종시는 마치 개발의 중간 어디쯤 있는 듯하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은 도심 쪽이 아니지만, 일자리를 위해서는 그 중간 어디쯤을 찾아야 할 듯하다.
마침 면과 도심 사이 빌라촌들이 있던 마을이 있었는데, 그 동네는 무언가 적당히 개발된 동네 같았다. 다만, 언니 말로는 지방에 있는 곳 중에서 공장이 있으면 인근 외국인 노동자들 숙소로 빌라촌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네팔에서 생활하던 나로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거부감은 적으나, 문제는 대다수가 남자라는 점이다. 여자 혼자서 남자가 많은 동네를 생활하기에는 쉽지 않을 터이다.
하여튼 일자리를 생각해 보았을 때, 복지사로 구할 수 있는 직장은 일반 노인복지관이나, 사회복지관...... 아니면 요양원도 옵션에 있다. 복지사로 월급은 적더라도 워라밸을 지키는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괜찮다. 무언가 얻는 게 있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지만.
이를테면, 지금 젊을 때 능력을 인정받아 위로치고 올라가는 인생도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왜 더 도전해 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나름 석사까지 마쳤는데, 학위는 활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한 편으로는 석사는 왜 땄을까 후회도 된다. 이건 마치 후회의 연속 고리이다. 이유는 잘 알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 가보지 않은 인생은 늘 후회가 된다. 그러니 지금의 인생을 소중히 사는 수밖에.
# 일상.
층간 소음에서 서로 자유롭고, 문을 열면 앞에 나무나 꽃이 있으면 참 좋겠다. 행복은 사실 선택이며, 선택은 내가 오롯이 할 수 있다. 길거리를 거닐며 소박한 일상을 사는 삶을 꿈꿔보았다. 어쩐지 상상이 되니 즐거움도 더해졌다. 어느 산골마을에서 혼자 사는 스님의 말처럼, 심심한 재미로 사는 재미일 테다.
그리곤 주변에 있는 작지만 사소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 같다. 가만히 나무 밑에 앉아서 바람에 맞춰 연주하는 풍경소리를 듣는 것, 지나치면 보지 못할 간판을 보며 웃는 것,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 인적이 드문 거리를 나 홀로 걸으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찾는 것. 그것의 소중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세종시에 대한 짧은 고찰은 이러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만보를 걸은 탓에 그다음 날은 앓아누워 잠만 잤다. 지금도 바람을 너무 맞아서 감기 기운이 돈다.
세종 탐사 끝.